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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5명, 2580번, 129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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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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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섹스의 상대, 횟수, 시간… 내 마음대로 상대의 수를 정할 수 있다면 몇 명이 좋을까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섹스를 몇 번이나 할까? 사람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문화마다 그 수는 다르겠지만, 한 통계에 따르면 인간은 일생 동안 평균 5명의 상대와 2580번의 섹스를 나눈다고 한다. 전희를 포함해서 한 번 섹스를 할 때마다 걸리는 시간을 30분만 잡아도 그 시간을 다 합치면 무려 1290시간. 우리가 인생에서 섹스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미국의 한 웹사이트가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가 섹스를 나눈 상대 5명 중에서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은 겨우 2명뿐이라고 한다. 3명은 단순한 성적 이끌림으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성관계를 나누게 됐다는 얘기다. 서양인의 설문조사를 근거로 얻은 통계 수치이니 너무 불편해하지는 마시라. 이 통계는 인간관계에서 섹스가 얼마나 복잡한 골칫거리를 안겨줄 수 있는지를 상기시켜준다.

무도회장이나 나이트클럽에는 하룻밤의 정사를 꿈꾸는 남성들이 득실거린다. 하지만 무도회장을 찾는 여자의 마음은 이와 크게 다르다. ‘찰나적 성관계’를 꿈꾸며 그곳을 찾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다. (사진/ 한겨레 박미향 기자)


여자는 NO, 남자는 YES

미국의 심리학자 클라크와 햇필드는 1989년 미국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점잖지 않은 설문조사를 해 심리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들이 대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은 명료했다. 만약 매력적인 이성이 당신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얘기한다고 가정하자. “안녕하세요? 그동안 당신을 쭉 지켜보고 있었는데, 당신은 정말 매력적이세요. 오늘 밤 함께 잘 수 있을까요?” 당신이라면 이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들의 설문 결과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실험에 참가한 144명의 남녀 대학생들 중에서 여학생들은 모두 단호하게 성관계 제의를 거절한 데 반해, 남학생들은 75%가 ‘좋다’라고 대답했다. 여성들은 이 난데없는 제의에 불쾌해하거나 모욕당한 기분을 느꼈으며, 남성들은 모두 이 매력적인 제의에 들떠 있었다.

2005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의 피셔 교수와 그 동료들도 비슷한 실험을 했는데, 결과는 비슷했다. 그들은 이 논문에서 여학생들 100%가 이 제안을 거절한 것은 아니고 그중 6.1%는 성관계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했다며,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물어보느냐에 따라 여성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이 논문에서 하고 있다.

하여튼 이 실험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남자는 낯선 사람과의 하룻밤 정사에 대해 여성보다 훨씬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무도회장이나 클럽에 가면 하룻밤의 정사를 꿈꾸는 수많은 남성들이 득실거린다. 그들은 밤새 매력적인 여성들에게 힐끗힐끗 곁눈질을 하고, 이리저리 찝쩍대고, 부킹과 술 공세로 유혹하려 하지만 하룻밤 정사의 성공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남자들이 다음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며 꿀꿀해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무도회장을 찾는 남녀의 마음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찰나적 성관계’를 꿈꾸며 무도회장을 찾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무도회장에는 대학 캠퍼스보다는 상대적으로 하룻밤의 정사에 호의적인 여성이 있을 확률이 더 높고, 설문조사와는 달리 그들은 1~2시간 정도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으며, 술과 노래, 춤이라는 흥을 돋우는 환경도 조성돼 있으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커지겠지만, ‘여성은 기본적으로 찰나적 성관계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남성들은 잘 알아야 한다.

먼저 마음속으로 답해보시라

‘하룻밤의 정사’나 ‘혼외정사’는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이다. 인간은 왜 결혼제도라는 것을 만들었는가가 중요한 연구 주제이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사람과의 하룻밤 정사가 다양한 문화권에서 폭넓게 발견되는가’ 또한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이런 원나이트 스탠드의 목적은 무엇이며, 인간은 왜 결혼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도 있는 이런 성관계를 호시탐탐 시도하는 것일까?

중요한 연구 주제임에도 이에 대한 연구는 별로 진행된 바가 없다. 이런 일시적인 성관계는 극도의 보안 속에서 은밀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연구하기 힘들다. 다들 속 시원하게 자신의 하룻밤 정사 경험과 당시 심리 상태 등을 말하기 꺼린다. 한 예로 성행동에 대한 ‘킨제이 보고서’의 경우, 혼외정사를 묻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 자체를 송두리째 거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시적인 성관계와 항구적인 성관계(진화심리학자들은 ‘짝짓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사람들이 평생 몇 명의 성적 상대를 원하는가 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버스와 그의 동료 데이비드 슈미트는 미국 대학생들에게 한 달부터 평생에 이르는 다양한 기간 동안 그들이 이상적으로 두고 싶어하는 섹스 상대의 수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는 흥미로웠다. (결과를 보기 전에 먼저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내 마음대로 섹스 상대의 수를 정할 수 있다면 얼마로 할 것인지’ 그 수를 생각해보시라.)

모든 기간에서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더 많은 섹스 상대를 희망했는데, 그것은 그리 놀랄 만한 결과는 아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1년 동안 남성들은 이상적인 평균 6명 이상의 섹스 상대를 두고 싶다고 답한 반면, 여성들은 평균 단 1명만 두고 싶다고 대답했다. 앞으로 3년 동안의 경우 남성들은 10명의 섹스 상대를 희망한 반면, 여성들은 단 2명을 희망했다.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이상적으로 희망하는 섹스 상대의 수는 남녀 모두에서 늘어났는데, 점점 남녀의 숫자 차이는 커졌다. 남은 평생 몇 명의 섹스 상대를 원하는가에 대해 남자들이 대답한 수의 평균은 18명. 이에 반해 여성들은 4~5명이었다.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그의 저서 <욕망의 진화>에서 이 사실에 대해 이런 해석을 내리고 있다. 남성들은 그동안 자신이 상관계를 가진 여성의 수를 세고 때론 많다고 떠벌리고 다니거나 과장하기도 했는데, 그것을 모두 미성숙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찰나적 성관계에 대한 남녀의 태도 차이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01년 6월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릴제로스 박사와 그 동료들은 2810명의 스웨덴 사람들에게 던진 성에 관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섹스로 얽힌 인간관계’를 조사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스웨덴 사람들은 일생 동안 1~4명의 상대와 섹스를 나눈다. 그러나 더 많은 상대자와 섹스를 나누었다고 대답한 사람들의 수도 의외로 많았다는 것이 이 연구 결과의 핵심이다. 설문지에서 섹스를 나눈 사람의 숫자를 높여가더라도 ‘그렇다’라고 대답한 사람의 수가 천천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많은 사람과 섹스를 한 사람을 통하면 서로 섹스로 연결된 인간 사회 네트워크를 그릴 수 있다는 얘기다(좀 민망한 일이긴 하겠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섹스 상대자 수 분포가 ‘상위 20%의 부자들이 80% 이상의 소득을 독점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릴제로스 박사팀은 성관계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섹스로 얽힌 인간관계를 그래프로 표현한다면, 적당히 규칙적으로 얽힌 거미줄에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매듭이 중간중간 꼬여 있는 형국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이 현상을 ‘매력적인 사람에게 기회가 몰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상위 20%가 80% 이상을 독점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하룻밤의 정사, 원나이트 스탠드에 대한 환상을 꿈꾸는 것일까? 1만 년 전 우리 조상들도 우리와 비슷한 환상을 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현대 사회에서 무려 30~50%에 육박한 혼외정사 통계는 과연 그 이유로 설명 가능할까? 이것이 과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품고 있는 주제이며, 다음회에서 다룰 주제이기도 하다.

686호 주요기사

▶이명박과 김경준의 질긴 인연 5막
▶가자 출근길, 굽이굽이쳐 가자
▶걸면 걸리는 선거법, 서러운 군소후보
▶동두천 방화 6개월, 답답해 열불나!
▶‘굴욕수진’을 넘어서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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