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문자’ 문학이 죽었을진 몰라도 이야기 매체는 가속 성장 중
▣ 태풍클럽 출판사 편집자
엄청 뒤늦은 이야기지만, 일본 문학이 강세다. 주요 작가들의 판권료는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작가들의 세대교체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두 무라카미’와 요시모토 바나나, 아사다 지로 등의 작가들도 여전히 잘 팔리지만 이제는 이미 구세대라는 느낌이고, 잠시 에쿠니 가오리, 요시다 슈이치 등의 감성소설들이 팔리던 시기를 거쳐 최근 서점가는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온다 리쿠, 오쿠다 히데오 등이 점령했다.
이 신(新) 일본 소설 붐의 선두에는 장르문학들이 포진해 있다. <모방범> 〈용의자 X의 헌신〉과 같은 메가히트 추리소설들 외에도 호러, 판타지, 로맨스, 학원물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일본 추리소설의 기원을 그냥 무식하게 에도가와 란포의 첫 작품으로 잡아보아도 벌써 1936년부터고, 순문학에 주는 아쿠타가와상과 ‘대중문학’(물론 ‘대중문학=장르문학’은 아니다. 그 사이에도 묘한 서열이 존재한다)에 주는 나오키상이 동시에 생긴 해가 1935년이니, 일본 대중문학, 혹은 장르문학의 근간은 생각보다 깊다. 요새 장르문학 이야기를 하면서 ‘라이트 노벨’을 빼놓을 수 없을 터이다. 아직도 일문학 하면 <설국>이나 <빙점>만 아시는 구세대를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요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작은 책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나 <작안의 샤나>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 되겠다. 일본 장르소설의 새로운 산실 라이트 노벨은, 1970년대 시작된 슈에이샤의 코발트 문고(최초의 라이트 노벨 시리즈로, 초기엔 80년대 한국의 ‘파름문고’와 얼추 성격이 비슷했다), <로도스 전기>를 탄생시킨 스니커 문고 등에서 펴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장르소설로,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뒤이어 최근 한국에서도 서서히 이식되고 있다. 오쓰 이치, 하시모토 쓰구무 등 라이트 노벨 출신이면서 서서히 ‘문학’ 쪽으로 이동해오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미야베 미유키와 같은 대가들 역시 가끔 라이트 노벨에 속하는 게임소설을 집필하기도 한다. 사실 요시모토 바나나나 야마다 에이미, 에쿠니 가오리 같은 작가 역시 70, 80년대부터 소녀 취향의 코발트 문고를 읽고 자란 여성 독자층을 흡수한 작가들이고, 이제는 한마디로 하루키를 읽는 삼십대 독자가 <스즈미야 하루히>를 읽는 십대의 ‘오덕후’(어떤 물건이나 일에 빠져 집착하는 사람) 독자에게 뭐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나카가미 겐지 이후 문학(혹은 순문학)은 죽었다고 냉정하게 공언한 가라타니 고진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제 일본 문학에서 순문학, 대중문학, 장르문학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예로 올해 나오키상 후보작이던 <아카쿠치바 전설>은 라이트 노벨 작가의 작품이라 하여 화제가 되었다. 순정만화, 폭주족 등 서브컬처와 민담적 판타지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천리안을 가진 할머니(전후 세대)-폭주족 대장 출신의 만화가 엄마(고도성장 세대)-그리고 평범한 손녀(현재)의 여자 삼대를 그렸다. 이 소설은 장르문학, 대중문학, 순문학을 가리지 않고 그 자양분을 고이 빨아들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빠라바라바라방’ 하며 오토바이로 주고쿠 일대를 점령한 폭주족 엄마의 청춘시대를 묘사한 대목은 유류파동이나 소녀만화 시장의 급성장, 양키문화 등 70, 80년대의 크고 작은 역사들을 아우르며 노스탤지어와 역사적 충실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고전적 의미의 문학이 죽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이웃 나라의 ‘이야기’를 담는 매체는 나름 계속 진화 중인 모양이다. 대문자 ‘문학’의 거창한 틀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이 과연 어떤 형태가 되어갈지, 혹은 그런 세상에서 고전적 의미의 문학임을 주장하는 소설들은 뭘 할 수 있을지, 계속 옆 나라 사정을 주시해볼 만하다.

베스트셀러 라이트노벨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주인공.
이 신(新) 일본 소설 붐의 선두에는 장르문학들이 포진해 있다. <모방범> 〈용의자 X의 헌신〉과 같은 메가히트 추리소설들 외에도 호러, 판타지, 로맨스, 학원물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일본 추리소설의 기원을 그냥 무식하게 에도가와 란포의 첫 작품으로 잡아보아도 벌써 1936년부터고, 순문학에 주는 아쿠타가와상과 ‘대중문학’(물론 ‘대중문학=장르문학’은 아니다. 그 사이에도 묘한 서열이 존재한다)에 주는 나오키상이 동시에 생긴 해가 1935년이니, 일본 대중문학, 혹은 장르문학의 근간은 생각보다 깊다. 요새 장르문학 이야기를 하면서 ‘라이트 노벨’을 빼놓을 수 없을 터이다. 아직도 일문학 하면 <설국>이나 <빙점>만 아시는 구세대를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요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작은 책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나 <작안의 샤나>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 되겠다. 일본 장르소설의 새로운 산실 라이트 노벨은, 1970년대 시작된 슈에이샤의 코발트 문고(최초의 라이트 노벨 시리즈로, 초기엔 80년대 한국의 ‘파름문고’와 얼추 성격이 비슷했다), <로도스 전기>를 탄생시킨 스니커 문고 등에서 펴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장르소설로,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뒤이어 최근 한국에서도 서서히 이식되고 있다. 오쓰 이치, 하시모토 쓰구무 등 라이트 노벨 출신이면서 서서히 ‘문학’ 쪽으로 이동해오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미야베 미유키와 같은 대가들 역시 가끔 라이트 노벨에 속하는 게임소설을 집필하기도 한다. 사실 요시모토 바나나나 야마다 에이미, 에쿠니 가오리 같은 작가 역시 70, 80년대부터 소녀 취향의 코발트 문고를 읽고 자란 여성 독자층을 흡수한 작가들이고, 이제는 한마디로 하루키를 읽는 삼십대 독자가 <스즈미야 하루히>를 읽는 십대의 ‘오덕후’(어떤 물건이나 일에 빠져 집착하는 사람) 독자에게 뭐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나카가미 겐지 이후 문학(혹은 순문학)은 죽었다고 냉정하게 공언한 가라타니 고진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제 일본 문학에서 순문학, 대중문학, 장르문학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예로 올해 나오키상 후보작이던 <아카쿠치바 전설>은 라이트 노벨 작가의 작품이라 하여 화제가 되었다. 순정만화, 폭주족 등 서브컬처와 민담적 판타지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천리안을 가진 할머니(전후 세대)-폭주족 대장 출신의 만화가 엄마(고도성장 세대)-그리고 평범한 손녀(현재)의 여자 삼대를 그렸다. 이 소설은 장르문학, 대중문학, 순문학을 가리지 않고 그 자양분을 고이 빨아들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빠라바라바라방’ 하며 오토바이로 주고쿠 일대를 점령한 폭주족 엄마의 청춘시대를 묘사한 대목은 유류파동이나 소녀만화 시장의 급성장, 양키문화 등 70, 80년대의 크고 작은 역사들을 아우르며 노스탤지어와 역사적 충실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고전적 의미의 문학이 죽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이웃 나라의 ‘이야기’를 담는 매체는 나름 계속 진화 중인 모양이다. 대문자 ‘문학’의 거창한 틀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이 과연 어떤 형태가 되어갈지, 혹은 그런 세상에서 고전적 의미의 문학임을 주장하는 소설들은 뭘 할 수 있을지, 계속 옆 나라 사정을 주시해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