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선고에도 희망을 보는 선수와 경쟁으로 눈이 먼 경기장 사이에 서서
▣ 송호진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dmzsong@hani.co.kr
사선에 선 그의 얼굴. 창백했다. 작은 공기권총이 꽤 무거워 보일 정도였다. 2002년 위암 수술을 받은 뒤 몸무게도 5~6kg 줄었다. 언니와 시어머니를 이미 암으로 떠나보내고, 친정어머니의 암투병을 지켜봤던 그가 또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 마음을 뭇사람들이 어찌 헤아리겠는가. “오랜만에 태극마크 달고 6년 만에 비행기를 탔다”던 그는 입술까지 잔뜩 부르터 있었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서 만났던 마흔 살 아줌마 부순희. 그는 사격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종 승자가 되진 못했지만, “초등학생 아들이 다시 국가대표가 된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던 그의 웃음은 금메달보다 더 진한 울림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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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눈이 잘 안 보여요.” 그건 뜻밖의 얘기였다. “왼쪽 눈이 근시, 난시, 사시 등이 모두 겹쳤고 시신경도 죽어 오른쪽 눈으로만 보고 있거든요. 왼쪽 눈은 아홉 살 때부터 안 보이기 시작했어요.” 프로축구 수원 삼성 곽희주. 그 누구보다 투지 넘치는 수비수였다. 차범근 감독은 그 열정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곤 한다. 곽희주는 “오른쪽 눈 시력도 좋지 않아 경기를 뛰다 땀이 눈으로 흘러 들어가면 순간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선수가 지난 5월 FC서울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왼쪽 눈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헤딩슛으로 연결해 골키퍼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구석에 꽂아넣었다. 그러곤 눈가를 뒤덮은 땀을 쓱 닦는 그의 손길. “나처럼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선수가 있다면 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그는 운동장에서 뛰는 몸짓만으로도 강한 전율을 안겨준다. 눈 나빠도 몸 아파도 “행복하다” 지난 8월. 관중이 거의 없는 프로축구 2군 경기. 골키퍼 차기석(전남 드래곤즈)이 골문에 섰다. 이게 얼마 만인가. “신장이 심각한 수준이다. 운동을 그만둬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진료실을 박차고 나온 지 1년 반이 지났다. 저 멀리 외진 곳에서 아버지가 경기를 지켜본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장을 아들에게 줬다. 아들의 몸속엔 기능을 잃은 신장 두 개와 아버지의 신장이 모두 들어 있다. 청소년대표, 거스 히딩크 감독이 눈독 들인 선수, 차세대 국가대표 골키퍼. 그 모든 수식어와 관심은 사그라진 지 오래다. 그는 이 경기에서 전반에만 세 골을 먹었다. 호된 복귀 신고식이었다. 아버지는 등을 토닥였다. 예전 같으면, 빨리 특급 스타가 돼야 한다고 여겼던 청소년대표 시절 같으면, 차기석은 크게 낙담했을 것이다. ‘그랬느냐?’고 물었다. 오히려 “행복하다”고 했다. 그라운드 복귀를 위해 다시 운동을 시작했을 때, 그는 골키퍼 장갑을 끼고 경기장으로 나서는 꿈을 자주 꿨다고 한다. “이렇게 뛸 수 있다는 것, 너무 감사해요. 욕심 부리지 않아요. 차근차근 조금씩 조금씩 가려고요. 그러다 보면 기회도 오지 않겠어요?” 내 꿈 앞에서 꺾이지 않는 것. 그게 행복이란 것을 스물한 살의 어린 청년은 지금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에서 감동은 이긴 자, 가장 높이 우뚝 선 자를 통해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경기 도중 상대와 부딪혀 정신을 잃고 들것에 실려나온 팀의 주장이 “내가 왜 운동장 밖에 나와 있느냐. 난 저곳에 있어야 한다”면서 한사코 만류하는 팀 관계자들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하는 장면. 우린 그날의 승자보다, 그의 눈물에서 과연 열정이란 어때야 하는지를 보게 된다. 고교 농구부면 교복 없어도 되나 그러나 요즘 스포츠 현장에선 오직 이기는 것만이 능사이고 미덕인 듯한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마치 스포츠는 그래야 하는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서울 소재 한 고등학교 농구부 선수들은 교복조차 없다고 한다. 어차피 수업은 뒷전이고, 대회라도 다가오면 그나마 띄엄띄엄 받던 수업도 전폐하고 우승을 위해 몰두해야 하는데 교복이 왜 필요하냐는 것이다. 대학 농구 강자인 한 농구팀은 수업을 서울 시내 캠퍼스에서 받아야 하는데 팀 숙소와 훈련장은 서울 밖 캠퍼스에 있다. 그래도 학점은 나오는 것을 보면, 학교 쪽도 우승으로 대학 이름만 빛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다른 대학 코치가 “고교 시절 그 대학에 훈련하러 갔다가 여기 오면 바보 되겠다고 생각해 지금의 학교를 선택했다. 그런데 지금도 거긴 변함이 없더라”고 하는 말을 우리만 듣고 있는 건가? 고교 대회에서 우승해 신흥 축구 명문으로 떠오른 한 학교는 학부모들이 모아준 수백, 수천만원의 돈으로 중학교 선수들을 스카우트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학부모들의 회비로 모든 종목의 학원 스포츠가 운영되고 있는 이 통탄스러운 현실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수천만원 스카우트 비용까지 대줘야 하는 기막힌 일은 또 뭐란 말인가. 쌈짓돈을 내 좋은 선수를 영입해서라도 전국대회 상위 성적을 내면 덤으로 우리 아들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부모들의 절박한 마음을 이렇듯 추악하게 이용하고 있다. 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이라는 태릉선수촌에서 수영대표팀 코치가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때려 쫓겨나는 일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렇게라도 훈련해서 무조건 이기면, 폭행도 추억으로 남는다고 여기는 것인지. 선수가 무단 이탈했다고 야구방망이로 때려 징계를 받은 군산의 한 중학교 유도 코치를 보며 ‘쯧쯧, 재수없게 걸렸구만’이라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은 또 없는지. 이기려면 무엇이든 못하겠느냐고? 고교축구선수권 준결승에서 한 감독이 부심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고, 초등학교 대회에선 한 감독이 부심의 판정이 잘못됐다며 팔을 꺾어 엄지손가락 뼈를 부러뜨리는 것. 같은 대회 또 다른 경기에선 심판의 페널티킥 판정에 격분한 학부모들이 경기장 안으로 달려들어 심판의 멱살을 잡는 등 행패를 부리는 것. 초등학교 축구감독 선생님이란 분이 선수들에게 입에 담기도 창피한 욕설을 내뱉으며 지휘하는 것. 그래서 주눅 든 선수들이 감독님 앞쪽으론 공을 몰고 가기도 무서워하는 것. 이기려면 무엇이든 못하겠느냐는 걸 가르치고 싶은 건가? K리그에서 웃통 벗고 항의하고, 동료 선수에게 침을 뱉고, 팬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 관중이 던진 물통을 되던지는 것. 그래서 엄마가 황급히 아이들의 눈을 가려야 하는 것. 왜 입장료 내고 들어와 이런 걸 봐야 하느냐고 한숨을 쉬어야 하는 것. 거기에선 지고도 이긴 자를 끌어안음으로써 패자를 도저히 패자라고 볼 수 없게 만드는 감흥을 찾아볼 수 없다. 최상의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는 것. 승자는 승자답고, 패자는 언젠가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그곳에 스포츠 감동은 덤으로 쫓아간다.
“사실 눈이 잘 안 보여요.” 그건 뜻밖의 얘기였다. “왼쪽 눈이 근시, 난시, 사시 등이 모두 겹쳤고 시신경도 죽어 오른쪽 눈으로만 보고 있거든요. 왼쪽 눈은 아홉 살 때부터 안 보이기 시작했어요.” 프로축구 수원 삼성 곽희주. 그 누구보다 투지 넘치는 수비수였다. 차범근 감독은 그 열정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곤 한다. 곽희주는 “오른쪽 눈 시력도 좋지 않아 경기를 뛰다 땀이 눈으로 흘러 들어가면 순간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선수가 지난 5월 FC서울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왼쪽 눈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헤딩슛으로 연결해 골키퍼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구석에 꽂아넣었다. 그러곤 눈가를 뒤덮은 땀을 쓱 닦는 그의 손길. “나처럼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선수가 있다면 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그는 운동장에서 뛰는 몸짓만으로도 강한 전율을 안겨준다. 눈 나빠도 몸 아파도 “행복하다” 지난 8월. 관중이 거의 없는 프로축구 2군 경기. 골키퍼 차기석(전남 드래곤즈)이 골문에 섰다. 이게 얼마 만인가. “신장이 심각한 수준이다. 운동을 그만둬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진료실을 박차고 나온 지 1년 반이 지났다. 저 멀리 외진 곳에서 아버지가 경기를 지켜본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장을 아들에게 줬다. 아들의 몸속엔 기능을 잃은 신장 두 개와 아버지의 신장이 모두 들어 있다. 청소년대표, 거스 히딩크 감독이 눈독 들인 선수, 차세대 국가대표 골키퍼. 그 모든 수식어와 관심은 사그라진 지 오래다. 그는 이 경기에서 전반에만 세 골을 먹었다. 호된 복귀 신고식이었다. 아버지는 등을 토닥였다. 예전 같으면, 빨리 특급 스타가 돼야 한다고 여겼던 청소년대표 시절 같으면, 차기석은 크게 낙담했을 것이다. ‘그랬느냐?’고 물었다. 오히려 “행복하다”고 했다. 그라운드 복귀를 위해 다시 운동을 시작했을 때, 그는 골키퍼 장갑을 끼고 경기장으로 나서는 꿈을 자주 꿨다고 한다. “이렇게 뛸 수 있다는 것, 너무 감사해요. 욕심 부리지 않아요. 차근차근 조금씩 조금씩 가려고요. 그러다 보면 기회도 오지 않겠어요?” 내 꿈 앞에서 꺾이지 않는 것. 그게 행복이란 것을 스물한 살의 어린 청년은 지금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에서 감동은 이긴 자, 가장 높이 우뚝 선 자를 통해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경기 도중 상대와 부딪혀 정신을 잃고 들것에 실려나온 팀의 주장이 “내가 왜 운동장 밖에 나와 있느냐. 난 저곳에 있어야 한다”면서 한사코 만류하는 팀 관계자들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하는 장면. 우린 그날의 승자보다, 그의 눈물에서 과연 열정이란 어때야 하는지를 보게 된다. 고교 농구부면 교복 없어도 되나 그러나 요즘 스포츠 현장에선 오직 이기는 것만이 능사이고 미덕인 듯한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마치 스포츠는 그래야 하는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서울 소재 한 고등학교 농구부 선수들은 교복조차 없다고 한다. 어차피 수업은 뒷전이고, 대회라도 다가오면 그나마 띄엄띄엄 받던 수업도 전폐하고 우승을 위해 몰두해야 하는데 교복이 왜 필요하냐는 것이다. 대학 농구 강자인 한 농구팀은 수업을 서울 시내 캠퍼스에서 받아야 하는데 팀 숙소와 훈련장은 서울 밖 캠퍼스에 있다. 그래도 학점은 나오는 것을 보면, 학교 쪽도 우승으로 대학 이름만 빛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다른 대학 코치가 “고교 시절 그 대학에 훈련하러 갔다가 여기 오면 바보 되겠다고 생각해 지금의 학교를 선택했다. 그런데 지금도 거긴 변함이 없더라”고 하는 말을 우리만 듣고 있는 건가? 고교 대회에서 우승해 신흥 축구 명문으로 떠오른 한 학교는 학부모들이 모아준 수백, 수천만원의 돈으로 중학교 선수들을 스카우트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학부모들의 회비로 모든 종목의 학원 스포츠가 운영되고 있는 이 통탄스러운 현실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수천만원 스카우트 비용까지 대줘야 하는 기막힌 일은 또 뭐란 말인가. 쌈짓돈을 내 좋은 선수를 영입해서라도 전국대회 상위 성적을 내면 덤으로 우리 아들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부모들의 절박한 마음을 이렇듯 추악하게 이용하고 있다. 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이라는 태릉선수촌에서 수영대표팀 코치가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때려 쫓겨나는 일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렇게라도 훈련해서 무조건 이기면, 폭행도 추억으로 남는다고 여기는 것인지. 선수가 무단 이탈했다고 야구방망이로 때려 징계를 받은 군산의 한 중학교 유도 코치를 보며 ‘쯧쯧, 재수없게 걸렸구만’이라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은 또 없는지. 이기려면 무엇이든 못하겠느냐고? 고교축구선수권 준결승에서 한 감독이 부심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고, 초등학교 대회에선 한 감독이 부심의 판정이 잘못됐다며 팔을 꺾어 엄지손가락 뼈를 부러뜨리는 것. 같은 대회 또 다른 경기에선 심판의 페널티킥 판정에 격분한 학부모들이 경기장 안으로 달려들어 심판의 멱살을 잡는 등 행패를 부리는 것. 초등학교 축구감독 선생님이란 분이 선수들에게 입에 담기도 창피한 욕설을 내뱉으며 지휘하는 것. 그래서 주눅 든 선수들이 감독님 앞쪽으론 공을 몰고 가기도 무서워하는 것. 이기려면 무엇이든 못하겠느냐는 걸 가르치고 싶은 건가? K리그에서 웃통 벗고 항의하고, 동료 선수에게 침을 뱉고, 팬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 관중이 던진 물통을 되던지는 것. 그래서 엄마가 황급히 아이들의 눈을 가려야 하는 것. 왜 입장료 내고 들어와 이런 걸 봐야 하느냐고 한숨을 쉬어야 하는 것. 거기에선 지고도 이긴 자를 끌어안음으로써 패자를 도저히 패자라고 볼 수 없게 만드는 감흥을 찾아볼 수 없다. 최상의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는 것. 승자는 승자답고, 패자는 언젠가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그곳에 스포츠 감동은 덤으로 쫓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