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승부의 계절, 승자를 어찌 알리오

683
등록 : 2007-11-01 00:00 수정 :

크게 작게

프로야구·프로축구의 포스트 시즌에 되돌아 본 스포츠판 ‘경쟁의 역사’

▣ 신명철 <스포츠 2.0> 편집위원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대선주자들은 대권의 꿈을 안고 표밭을 누비고 있다. 특정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는 있지만,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두 달 뒤 누가 승자의 미소를 지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제16대 대통령 선거와 한국 의정사에서 처음으로 여소야대가 이뤄진 1988년 총선 등 수많은 선거의 결과가 그랬다.

대전 시티즌 도약에 후끈한 K리그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프로농구 등 장기 레이스를 펼치는 종목도 시즌 전에는 이런저런 예상이 나오지만 막상 시즌이 열리면 엉뚱한 방향으로 판세가 흘러가기 일쑤다.

[%%IMAGE4%%]

△10월21일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 2007 6강 플레이오프 울산 현대와 대전 시티즌의 경기에서 양팀 선수들이 치열한 공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 비록 0-2로 패했지만, 대전 시티즌의 6강 진출은 ‘승부’의 예측 불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사진/ 연합 이상현)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OB베어스가 우승하리라 예상한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개의 예상은 6개 팀 가운데 4위 정도였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아마추어 국가대표 선수 출신들이 즐비한 삼성 라이온즈를 우승 후보로 꼽았다. 그러나 박철순을 앞세운 OB는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4승1무1패로 눌렀다. 10월20일 끝난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2스테이지(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정규시즌 1위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5전 3선승제의 시리즈를 모두 홈구장인 도쿄돔에서 치르는 유리한 조건에서도, 주니치 드래건스에 3패로 밀렸다. 요미우리가 다소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포스트 시즌이 한창인 프로축구 K리그는 대전 시티즌이 기적과 같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 시즌 막판 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궜다. ‘돌아온 명장’ 김호 감독이 이끄는 대전은 시민구단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성적인 홈팬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빅4’로 불리는 FC서울 등 대기업이 후원하는 구단들과 벌인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대전은 김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7월까지만 해도 10위로 처져 있어 플레이오프는 꿈도 꾸지 못할 처지였다. 예상은 예상일 뿐이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그러나 얼핏 보면 기적과 같은 승리이고 마술과 같은 역전 드라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건전한 경쟁관계다. 이뤄야 할 목표가 있고 따라잡아야 할 상대가 있을 때 발전이 있게 마련이다. 지나친 경쟁의식이 낳은 폐해도 만만치 않지만, 라이벌 관계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

언니 이겨보려했던 ‘아시아의 인어’

1980년대 한국 여자수영은 최윤정·최윤희 자매가 이끌었다. 1970년대 후반 서울운동장 수영장에서 열심히 헤엄을 친 자매는 동생 윤희가 1982년 뉴델리아시아경기대회 배영 여자 100m, 200m와 개인혼영 200m에서 3관왕에 오를 때까지 늘 언니 윤정이 앞서갔다. 뉴델리대회에서 언니는 동생의 종목에서 모두 은메달을 땄다. 어린 마음에 언니를 이겨보겠다고 하루 10km의 엄청난 훈련량을 이겨낸 최윤희는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배영 2관왕에 오르며 ‘아시아의 인어 자매’가 아닌 ‘아시아의 인어’로 우뚝 섰다.

올 시즌 K리그는 대전의 돌풍으로 시즌 막바지 열기가 달아올랐지만, 시즌 중반까지는 차범근 감독의 수원 삼성과 세뇰 귀네스 감독의 FC서울의 라이벌전이 최고의 화제였다. 관중 동원도 두 구단이 앞장서 이끌었다. 두 구단은 1984년 럭키금성 축구단이 1995년 공동 연고지였던 서울을 떠나 안양으로 옮기고 삼성그룹이 그해 2월 수원을 연고지로 프로축구에 뛰어들면서 라이벌전의 탄생을 알렸다. 구단 모기업의 주력 제품이 겹치던 시절이고 지역적으로 이웃이었으니 라이벌 구도를 이루는 데 더없이 좋은 여건이었다. 럭키금성 축구단은 그 뒤 안양LG로 이름을 바꾸고 연고지를 다시 서울로 옮기며 구단 이름도 또다시 FC서울로 변경했지만, 끈끈한 라이벌 관계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구단은 우수 선수를 경쟁적으로 영입하고 선수 육성 체계를 제대로 갖추는 등 라이벌전을 통해 K리그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1960~70년대 한국 스포츠의 기반은 금융단이었다. 금융단 스포츠는 예금 유치 경쟁 등에서 비롯된 은행 특유의 경쟁심을 바탕으로 한국 스포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50년대 한국은행-상업은행의 라이벌전으로 불붙기 시작한 금융단 여자농구는 이후 제일은행, 조흥은행 등이 경쟁에 뛰어들면서 경기력 향상이라는 값진 결과를 낳았다. 1967년 옛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벌어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준우승과 그해 도쿄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여자농구 우승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다. 금융단 여자농구의 선두주자인 한국은행을 따라잡으려는 상업은행, 그리고 상업은행을 뒤쫓는 제일은행 등의 건전한 경쟁관계가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화된 금융단 야구의 경쟁 구도는 한일은행-제일은행의 라이벌전을 중심으로 기업은행, 상업은행, 농협 등이 가세하며 실업야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들 금융단 야구의 융성으로 한국 야구는 1963년과 197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세계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기업은행, 산업은행, 한국은행이 치열한 3강전을 벌인 금융단 남자농구와 모든 시중은행에 농협과 한국자동차보험까지 합세해 별도의 리그까지 벌인 금융단 축구는 두 종목이 아시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는 데 결정적으로 힘을 보탰다. 금융단 스포츠 이후 세대인 1980~90년대 농구대잔치 삼성전자-현대전자의 남자 실업농구 라이벌전은 프로농구의 기반이 됐다.

대선도 플레이오프도 건전한 경쟁하길

프로화 시대에서 라이벌전은 리그의 흥미를 일으키고 관중 동원을 촉진하며 구단의 수입 증대에 이바지한다. 수입이 늘어난 구단은 확보한 자금으로 우수 선수를 영입하거나 유망주를 육성해 경기력을 강화하고 라이벌전은 물론 리그 전체의 수준을 높인다. 수준급 경기가 펼쳐지는 리그에는 당연히 관중이 모이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라이벌전은 스카우트 경쟁 등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아마추어 시절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해 경기장에서 승패를 가리는 게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 승부를 결정지으려 하기도 했다. 실업농구 시절 심판을 포커판에 불러 일부러 지는 것으로 향응을 했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반면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가 이른 시기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 데에는 심판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도 한몫을 했다. 야구 규칙의 심판원 조항에는 특별히 ‘심판원에 대한 일반 지시’가 있다. 이 조항에는 “심판원은 구단사무소를 방문하거나 어느 구단 임직원과 친밀하게 하려는 행동을 피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경쟁 의식이 작용하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포스트 시즌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프로축구의 경우 플레이오프를 거쳐 12월2일 챔피언결정전 2차전으로 최종 승자를 가린다. 대선은 플레이오프 격인 당내 경선 또는 후보 단일화 과정 등을 거쳐 12월19일 단판으로 열리는 챔피언결정전을 갖는다. 건전한 경쟁관계를 통한 멋진 결과가 올겨울을 풍성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