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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키스는 번지점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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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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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청결하게 하기’보다 효과적인 황홀한 키스를 나누는 비결

▣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성애의 표현으로 상대의 입에 자기 입을 맞추는 행위’인 키스를 미국에선 ‘혀들이 벌이는 하키’라고 부른다. 우리 뇌의 감각영역 중 가장 넓은 부위를 차지하는 혀와 입술의 격렬한 접촉을 통해 키스는 평소 0.3%에 불과한 쾌락의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을 마구 분비하게 만드는 연인들의 은밀한 축제다. 이 축제를 위해 우리는 70년 인생 중 약 12만 초, 꼬박 2주일을 보낸다.


충치와 구강 질병을 예방한다

낭만적 사랑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키스가 인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에 관한 의학자들의 연구 기사를 종종 신문에서 보게 된다. 그들의 결론은 키스를 많이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 키스의 의학적 효과를 연구하고 있는 미국의 버넌 박사에 따르면, 사랑하는 이와의 열정적인 키스는 한 번에 3.8kcal, 1분에 약 26kcal를 소모하게 만든다는 것. 가벼운 키스는 두 개의 근육을 움직이지만, 격렬한 키스는 얼굴 근육 34개를 모두 사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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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는 핏속의 백혈구 활동을 활성화해 면역 기능을 강화하고, 체내의 엔도르핀의 분비를 증가시키며,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때의 쾌감은 우리가 번지점프를 할 때 느끼는 쾌감에 버금가는 수준이라는 것이 호르몬 수치 비교를 했던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또 키스는 침 분비를 증가시키는데, 교감신경이 침샘 근육을 자극해 고여 있는 침을 짜내고, 부교감신경이 아드레날린 분비를 활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덕분에 입 안이 산성화되는 것을 막아주고, 충치나 다른 구강 질병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키스 연구자들은 감정을 한껏 낸 분위기 있는 키스가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한 바 있는데, 분위기 있는 키스를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5년은 장수한다는 주장을 폈다. 물론 설문으로 얻은 결과이니, ‘분위기 있는 키스’의 정의도 모호하고 수명 연장의 구체적인 메커니즘도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러나 믿어서 손해볼 것 없는 주장이니 즉시 실천해보길 모든 연인들과 부부들에게 권한다. 잉그리드 버그먼도 말하지 않았던가? “키스는 연인의 입에서 쓸데없는 말이 나올 때 그것을 막는 가장 사랑스런 방법”이라고. 앞으로 여자친구가 너무 잔소리를 하면 키스로 그 입을 막으시길.

키스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보니, 키스에 관한 갖가지 기록들이 매년 쏟아져나오고 있다. 1990년 미국 미네소타 르네상스 축제에서는 뉴브라이튼에서 온 알프레드 울프람이란 사람이 무려 8시간 동안 8001명과 키스를 한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시간적으로 따져보면, 1분에 16명과 키스를 했다는 얘기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키스를 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미국인 보비 셜록과 레이 블라지나인데, 1978년 5월1일부터 6일 동안 무려 130시간2분을 쉬지 않고 키스를 했다고 한다. 그보다 더 오래 키스를 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분은 빨리 세상에 고백하시라. 그러나 반드시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기네스북 기록 보유자는 신고하시라

영화에서 처음 키스를 한 커플은 1896년 존 라이스와 메이 어윈. 그들은 〈The Kiss〉라는 영화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처음으로 촬영했다. 영화에서 가장 오래 키스를 한 기록으로는 1941년 제인 웨이먼과 레이 투니가 <당신은 지금 군대에 있어요>(You’re in the Army Now)라는 영화에서 3분30초간 했던 키스라고 하는데, 아마도 포르노는 뺀 기록이리라 생각된다(포르노에선 오히려 키스를 잘 안 하던가?). 칠레에선 키스 기네스북에 대기록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2004년 산티아고라는 도시에서 무려 4400명이 동시에 한자리에 모여 키스를 하는 광경을 펼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이 기록을 깨기 위해 범국민적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키스학에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연구 주제는 ‘황홀한 키스를 하는 법’에 관한 연구다. 키스에 관한 전문서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랑의 바이블’인, 인도의 <카마수트라>에는 연인들에게 권하는 키스의 종류가 무려 30가지가 넘는다. 인도 사람들은 하루 종일 키스와 섹스를 즐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1936년 휴 모리스가 쓴 <키스의 기술>이란 책도 연인들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될 만한데, 우리나라에는 예전에 잠시 해적판으로 번역돼 나왔다가 지금은 절판된 상태라 구해볼 순 없다. 이 책은 키스에 관해 당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해놓은 책이라고 보면 된다. 이 책에는 다양한 크기의 입과 다양한 입술 모양의 여성들과 근사하게 키스하는 법에 관해 여러 챕터가 할애돼 있다.

최고의 키스꾼이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해 ‘사랑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 대답은 말초적이기 짝이 없다. 우선 입냄새가 없어야 하고, 청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매우 많다. 흥미로운 것은 키스 경험이 없는 학생들일수록 청결을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물론 입냄새는 최고의 키스꾼에게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요소임이 틀림없다. 영화사 책에 따르면, 비비안 리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찍을 때 클라크 게이블과 키스하는 장면을 매우 찍기 싫어했다고 한다. 이유는 하나! 클라크 게이블의 입냄새 때문.

여학생들은 낭만적인 분위기 조성과 풍부한 감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남학생들은 능숙하고 부드러운 혀놀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남학생들은 키스를 하는 순간의 자연스러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여학생들은 키스를 한 뒤의 어색함에 더 신경을 썼다.

키스 남녀의 동상이몽

서양에서는 훌륭한 키스는 ‘때론 부드럽고 갑자기 격렬하다가 다시 부드러워지는 혀놀림’을 매우 강조했는데, 여학생들은 친구들끼리 고등학교 때 키스하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혀와 입술을 주기적으로 자극하는 사람’을 최고의 키스꾼으로 치기 때문이다. 그것은 혀와 입술이 가장 민감한 감각기관이므로, 키스를 하는 동안 최대의 자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자극이 일정하게 유지돼서도 안 되고 너무 약한 자극만 지속돼도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여기에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18세기까지 서양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이 키스를 하지 않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아무도 일본 사람들이 키스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이 실제로 키스를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아시아에서는 남성들이 키스를 섹스를 하기 전에 하는 ‘전희’로 생각해왔다. 그러니 그들의 섹스 광경을 엿보지 않는 이상, 키스하는 모습을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 와서도 특히나 남성들 사이에서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남성들은 격렬한 키스를 좋아하며 그것을 ‘섹스로 가는 길목’ 중 하나로 간주하는 경향이 여성보다 강하다. 한 예로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광범위하게 행해진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키스는 ‘프렌치 키스’인 데 반해, 여성들은 가벼운 키스를 더 자주 하길 원한다고 한다. 설문조사에서 여성은 그들의 관계가 처음 만났을 때의 관계로 돌아가고 싶을 때 키스를 원한다고 답했고, 남성들은 그들의 관계가 앞으로 더 전진하고 싶을 때 키스를 하고자 했다.

이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남성들이 황홀한 키스를 못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남성은 키스가 섹스로 가는 길목이자 전희로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의 기대치보다 더 수위가 높은 키스를 할 가능성이 높다. 하키를 하듯 휘두르는 혀나 깨물듯 빨아대는 입술의 움직임은 남성들에겐 아주 자연스런 행위이지만, 여성들에겐 때론 ‘배려 없는 동물적인 키스’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최고의 키스는 상대가 기대하는 키스를 해주는 것, 바로 ‘배려의 키스’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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