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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봉선화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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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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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글 유승하


“저는 봉선화를 기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여름이면 손톱에 꽃물을 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의 공개수업 때 일이다.
꽃, 장난감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그 이유를 말하는 수업인데, 아들은 나름대로 그럴듯하게 그린 봉선화 그림을 들고 나와 또박또박 큰소리로 발표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견하고 뿌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학급의 개구쟁이 사내아이들은 ‘와∼’하며 큰소리로 웃는 것이다.

“남자가 봉숭아 꽃물을 들인데… 와하하하하∼!”
선생님은 그럴 수 있다며 부드럽게 마무리해주셨지만 자리로 들어간 아들도, 뒤에서 지켜보던 나도 얼굴이 봉선화처럼 붉어졌다.
해마다 여름이면 아이들과 꽃잎을 따서 손톱에 물들이며 놀았는데 그저 웃는 녀석들만 원망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꽃잎을 따왔다. 여동생과 함께 물들이자고 했더니 아들녀석은 펄쩍 뛰면서 도망간다.
그 심정 십분 이해하니 딸아이와 둘이서만 열손가락 가득 물들인다.
여름이 가고 꽃잎은 져도 딸아이와 나의 손톱, 발톱에는 봉선화가 가득 남아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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