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종교음악의 마력에 푹 빠져볼 수 있는 <떼제의 노래>
신앙인들에게 종교가 절대의 안식이자 신념이라면 비신앙인들에게 종교는 비이성적이고 모호한 주술로 느껴진다. 종교를 아편이라고 말한 마어쩌둥의 추종자가 아니더라도 비신앙인과 신앙인이 종교에 관해서 논쟁하는 것만큼 무의미해 보이는 것도 없다. 신앙인과 비신앙인을 나누는 종교의 벽은 기실 정치적 입장의 차이보다도 높다.
떼제, 개신교·가톨릭 수사들의 공동체
이렇게 공고한 벽을 사이에 두고 두쪽이 손을 잡을 수 있는 구멍이 하나 있다. 바로 종교음악이다. 칸타타나 마태수난곡 같은 바흐의 종교음악은 고전음악 애호가들로부터 종교를 막론해서 사랑받고 있으며, 한번도 예불해본 적 없는 사람이 찬불가를 들으며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경우도 흔하다. 90년도 초반 그레고리안 성가가 빌보드차트에 올랐던 ‘사건’은 교리적 맥락과는 무관하게 종교음악의 성스러움이 때로 종교 그 자체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출반된 <떼제의 노래>(Songs from Taize, C&L뮤직)는 비종교인이라도 눈물을 글썽거리게 할 수 있는 종교음악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앨범이다. 국내에서도 몇번 소개된 적 있는 떼제공동체는 전세계인들에게 하나의 종교를 뛰어넘는 성지로 각인된 곳이다. 프랑스 동부의 시골마을 떼제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출신의 수사 90여명이 생활하는 이 공동체는 불과 50년 남짓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도 매주 적게는 3천명, 많게는 6천명의 젊은이들이 떼제로 순례 온다.
1940년 스위스 출신의 청년 로제 수사가 2차대전의 포화 속에서 나눔과 화해의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프랑스를 여행하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떼제다. 로제 수사는 몇채 되지 않은 집 가운데 일부는 폐허가 된 이 마을에서 먹을 곳을 찾다가 한 할머니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작고 초라한 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노인으로부터 “젊은이 여기에 머물도록 하게, 우리는 너무 가난하고 외롭다네”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인 그는 떼제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2차대전중에 피난중인 유대인들을 숨겨주어 목숨의 위협까지 당하면서 로제 수사는 자기의 뜻에 동참하는 수사들 여섯명을 만나 1949년 떼제공동체를 만들었다. 수사들의 협동농장으로 운영되는 떼제공동체는 토지를 소유하지 않고 자본을 축적하지 않으며 어떤 선물이나 기부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사들은 이곳에 들르는 젊은이들을 그저 기쁘게 맞이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번민의 늪에서 빠져 나오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소박한 조언도 해준다.
시냇가 졸졸 흐르는 물소리 같은…
떼제의 노래는 떼제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의식이자 기도다. 하루 세번 열리는 공동기도모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수사와 젊은이들이 언덕 위 ‘화해의 교회’로 모인다. 종소리가 잦아들고 침묵이 흐르면 수사들이 첫마디를 떼고 모두가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돌림노래, 합창, 응답송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 떼제의 노래는 짧고 단순하다. 대체로 수사들이 성경의 한 구절을 솔로형식으로 노래하면 청중이 라틴어로 된 후렴구를 반복하면서 화답하는 형식이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청중을 위해 수사들은(수사들 역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출신지역이 다양하다) 10여개 국어로 노래를 반복한다. 무반주로 연주될 때가 많고 반주가 동원되더라도 기타나 플루트 등 한두 가지만 노래와 어울린다. 연주자 역시 기도모임에 참석한 청중 중에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맡는다. 그러나 이번 음반에서는 이밖에도 리코더 같은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를 몇 가지 추가했고, 노래 역시 성악가들이 맡아서 떼제의 노래 특유의 소박함은 덜하지만 더 안정적이고 귀에 편하게 들려온다.
떼제의 노래는 경건하다는 면에서 그레고리안 성가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단순하고 잔잔하다. 그레고리안 성가가 중세 성당의 신비로운 스테인드 글라스를 연상시킨다면 떼제의 노래는 시골의 냇가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물소리 같다. 숨가쁜 일상에서 잠시 상상의 휴식처로 떠나고 싶다면 이 음반을 CD플레이어에 올려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남성, 여성 솔로와 합창이 깊은 한숨처럼 어울어지는 음악 속에서 “떼제를 지나가는 것은 샘터를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나그네는 잠시 쉬면서 갈증을 풀고 갑니다”라고 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떼제공동체의 공동기도모임. 이들은 방문자들과 함께 노래하면서 종교의 벽을 뛰어넘는 화해의 순간을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