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홍명보 등 잇단 중징계… 선수도 관중도 싸우지 좀 맙시다
▣ 신명철 <스포츠 2.0> 편집위원
1983년 6월은 뜨거웠다. 날씨만 그랬던 게 아니다. 붉은 악마가 멕시코 고원에서 일으킨 화끈한 돌풍이 한반도로 밀어닥쳤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두 번째 시즌을 맞아 장명부를 앞세운 삼미 슈퍼스타즈가 기세를 올리고 있었고, 청소년 축구는 날마다 승전보를 띄웠다. 온 국민의 눈과 귀는 스포츠에 집중됐다. 누군가 회심의 미소를 흘리고 있는 가운데….
주심 폭행한 북한 대신 남한이 출전 박종환 감독이 이끈 한국은 제4회 20살 이하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스코틀랜드에 0-2로 져 무겁게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2차전에서 홈그라운드의 멕시코를 2-1로 물리친 게 결정적이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1-1로 맞선 후반 44분 신연호가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어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김종건의 선제골과 김종부의 추가골로 오스트레일리아를 2-1로 꺾고 조 1위 스코틀랜드와 함께 8강에 올랐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준준결승에서 신연호의 선제골과 결승골에 힘입어 우루과이를 연장 접전 끝에 2-1로 따돌리고 4강에 올랐다. 한국은 브라질과 치른 준결승에서 전반 14분 김종부가 선취골을 넣었으나 전반 22분 글리마 포포카에게 동점골, 후반 36분 산토스에게 역전골을 내주고 3위 결정전으로 밀렸다. 김종부는 3년 뒤 같은 곳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불가리아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25분 동점골을 넣어 한국이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승점을 올리는 데 이바지한다. 한국은 폴란드와 치른 3위 결정전에서 전반 37분에 터져나온 이기근의 골을 지키지 못하고 연장 접전 끝에 1-2로 졌다. 그러나 청소년대표팀은 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처음으로 4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19년 뒤 국가대표팀이 이룬 월드컵 4강의 예고편이었다. 그러나 이 예고편은 북한의 간접적인 도움이 없었으면 상영될 수 없었다. 한국은 1982년 7월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제23회 19살 이하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동부지역 예선 겸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예선 준결승에서 북한에 3-5로 진 뒤 3위 결정전에서 타이를 4-1로 누르고 3위를 했다. 그런데 이 3위가 이듬해 붉은 악마 돌풍의 불씨 구실을 했다. 북한은 그해 11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경기대회 축구 경기에서 판정에 불만을 품고 주심을 폭행해 FIFA로부터 2년 동안 국제대회에 나서지 못하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에 따라 한국은 12월에 열린 19살 이하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본선에 북한을 대신해 출전해 서부지역 대표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을 4-0, 이라크를 2-1로 물리치고 동부지역 대표인 중국과 1-1로 비겨 아시아선수권자가 되면서 이듬해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어찌 여자가…” 종목 폐지 징계키도 한국 여자 하키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 준우승을 시작으로 1986년 서울 대회부터 1998년 방콕 대회까지 4연속 우승과 두 차례 준우승 등 빛나는 전적을 자랑한다. 지난해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한국인 지도자를 영입해 급성장한 중국에 예선 리그에서 0-1로 진 데 이어 3위 결정전에서 1970년대까지 파키스탄과 세계 하키계를 양분하던 인도에 0-1로 패해 4위에 그쳐 뉴델리 대회 이후 처음으로 메달을 따지 못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는 1988년 서울 대회와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 준우승하는 등 인기 종목인 배구나 농구를 앞지르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이같은 성과 뒤에는 말 못할, 그리고 결코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아픔이 있다. 1974년 10월 서울에서 벌어진 제55회 전국체육대회 하키 여고부 결승에서 스틱을 휘두르는 싸움이 벌어져 1982년 10월 경상남도에서 열린 제6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부활되기까지 전국체육대회에서 여고부 하키 종목이 없어진 것이다. 그때 사고로 크게 다친 선수는 없었지만 “어떻게 여자가 스틱을 휘두르며 싸울 수 있느냐”는 매서운 여론에 밀려 종목 폐지라는 한국 스포츠 사상 전무후무한 중징계를 받았다. 여자 하키는 그로부터 긴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벌이 엄했던 만큼 여자 하키 관계자들의 반성과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다짐도 강했다. 여고부 종목이 부활된 그해 11월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준우승한 여자 하키는 4년 뒤에 열린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임계숙 등을 앞세워 아시아 정상에 오른다. 그때의 아픔을 계기로 하키에서는 경기장 폭력이라는 낱말이 사라졌다. 북한 축구와 국내 여고부 하키의 사례는 경기장 폭력과 관련해 많은 교훈이 된다. 최근 한국 축구에서 ‘중징계’라는 단어가 잇따라 터져나왔다. 프로축구 K리그 수원 삼성 안정환은 2군 리그 경기 도중 FC서울 서포터의 인신 모독성 야유에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관중석에 올라가 벌금 1천만원의 결코 가볍지 않은 징계를 9월12일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받았다. 안정환은 그나마 점잖게 항의해 출전 정지 징계를 병과받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199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에릭 칸토나처럼 관중석으로 뛰어들며 발길질이라도 했다면 매우 엄한 벌을 받을 뻔했다. 9월19일에는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코치가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부터 8경기 출전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홍명보 코치는 지난 7월28일 인도네시아 팔렘방에서 열린 2007 아시안컵 3위 결정전 일본과의 경기 도중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에는 이번 징계 조치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 코치는 일본전 후반 11분 아랍에미리트연합 출신의 알바드와위 주심이 중앙수비수 강민수(21·전남)에게 경고 누적에 따라 레드카드를 빼들자 부심에게 강력히 항의했고, 알바드와위 심판은 핌 베어벡 감독에 이어 홍 코치를 즉각 퇴장 조치했다. AFC는 홍 코치가 테크니컬 지역을 벗어나 불만을 나타내면서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 수위를 더욱 높인 것으로 보인다. 안정환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현역 선수이고 홍명보는 앞으로 상당 기간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지도자다. 두 축구인이 이유가 어찌됐든 중징계를 받았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축구나 여자 하키의 예와 달리 이번 사태의 징계 사유는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야유나 욕설에서 비롯됐다는 게 다소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지나친 야유나 욕설도 엄연한 폭력이다. 효창운동장식 “퍽·찰싹” 없어져야 경기장 폭력은 인류가 스포츠라는 유희를 시작한 이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종목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도자가 선수에게 체벌을 하는 것은 요즘은 은밀하게 이뤄지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공공연하게 진행됐다. 잠실올림픽 주경기장과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생기기 전 한국 축구의 중심은 효창운동장이었다. 그런데 효창운동장을 찾았던 축구 올드팬에게는 귀에 익은 소리가 있다. “퍽, 퍽” 또는 “찰싹, 찰싹”이다.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거나 뺨을 때리는 소리다. 전반전이 끝나고 경기장 한쪽 구석에서 관중이 보건 말건 폭력을 행사하는 지도자들이 그 시절에는 꽤 있었다. 그런 지도자나 특정 선수에게 인신공격성 야유를 하는 저질 관중이나 다를 게 없다. 프로축구나 프로야구, 프로농구와 같이 특정 종목에서 경기장 폭력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종목별 인기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안정환 사태도 비인기 종목에서 일어났다면 사회적 반향이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욕설이든 물리적 폭력이든 무력을 꼭 써야 할 경우는 아주 제한적일 것이다. 나라가 이민족의 침략을 받을 때, 가족을 범죄로부터 지켜야 할 때, 나보다 약한 이가 힘을 가진 자에게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정도일 것이다. 신세대 스포츠 팬 가운데에는 특히 유럽 축구의 예를 들면서 욕설을 포함한 응원도 경기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릇된 생각이다. 이번호 주요기사 ▶마침내 양심의 감옥을 벗어나다
▶민노당은 또 사표론에 삐끗하는가
▶ “아저씨, 뱅뱅이 그네 만들어주세요”
▶냉소만 흘러들어 한류우드인가
▶이스라엘은 핵 보유국이다
▶‘태백산맥’의 조원제, 총 대신 책을 잡다

지난 5월4일 저녁 서울 잠실경기장에서 열린 2007 프로야구 두산과 LG의 경기 도중 두 팀 선수들이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현태)
주심 폭행한 북한 대신 남한이 출전 박종환 감독이 이끈 한국은 제4회 20살 이하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스코틀랜드에 0-2로 져 무겁게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2차전에서 홈그라운드의 멕시코를 2-1로 물리친 게 결정적이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1-1로 맞선 후반 44분 신연호가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어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김종건의 선제골과 김종부의 추가골로 오스트레일리아를 2-1로 꺾고 조 1위 스코틀랜드와 함께 8강에 올랐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준준결승에서 신연호의 선제골과 결승골에 힘입어 우루과이를 연장 접전 끝에 2-1로 따돌리고 4강에 올랐다. 한국은 브라질과 치른 준결승에서 전반 14분 김종부가 선취골을 넣었으나 전반 22분 글리마 포포카에게 동점골, 후반 36분 산토스에게 역전골을 내주고 3위 결정전으로 밀렸다. 김종부는 3년 뒤 같은 곳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불가리아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25분 동점골을 넣어 한국이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승점을 올리는 데 이바지한다. 한국은 폴란드와 치른 3위 결정전에서 전반 37분에 터져나온 이기근의 골을 지키지 못하고 연장 접전 끝에 1-2로 졌다. 그러나 청소년대표팀은 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처음으로 4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19년 뒤 국가대표팀이 이룬 월드컵 4강의 예고편이었다. 그러나 이 예고편은 북한의 간접적인 도움이 없었으면 상영될 수 없었다. 한국은 1982년 7월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제23회 19살 이하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동부지역 예선 겸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예선 준결승에서 북한에 3-5로 진 뒤 3위 결정전에서 타이를 4-1로 누르고 3위를 했다. 그런데 이 3위가 이듬해 붉은 악마 돌풍의 불씨 구실을 했다. 북한은 그해 11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경기대회 축구 경기에서 판정에 불만을 품고 주심을 폭행해 FIFA로부터 2년 동안 국제대회에 나서지 못하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에 따라 한국은 12월에 열린 19살 이하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본선에 북한을 대신해 출전해 서부지역 대표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을 4-0, 이라크를 2-1로 물리치고 동부지역 대표인 중국과 1-1로 비겨 아시아선수권자가 되면서 이듬해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어찌 여자가…” 종목 폐지 징계키도 한국 여자 하키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 준우승을 시작으로 1986년 서울 대회부터 1998년 방콕 대회까지 4연속 우승과 두 차례 준우승 등 빛나는 전적을 자랑한다. 지난해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한국인 지도자를 영입해 급성장한 중국에 예선 리그에서 0-1로 진 데 이어 3위 결정전에서 1970년대까지 파키스탄과 세계 하키계를 양분하던 인도에 0-1로 패해 4위에 그쳐 뉴델리 대회 이후 처음으로 메달을 따지 못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는 1988년 서울 대회와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 준우승하는 등 인기 종목인 배구나 농구를 앞지르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이같은 성과 뒤에는 말 못할, 그리고 결코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아픔이 있다. 1974년 10월 서울에서 벌어진 제55회 전국체육대회 하키 여고부 결승에서 스틱을 휘두르는 싸움이 벌어져 1982년 10월 경상남도에서 열린 제6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부활되기까지 전국체육대회에서 여고부 하키 종목이 없어진 것이다. 그때 사고로 크게 다친 선수는 없었지만 “어떻게 여자가 스틱을 휘두르며 싸울 수 있느냐”는 매서운 여론에 밀려 종목 폐지라는 한국 스포츠 사상 전무후무한 중징계를 받았다. 여자 하키는 그로부터 긴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벌이 엄했던 만큼 여자 하키 관계자들의 반성과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다짐도 강했다. 여고부 종목이 부활된 그해 11월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준우승한 여자 하키는 4년 뒤에 열린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임계숙 등을 앞세워 아시아 정상에 오른다. 그때의 아픔을 계기로 하키에서는 경기장 폭력이라는 낱말이 사라졌다. 북한 축구와 국내 여고부 하키의 사례는 경기장 폭력과 관련해 많은 교훈이 된다. 최근 한국 축구에서 ‘중징계’라는 단어가 잇따라 터져나왔다. 프로축구 K리그 수원 삼성 안정환은 2군 리그 경기 도중 FC서울 서포터의 인신 모독성 야유에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관중석에 올라가 벌금 1천만원의 결코 가볍지 않은 징계를 9월12일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받았다. 안정환은 그나마 점잖게 항의해 출전 정지 징계를 병과받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199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에릭 칸토나처럼 관중석으로 뛰어들며 발길질이라도 했다면 매우 엄한 벌을 받을 뻔했다. 9월19일에는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코치가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부터 8경기 출전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홍명보 코치는 지난 7월28일 인도네시아 팔렘방에서 열린 2007 아시안컵 3위 결정전 일본과의 경기 도중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에는 이번 징계 조치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 코치는 일본전 후반 11분 아랍에미리트연합 출신의 알바드와위 주심이 중앙수비수 강민수(21·전남)에게 경고 누적에 따라 레드카드를 빼들자 부심에게 강력히 항의했고, 알바드와위 심판은 핌 베어벡 감독에 이어 홍 코치를 즉각 퇴장 조치했다. AFC는 홍 코치가 테크니컬 지역을 벗어나 불만을 나타내면서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 수위를 더욱 높인 것으로 보인다. 안정환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현역 선수이고 홍명보는 앞으로 상당 기간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지도자다. 두 축구인이 이유가 어찌됐든 중징계를 받았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축구나 여자 하키의 예와 달리 이번 사태의 징계 사유는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야유나 욕설에서 비롯됐다는 게 다소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지나친 야유나 욕설도 엄연한 폭력이다. 효창운동장식 “퍽·찰싹” 없어져야 경기장 폭력은 인류가 스포츠라는 유희를 시작한 이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종목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도자가 선수에게 체벌을 하는 것은 요즘은 은밀하게 이뤄지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공공연하게 진행됐다. 잠실올림픽 주경기장과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생기기 전 한국 축구의 중심은 효창운동장이었다. 그런데 효창운동장을 찾았던 축구 올드팬에게는 귀에 익은 소리가 있다. “퍽, 퍽” 또는 “찰싹, 찰싹”이다.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거나 뺨을 때리는 소리다. 전반전이 끝나고 경기장 한쪽 구석에서 관중이 보건 말건 폭력을 행사하는 지도자들이 그 시절에는 꽤 있었다. 그런 지도자나 특정 선수에게 인신공격성 야유를 하는 저질 관중이나 다를 게 없다. 프로축구나 프로야구, 프로농구와 같이 특정 종목에서 경기장 폭력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종목별 인기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안정환 사태도 비인기 종목에서 일어났다면 사회적 반향이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욕설이든 물리적 폭력이든 무력을 꼭 써야 할 경우는 아주 제한적일 것이다. 나라가 이민족의 침략을 받을 때, 가족을 범죄로부터 지켜야 할 때, 나보다 약한 이가 힘을 가진 자에게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정도일 것이다. 신세대 스포츠 팬 가운데에는 특히 유럽 축구의 예를 들면서 욕설을 포함한 응원도 경기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릇된 생각이다. 이번호 주요기사 ▶마침내 양심의 감옥을 벗어나다
▶민노당은 또 사표론에 삐끗하는가
▶ “아저씨, 뱅뱅이 그네 만들어주세요”
▶냉소만 흘러들어 한류우드인가
▶이스라엘은 핵 보유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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