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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랑으로 길들기 전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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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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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모든 걸 바친 남자아이 이야기, 성석제의 <첫사랑>을 ‘너’에게 권한다

▣ 태풍클럽 출판 편집자

Y에게. 오늘 네게 소설 한 권을 보낸다.

나는 책이나 음악 같은 것을 남에게 권하지도 않고, 남이 권하는 것을 잘 받아들이는 편도 아니다. 취향의 공유라는 것은 확실히 부질없고, 설사 그것이 취향이 아니라 ‘감동’의 문제라 해도 휘발돼버린 그 맥락을 타인에게 전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야.

(사진/ 한겨레 장철규 기자)


그럼에도 십여 년 전 나에게 굳이 이 소설을 권해준 사람이 있었다. 평상시 소설 따윈 그다지 읽지도 않던 그 남자는 당시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아닌지를 두고 방황했는데, 지금은 어쨌거나 그가 좋다며 순정하게 따라다니던 어느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도 낳고, 아마도 잘살고 있다더라. 남자가 권해준, 그해 이상문학상 수상작 선집에 들어 있던 성석제의 소설 <첫사랑>의 첫 문단은 이렇다. “…매일이 똑같았다. 빵틀에서 똑같은 빵이 찍혀 나오듯이 오늘은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이었다. 그리고 네가 따라오고 있었다. 매일 따라오는 네가.”

지옥(地獄) 중학교에 다니는 두 남자아이가 있다. 지옥은 대한민국 지방 소도시 어딘가에 언젠가 존재했던 곳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지옥에서 가장 막강한 존재인 백승호는 깡패에게 얻어맞고 화장실에서 코피를 흘리고 있던 주인공 ‘나’와 마주쳐 사랑에 빠진다. ‘나’는 학교에서 가장 힘센 아이도, 선생들도, 어른들도 눈치를 보게 만드는 백승호가 전혀 두렵지 않다. ‘나는 네가 무섭지 않았다. 그냥 싫었다.’ 사랑하는 자는 영원히 약자, 사랑받는 자는 영원히 강자라지. <첫사랑>은 바로 그런 사랑 이야기다.

백승호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보름달 빵을 바치고, 새벽녘 김 나는 여자 목욕탕의 풍경을 바치고, 모든 아이들의 우상이었던 빵집 여자아이를 ‘먹는’ 장면까지 바친다. 하지만 ‘나’는 그와 사랑에 빠질 정도로 어리석은 중학생이 아니었다. 지옥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그리고 그곳을 빠져나갈 유일한 길은 공부였다. ‘나’는 지옥을 빠져나가기 위해 공부를 했고, 다른 도시의 고등학교에 합격했으며, 공부에도 그 어느 것에도 관심 없었던 백승호는 그곳에 남는다. 합격통지서를 받아들고 나오던 주인공은 백승호와 마주친다. “너, 다시는 안 오겠구나.” “그래.” “사랑한다.” “나도.”

‘딴 세상의 바다에선 고래가 펄쩍 뛰어오르던’ 바로 그때, 모든 남자아이들은 그렇게 사내가 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나는 남자가 왜 내게 이 소설을 읽어달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히 말하기는 힘든 무언가를 누군가 알아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동성애, 이성애, 집착, 파워게임, 밀고 당기기 등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모든 언어화되고 관념화된 것 이전의, 길들지 않은 생생하고 가슴 뭉클한 무언가를. 첫사랑을.

Y, 너는 내게 십 년 전 어느 날 소설을 권해준 바로 그 남자의 십 년 전 모습일 수도 있고, 혹은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논술학원에 다니는 여드름투성이의 열여섯 소년일 수도 있을 테지. 아니면 소년들의 사랑엔 그다지 관심 없는 스무 살 처녀일 수도 있고. 네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첫사랑>의 사랑이 딱히 ‘동성애’라는 말을 붙여도 좋고, 붙이지 않아도 좋은, 아직 무형의 원형질인 것처럼 말이야.

다만 빛나는 그 황금의 시간, 네가 아직 맞이하지 않았거나, 곁에 머무르고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 그 시간을 너에게 보내고 싶다. 세상의 많은 빛나고 좋은 것들이 그렇게 이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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