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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 분’이 백구두 신고 화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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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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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핸드볼 편파 판정 논란을 보며 짚어본 판정 시비의 역사 속 한국

▣ 신명철 <스포츠2.0> 편집위원

한국은 9월6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서 막을 내린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핸드볼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편파 판정 논란 끝에 어렵사리 준우승해 내년 5월 열릴 세계예선 출전권을 따냈다. 한국은 개막전에서 아시아핸드볼연맹(AHF) 회장국인 쿠웨이트에 20-28로 지며 험난한 베이징행을 예고했다. 경기 편집화면을 보면 쿠웨이트전에서 요르단인 심판이 어느 정도 엉터리 판정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핸드볼에서 ‘오버스텝’은 농구의 ‘트래블링’과 같은 반칙으로 핸드볼을 10년 이상 한 국가대표급 선수라면 한 시즌에 하나 정도 할까 말까 한다. 기본기 가운데 기본기다. 그러나 요르단인 심판은 스텝 수를 대충 보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요르단인 심판이 핸드볼을 하기는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편파 판정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또 어느 나라건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 복싱선수단 철수시키겠다”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서 막을 내린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중동 심판들의 극심한 편파 판정 속에서도 2위를 차지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 본선 진출의 불씨를 살려낸 핸드볼 남자대표팀 선수들이 9월7일 인천공항에서 귀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최근 사적 보복 폭력으로 물의를 일으킨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젊은 시절 편파 판정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복싱 라이트웰터급에 출전한 김동길은 뛰어난 경기력으로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준준결승에서 미국의 제리 페이지를 만나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판정으로 져 탈락했다. 문제는 이 경기의 내용이 한국의 눈에만 편파 판정을 비친 게 아니었다는 데 있다. 당시 대회에 참가한 제3국 관계자들은 물론 일부 미국 관계자들조차 김동길의 우세를 인정할 정도였다. 한국으로서는 금메달 후보 하나를 날려버린 꼴이었다.

아시아의 복싱 강국을 자처하고 있는 한국이지만 올림픽에서는 오랫동안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1948년 런던올림픽 플라이급 동메달 한수안을 시작으로 1964년 도쿄올림픽 밴텀급 정신조와 1968년 멕시코올림픽 라이트플라이급 지용주는 금메달 일보 직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두 선수의 은메달을 포함해 1980년대까지 한국 선수들은 국제 무대에서 스포츠 약소국의 설움을 곱씹어야 했다. 옛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들의 대거 불참으로 한국 복싱은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앞두고 올림픽 첫 금메달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기대를 걸고 있던 라이트플라이급의 김광선이 하필이면 1회전에서 홈 링의 폴 곤살레스와 만나 선전했지만 판정패해 일찌감치 메달 전선에서 멀어졌다. 주심은 인파이터인 김광선의 공격 리듬을 교묘하게 끊었다. 김광선은 4년 뒤 서울올림픽에서 체급을 올려 플라이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지금도 로스앤젤레스 대회 1회전은 편파 판정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복싱 관계자는 물론 국내 스포츠팬들이 잔뜩 기대를 걸었던 김광선에 이어 김동길마저 메달권에 들지 못했으니 한국은 더 이상 희망을 걸 데가 없었다. 한국 복싱선수단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심판의 편파 판정에 강력히 항의했다. 김승연 대한복싱연맹 회장은 그때 30대 초반이었다. 당시 기자회견장에 있었던 기자에 따르면 김 회장은 하얀색 양복 정장에 백구두를 신고 2-8 가르마를 타고 있었다고 한다. 외모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말투에서도 의도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고는 한국 복싱선수단을 철수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올림픽 같은 큰 규모의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이 기자회견을 여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다소 억울한 일이 있어도 언어 문제라든지 이런저런 이유로 우물우물 넘어가곤 했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쪽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지만 판정이 번복될 리는 없었다. 그러나 이같은 강력한 자세는 주최 쪽에 적지 않은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버질 힐(미국)과 결승전을 치른 미들급 신준섭의 3-2 판정승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이들의 분석이다.

스승의 ‘편파 판정 한’ 풀어준 김재엽

편파 판정의 억울한 마음을 제자를 통해 10여 년 만에 푼 사례도 있다. 김재엽은 1980년대 한국 유도 경량급의 간판스타다. 먼저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유도 남자 60kg급 결승 장면을 떠올려본다. 1983년 세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한 김재엽은 한국 선수단이 꼽은 금메달 후보였다. 그러나 김재엽은 결승에서 일본 역시 우승 후보로 내세운 호소카와 신지에게 업어치기, 되치기를 당하며 누르기 한판으로 졌다. 호소카와는 이후 1985년 서울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고 잠시 매트를 떠났다. 김재엽은 올림픽 금메달 좌절 이후 체중 조절과 무릎 부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정상의 꿈을 다시 키우기 시작했다. 일본 유도계는 호소카와의 후계자로 내세운 오노가 김재엽에게 무너지자 1987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호소카와에게 현역 복귀 명령을 내렸다.

두 선수는 1987년 11월 옛 서독의 에센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맞섰다. 김재엽은 경기 시작 34초 만에 호소카와를 허벅다리걸기 한판으로 물리쳤다. 1승1패. 3년 전 올림픽에서 두 선수의 경기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각국 기자들은 한판으로 승패를 주고받은 두 선수의 향후 대결에 관심을 쏟았다. 많은 질문이 있었으나 호소카와의 답변은 간단했다. “내년(1988년) 서울에서 보자.” 기자회견이 열리는 동안 체육관 한켠에서는 장은경 감독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장은경 감독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유도 63kg급(체급 조정 전 최경량급) 결승에서 영국인 주심 조지 케르의 엉뚱한 판정으로 쿠바의 로드리게스에게 금메달을 내줘야 했다. 케르 주심은 장은경의 승리를 선언했다가 부심과 협의하더니 판정을 뒤집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유도 최경량급의 세계 정상을 후배 김재엽이 이뤄낸 순간 ‘불암산 호랑이’도 눈물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년 뒤. 1988년 서울올림픽 유도 남자 60kg급 결승이 벌어진 서울 장충체육관. 김재엽과 일본계 미국인 케빈 아사노가 맞붙었다. 이에 앞서 열린 준결승에서 호소카와는 케빈 아사노에게 1-2로 판정패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경기였다. 호소카와의 우세가 인정될 수도 있는 경기였다. 김재엽의 결승 상대를 미리 떨어뜨려버렸다는 의심을 품을 수도 있었다. 기자회견장에서 〈AP통신〉 기자가 유창한 일본어로 호소카와에게 직접 물었다. 판정에 불만은 없었느냐고. 호소카와는 판정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지 않았다.

판정 피해자에서 수혜자로 위상 바뀌나

이무렵 한국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판정의 피해자에서 수혜자로 위상이 바뀌고 있었다. 스포츠에서도 힘의 논리는 통하지만 그 힘이 영원하지는 않다.

한국은 최근 박용성 국제유도연맹(IJF) 회장이 자진 사퇴하고 강영중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회장이 펀치 구날란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세력에 밀리며 회장직이 흔들리는 등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박 회장의 경우 1995년 도쿄 총회에서 IJF 회장으로 당선되기 전부터 IJF 재무이사 등 요직을 맡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유도 여자 72kg급 결승에서 김미정은 경기 종료 직전 효과에 가까운 공격으로 다나베 료코를 판정으로 물리치고 한국 유도 사상 첫 여자 올림픽 챔피언이 됐다. 그러나 누가 봐도 3-0이었을 그날의 판정은 2-1이었다. 두 부심이 모두 김미정의 손을 들어줬으면 주심은 깃발을 들 필요가 없었다. 때마침 9월13일부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2007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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