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탈모증으로 머리카락 없어 모자 쓰고 수영해 운명 같다는 국가대표 이지은 선수
▣ 송호진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dmzsong@hani.co.kr
그 웃음은 여전할까?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수영여자 400m 시상대에 태극마크가 그려진 수영모자를 그대로 쓴 채 3위 단상에 올랐던 소녀. “그래도 수영장에선 모자를 쓸 수 있지 않니?”라고 보듬었다던 엄마의 격려를 기자 언니, 오빠들에게 얘기했던 아이. 그 말을 받아적는 기자들은 가슴이 뜨거워져 참 혼났는데, ‘난 괜찮은데 왜들 그러세요’란 표정으로 되레 생글생글 웃던 그 미소. 잘 있을까?
최근 일본에서 열린 수영 프레올림픽을 다녀왔다기에 목포 학교(전남제일고3)로 찾아가 만나보려고 했더니, 또 태릉선수촌에 들어왔다고 했다. 10월 전국체전 탓이었다. 지난 3월 세계선수권 등에 참가하느라 올해 선수촌 밖에 있던 시간이 한 달뿐이라니, 국가대표란 되기도 힘들고 지키기도 어려운 자리다. 새벽 운동, 오전엔 서울체고에서 위탁교육, 오후엔 선수촌 운동, 월요일과 수요일 밤엔 선수촌에서 하는 영어 교육 수업…. ‘휴~’ 한숨 나오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컴퓨터로 영화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선수촌 노래방에서 가끔 노래도 부른다고 한다. 발라드를 좋아한다나. 병원에서 오는 길에 본 아빠의 눈물 “나 데이트하러 간다.” 9월7일 이른 아침 선수촌 벤치에서 같이 얘기하려고 가는 길에 만난 동료들에게 (이)지은이는 슬쩍 농담을 던졌다. 자신은 주말에 광주에서 열린 회장기 대회에 참가하느라 다른 선수들이 누리는 2박3일의 외박을 그냥 날려버리게 됐는데도 툴툴대지 않았다. “우리 집에 남동생만 쌍꺼풀이 없어요. 엄마가 동생 낳기 전에 새우가 먹고 싶으셨대요. 그걸 드셔서 동생 눈이 그런 것 같아요.” 큰 눈에 웃음을 가득 담은 그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같이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누나가 수영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다가 4살 밑 동생도 수영 선수가 됐다. “동생 키가 좀 작아서 아직 잘하지는 못한다”고 해서 그냥 선수 생활만 그럭저럭 이어가는 줄 알았더니, 글쎄 “전라도 대표”란다. 그러면서 누나는 “사실 얼굴은 동생이 나보다 낫다”며 또 웃었다.) 지은이는 역시나 모자를 쓰고 있었다. 까만색 벙거지. “머리 색깔하고 똑같아서 이 모자, 괜찮은 것 같아요.” 사실 다른 얘기를 좀 해볼까 했는데, 조심조심하던 기자 오빠에게 머리 얘기를 먼저 꺼낸 건 지은이였다. “머리카락이 다 빠졌었는데, 요즘 다시 좀 나네요. 자랐다가 빠졌다가 그래요.” 지은이는 일곱 살 때부터 원형탈모증이 있었다. 그래도 긴 머리로 가릴 만한 정도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머리카락이 너무 빠져 병원에 갔더니 전신탈모증이라고 했다. 지은이는 눈썹도 있는 듯 없는 듯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의사가 “머리카락 없이 살아야 할 것 같다”고 했을 땐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날 운전하던 아빠를 보니까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아빠의 눈물을 처음 봤거든요. 늘 그러세요. ‘네가 잘못되면 아빠도 없다’고. 집이 저 중심으로 움직이니, 동생한테도 좀 미안하죠. 정말 저 부모님께 효도해야 해요.” 지은이는 그 뒤 모자로 머리를 가렸다. “절 모르는 분들은 실내에서도 모자를 쓰면 ‘예의가 없다. 왜 모자를 쓰냐’고 그러세요. 말문이 막혔죠. ‘수영 0.1초라도 줄이기 위해 머리를 민 거냐’고 하면 그냥 ‘예’ 그랬어요.” 엄마가 해준 말 “수영이 운명일거야” 좋다는 병원을 찾아다녔고, 갖가지 치료도 받아봤다. 연고도 발라봤고, 드라이아이스 치료를 할 땐 머리 전체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제가 액세서리를 사는 걸 좋아해요. 제 나이가 좀 꾸밀 때잖아요. 머리 긴 아이들 보면…. 조금 서글플 때도 있죠.” 지은이는 “그런데요…” 하며 서슴없이 말을 이어갔다. “장애라면 장애고, 아니면 신체적 결함인가? 머리카락 없이도 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요. 혹시 도핑 테스트에 걸릴까봐 그렇기도 하지만, 이젠 약도 먹지 않아요. 머리 나면 나고 안 나면 안 나는 거다.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거든요. 국제대회 가서 모자 쓸 때 다른 나라 선수들이 못 알아보게 빨리 쓰는 저만의 방법도 있거든요.” 지은이는 모자 하나가 완전히 닳을 때까지 쓴 뒤 모자를 바꾼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자 종류를 딱 두 번 바꿨다. 한때 엉엉 울던 지은이에게 엄마는 “어쩌면 물에서 모자를 쓸 수 있는 수영은 너에게 운명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은이는 물이 참 좋다고 했다. “물에선 모두 사람들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흉도 보지 않고 오로지 자기한테 집중할 수 있어서”란다. 지은이는 현재 여자 자유형 400m 한국 신기록 보유자다. 도하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딸 때 세운 기록이다. “터치 패드를 딱 찍고 기록이 나쁘면 어쩌나 해서 전광판을 안 보려다가 올려다봤는데 14초가 보이는 거예요. 내 기록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종전 기록은 4분15초40이었다. 14초란, 그 15초를 허물었다는 뜻이다. 4분14초95. “시간 단축할 때 기분이란 와! 정말….” 지은이는 원래 50m, 100m 단거리 선수였다. 그 종목들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무려 전국대회 6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400m 전환은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불과 2년 만에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신기록을 깬 것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16강 진출이 목표예요.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못할 일도 아닐 것 같아요.” 한국은 남유선이 2004 아테네올림픽 400m 개인혼영에서 남녀 사상 첫 결선에 올라 7위를 차지한 게 최고 성적이다. 우린 모자 속 머리만을 보려 하는가 그러고 보면 수영이 운명이라던 엄마의 말은 괜한 것이 아닌 듯했다. “제 태몽이요, 엄마가 꿈을 꿨는데 정말 맑고 넓은 호수에서 백조 한 마리가 헤엄을 치더래요. 흐흐, 백조요.” 지금 그 백조의 머리에 모자가 씌워져 있다. 모자 밑 지은이는 씩씩하고 밝았다. 지은이가 좀 움츠러들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는 건 “왜 넌 실내에서도 그렇게 모자를 쓰니” 하고 좀처럼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우리 생각일 뿐이었다. 지은이의 눈을 보면 금방 알 것을. 우린 자꾸 모자 속 머리만을 보려 한 것이다. 검은색 모자가 닳을 때쯤, 지은이한테 꼭 맞는 모자를 들고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 그 미소가 또 여전하기를. 이번호 주요기사 ▶남대문로에 마징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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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수영여자 400m에 출전해 동메달을 따낸 이지은 선수가 태극마크가 선명한 수영모를 쓴 채 시상대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최근 일본에서 열린 수영 프레올림픽을 다녀왔다기에 목포 학교(전남제일고3)로 찾아가 만나보려고 했더니, 또 태릉선수촌에 들어왔다고 했다. 10월 전국체전 탓이었다. 지난 3월 세계선수권 등에 참가하느라 올해 선수촌 밖에 있던 시간이 한 달뿐이라니, 국가대표란 되기도 힘들고 지키기도 어려운 자리다. 새벽 운동, 오전엔 서울체고에서 위탁교육, 오후엔 선수촌 운동, 월요일과 수요일 밤엔 선수촌에서 하는 영어 교육 수업…. ‘휴~’ 한숨 나오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컴퓨터로 영화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선수촌 노래방에서 가끔 노래도 부른다고 한다. 발라드를 좋아한다나. 병원에서 오는 길에 본 아빠의 눈물 “나 데이트하러 간다.” 9월7일 이른 아침 선수촌 벤치에서 같이 얘기하려고 가는 길에 만난 동료들에게 (이)지은이는 슬쩍 농담을 던졌다. 자신은 주말에 광주에서 열린 회장기 대회에 참가하느라 다른 선수들이 누리는 2박3일의 외박을 그냥 날려버리게 됐는데도 툴툴대지 않았다. “우리 집에 남동생만 쌍꺼풀이 없어요. 엄마가 동생 낳기 전에 새우가 먹고 싶으셨대요. 그걸 드셔서 동생 눈이 그런 것 같아요.” 큰 눈에 웃음을 가득 담은 그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같이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누나가 수영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다가 4살 밑 동생도 수영 선수가 됐다. “동생 키가 좀 작아서 아직 잘하지는 못한다”고 해서 그냥 선수 생활만 그럭저럭 이어가는 줄 알았더니, 글쎄 “전라도 대표”란다. 그러면서 누나는 “사실 얼굴은 동생이 나보다 낫다”며 또 웃었다.) 지은이는 역시나 모자를 쓰고 있었다. 까만색 벙거지. “머리 색깔하고 똑같아서 이 모자, 괜찮은 것 같아요.” 사실 다른 얘기를 좀 해볼까 했는데, 조심조심하던 기자 오빠에게 머리 얘기를 먼저 꺼낸 건 지은이였다. “머리카락이 다 빠졌었는데, 요즘 다시 좀 나네요. 자랐다가 빠졌다가 그래요.” 지은이는 일곱 살 때부터 원형탈모증이 있었다. 그래도 긴 머리로 가릴 만한 정도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머리카락이 너무 빠져 병원에 갔더니 전신탈모증이라고 했다. 지은이는 눈썹도 있는 듯 없는 듯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의사가 “머리카락 없이 살아야 할 것 같다”고 했을 땐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날 운전하던 아빠를 보니까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아빠의 눈물을 처음 봤거든요. 늘 그러세요. ‘네가 잘못되면 아빠도 없다’고. 집이 저 중심으로 움직이니, 동생한테도 좀 미안하죠. 정말 저 부모님께 효도해야 해요.” 지은이는 그 뒤 모자로 머리를 가렸다. “절 모르는 분들은 실내에서도 모자를 쓰면 ‘예의가 없다. 왜 모자를 쓰냐’고 그러세요. 말문이 막혔죠. ‘수영 0.1초라도 줄이기 위해 머리를 민 거냐’고 하면 그냥 ‘예’ 그랬어요.” 엄마가 해준 말 “수영이 운명일거야” 좋다는 병원을 찾아다녔고, 갖가지 치료도 받아봤다. 연고도 발라봤고, 드라이아이스 치료를 할 땐 머리 전체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제가 액세서리를 사는 걸 좋아해요. 제 나이가 좀 꾸밀 때잖아요. 머리 긴 아이들 보면…. 조금 서글플 때도 있죠.” 지은이는 “그런데요…” 하며 서슴없이 말을 이어갔다. “장애라면 장애고, 아니면 신체적 결함인가? 머리카락 없이도 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요. 혹시 도핑 테스트에 걸릴까봐 그렇기도 하지만, 이젠 약도 먹지 않아요. 머리 나면 나고 안 나면 안 나는 거다.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거든요. 국제대회 가서 모자 쓸 때 다른 나라 선수들이 못 알아보게 빨리 쓰는 저만의 방법도 있거든요.” 지은이는 모자 하나가 완전히 닳을 때까지 쓴 뒤 모자를 바꾼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자 종류를 딱 두 번 바꿨다. 한때 엉엉 울던 지은이에게 엄마는 “어쩌면 물에서 모자를 쓸 수 있는 수영은 너에게 운명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은이는 물이 참 좋다고 했다. “물에선 모두 사람들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흉도 보지 않고 오로지 자기한테 집중할 수 있어서”란다. 지은이는 현재 여자 자유형 400m 한국 신기록 보유자다. 도하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딸 때 세운 기록이다. “터치 패드를 딱 찍고 기록이 나쁘면 어쩌나 해서 전광판을 안 보려다가 올려다봤는데 14초가 보이는 거예요. 내 기록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종전 기록은 4분15초40이었다. 14초란, 그 15초를 허물었다는 뜻이다. 4분14초95. “시간 단축할 때 기분이란 와! 정말….” 지은이는 원래 50m, 100m 단거리 선수였다. 그 종목들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무려 전국대회 6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400m 전환은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불과 2년 만에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신기록을 깬 것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16강 진출이 목표예요.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못할 일도 아닐 것 같아요.” 한국은 남유선이 2004 아테네올림픽 400m 개인혼영에서 남녀 사상 첫 결선에 올라 7위를 차지한 게 최고 성적이다. 우린 모자 속 머리만을 보려 하는가 그러고 보면 수영이 운명이라던 엄마의 말은 괜한 것이 아닌 듯했다. “제 태몽이요, 엄마가 꿈을 꿨는데 정말 맑고 넓은 호수에서 백조 한 마리가 헤엄을 치더래요. 흐흐, 백조요.” 지금 그 백조의 머리에 모자가 씌워져 있다. 모자 밑 지은이는 씩씩하고 밝았다. 지은이가 좀 움츠러들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는 건 “왜 넌 실내에서도 그렇게 모자를 쓰니” 하고 좀처럼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우리 생각일 뿐이었다. 지은이의 눈을 보면 금방 알 것을. 우린 자꾸 모자 속 머리만을 보려 한 것이다. 검은색 모자가 닳을 때쯤, 지은이한테 꼭 맞는 모자를 들고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 그 미소가 또 여전하기를. 이번호 주요기사 ▶남대문로에 마징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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