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은행 설립에 따른 프라이버시 침해… 질병 치료 등 제한된 목적에 사용해야
며칠 전 명동에서는 한 이색적인 퍼포먼스가 이루어져 지나던 행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날 퍼포먼스와 함께 거리시위운동을 마련한 시민단체는 힘없는 평범한 시민들이 유전정보를 독점한 사람들에게 온몸이 묶여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모습을 통해 유전정보의 잘못된 이용이 낳을 수 있는 심각한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국가나 기업과 같은 거대 조직이 유전정보를 수집해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개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규제한다는 것은 얼핏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었다. 검찰청은 1996년부터 범죄수사를 위해 유전정보를 수집해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는 일련의 시도를 해 인권단체들로부터 유전자 프라이버시와 인권침해라는 강렬한 반발을 불었다. 최근에는 보건복지부와 한 사회복지재단이 중심이 되어 DNA를 활용한 가족찾기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시 유전자 정보은행 설립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하고 있다. 바야흐로 유전자 정보 활용에 대한 장밋빛 기대가 널리 확산되는 가운데 그 이면의 그림자가 동시에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복지부·복지재단 등 가족찾기에 활용 내세워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의 현대사는 숱한 이들의 애달픈 사연으로 점철되었다. 그중에서도 이산가족의 문제는 아픈 상처의 가장 깊은 뿌리에 해당할 것이다. 수십년 동안 헤어졌다가 우여곡절을 통해 극적인 상봉을 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누구나 눈시울을 붉히게 마련이다. 미아와 해외입양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유난히 많은 이별을 강요당했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설령 남의 일이라 하더라도 강한 공감을 나타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미아를 찾기 위해 DNA 정보를 활용하는 유전자 정보은행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다른 경우와 달리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동기는 이해할 수 있지만 유전자 정보은행의 설립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유전자 정보은행을 세우려 했던 검찰과 정부가 미아찾기라는 명분을 활용해서 유전자 정보은행의 교두보를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 계획을 추진중인 복지재단은 기존의 미아찾기 방법으로는 효과적으로 미아를 찾을 수 없고, 채취된 DNA는 개인 식별을 위한 검사만 하고 파기될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유전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은 실질적으로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첨예한 지점은 수집된 DNA의 개인정보가 미아찾기라는 제한된 목적에만 이용된다는 보장이 있는가이다. 현재 복지재단의 계획에 따르면 미아를 찾으려는 부모들과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해서 검찰에 전달하면 검찰은 개인정보를 수치화해 바이오그랜드라는 회사를 통해 재단에 전달하고 친자 여부를 확인하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범인식별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계속 주장해온 검찰이 손에 들어온 DNA를 미아찾기에만 활용하고 폐기시킨다는 것은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또한 현재 전국의 고아원에 있는 어린이들의 DNA를 추출하는 과정도 인권침해의 요소가 다분히 포함돼 있다. 물론 개인들의 동의를 받고 DNA를 채취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 아이들에게 자신의 DNA가 잘못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충분히 고지된 상태에서 유전자가 채취될지 의문스럽다. 만에 하나라도 사회적 약자인 이들의 DNA가 미래의 범인 식별을 위한 자료로 활용된다면, 고아원 어린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범자 정보은행에 바람직하지 않은 후보로 등록되는 엄청난 인권침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비단 미아찾기 문제가 아니더라도 최근 들어 유전자 프라이버시 문제는 이미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유전자 정보가 일반 정보와는 다른 독특한 특성이다. 흔히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관계되는 정보들은 개인의 학력, 재산, 건강, 그리고 그 밖의 신상에 얽힌 사생활에 대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보도 보호돼야 마땅하지만, 이러한 정보는 어떤 면에서 그 개인들의 과거에 이루어진 활동과 연관된 정보이며, 상당부분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정보이다. 반면 유전정보는 그 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정보이며, 다른 한편 이미 발현된 특성이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특성과 연관된 지극히 개연적인 정보이다.
지극히 개연적인 정보… 데이터베이스화 금물
다시 말해서 유전자 차별이 우려되는 각종 유전병이나 질병의 소인에 대한 유전정보는 100% 발병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에 비해 발병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의 정보에 불과하다. 따라서 개인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실현가능성도 지극히 개연적인 정보가 누출돼 당사자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아직 발병하지 않은 환자와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범인들을 양산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게 되는 셈이다. 두 번째, 유전정보가 누출되었을 경우 한 가족이 유전자의 상당부분을 공유한다는 특성상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유전자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문제가 있다.
유전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의 자료로 삼겠다는 생각은 한편으로 매우 효율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다른 정보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유전정보는 질병 치료와 같은 지극히 제한된 목적을 제외하고는 어떤 이유로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거나 정보은행에 저장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주민등록증이 일반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전자 등록증이 있으면 더 편리하지 않겠냐는 발상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지만, 그것은 한 시민단체 대표의 말처럼 “알몸 수색보다 더 극심한 인권침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

사진/개인 유전정보에 대한 사회적 악용 가능성을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시민단체 회원들.(김종수 기자)

사진/유전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는 유전자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의 DNA를 담아둔 용기들과 분석 시약들이 가득 찬 실험실.(이정용 기자)

사진/유전자를 검사하는 모습.(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