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외국인·혼혈인 선수 늘고 있는데 언제까지 ‘순혈주의’만 고집할 텐가
▣ 신명철 <스포츠2.0> 편집위원
한국은 지난 8월5일 일본 도쿠시마에서 끝난 제24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3위 결정전에서 카타르를 80-76으로 꺾고 2008년 7월에 열릴 베이징올림픽 세계예선 출전권을 얻었다.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열린 월드바스켓볼챌린지와 12월에 벌어진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서 세대교체에 들어간 한국은 올림픽 예선을 겸한 이번 대회에서 본선 직행권(1위)을 따지는 못했지만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 이번 대표팀에는 서장훈·이상민·현주엽 등 오랫동안 한국 남자농구를 대표하던 이름이 모두 빠졌다. 김병현·차재영 등 농구팬들에게도 낯선 이름이 보이는 가운데 하승진·양동근·김동우 등 앞으로 한국 남자농구를 이끌고 갈 선수들이 분전했다.
‘한국=단일민족 국가’는 이미지일 뿐
그런데 대회 기간 텔레비전으로 한국의 경기를 지켜본 스포츠 팬들은 한국 선수를 소개하는 자막 가운데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수교체를 요구한 벤치를 보면 분명 한국이고 경기장에 들어가는 선수의 얼굴 생김새도 분명 한국 사람인데 자막에는 영어식 이름이 깔렸다. ‘Daniel Robert Sandrin’. 농구팬들은 그가 지난 2월 연세대를 졸업한 귀화 외국인이고 2007-2008 시즌부터 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에서 뛰게 될 이동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막으로만 보면 그는 아직 외국인이다. 이동준은 한국인 어머니와 이탈리아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지난해 귀화했다. 아직 개명 절차가 끝나지 않아 국제농구연맹(FIBA)에서는 ‘이동준’이라는 이름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회에는 귀화 선수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레바논 등 여러 나라에서 주력 선수로 활약했다.
아시아 지역은 다른 지역에 견줘 귀화 선수 사례가 많지 않은 편이지만 최근 들어 축구, 농구, 육상 등 여러 종목에서 귀화 선수가 많이 나오고 있다. 8월25일 오사카에서 벌어진 2007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첫날 남자마라톤에서 2위를 한 카타르의 무바라크 하산 샤미는 케냐에서 태어났다. 지난해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우승자이기도 하다.
한국은 최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한국 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고 한국이 실제와는 다른 단일민족 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엔의 지적 이후 후속 기사가 쏟아졌지만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한 문제점은 그동안 수없이 거론되고 있었으니 시한폭탄이 터진 셈이다. 8월24일 현재 어떤 형태로든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100만254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100명에 2명은 외국인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국내 스포츠계에도 이른바 ‘순혈주의’는 알게 모르게 퍼져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전략 강화 방안 가운데 하나로 공격수 샤샤, 수비수 마시엘 등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우수 외국인 선수의 귀화 문제가 잠시 거론됐으나 곧바로 물밑으로 내려갔다. 귀화 선수가 아니더라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의 뒤에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웃 일본은 이미 1990년대부터 외국인 선수가 귀화해 일본 대표로 뛰고 있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공격수 로페스와 1990년대 중반까지 일본대표팀의 미드필더로 활약한 라모스, 그리고 최근의 수비수 산토스까지.
‘후국기-인정’과 ‘차범근-두리’는 같아
국내 스포츠에도 이미 불기 시작한 귀화 선수 바람은 두 가지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순수 외국인의 귀화다. 한국 사회가 단일민족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고 있지만 사실 예전부터 한반도에는 여러 경로로 외국인이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예를 들어 한반도에는 적지 않은 항왜(降倭·왜란 당시 항복한 일본 병사들)의 자손이 살고 있으리라. 임진왜란 기간 항왜가 1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후손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단 한 가지 예만 들어도 이러니 더 이상 단일민족을 내세울 이유는 없을 것이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후인정의 아버지 후국기씨는 프로배구 LIG의 전신 격인 실업배구 금성통신에서 활약한 배구인이다. 차범근-두리, 김영기-상식, 조오련-성민 등과 같은 부전자전 체육인인데 다만 대만 국적인 점이 다르다. 아버지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아 국가대표로 뛰지 못했지만, 아들은 귀화해 한국 대표 선수로 주요 국제대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홍콩 대표 출신으로 이미 지난해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곽방방은 8월8일 끝난 국가대표선발전에서 6승1패로 1위를 차지해 9월17일부터 23일까지 중국 양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곽방방은 최근 최고의 기량을 보이고 있어 내년 베이징올림픽에도 출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자신이 처음 탁구를 배운 중국 땅에서 오성홍기가 아닌 태극기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된다.
곽방방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수 수출의 대표적인 나라 가운데 하나가 중국이다. 아시아 나라들이 오랜 기간 귀화 선수들의 영입을 꺼려온 반면, 중국 탁구의 경우 전세계에 수많은 선수를 수출했다. 브라질의 축구선수, 미국의 농구선수가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다만 축구나 농구의 경우 해당 나라의 리그에서 국적을 유지한 채 뛰고 있지만 탁구는 귀화해 해당 나라의 국가대표가 되는 게 다를 뿐이다. 안재형과 결혼한 자오즈민과 같은 시대에 활약한 허즈리는 오사카 탁구협회장 아들과 결혼해 일본 대표 선수가 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단식 금메달리스트 천징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에콰도르로 추정되는 남미의 한 나라를 거쳐 대만에 귀화해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북한의 주전 선수가 한국 대표 선수가 된 셈이다.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인전을 보면 미국,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오스트리아 등 나라 이름만 다르지 온통 중국 선수들 판이다. 중국 출신 귀화 선수들 문제 때문에 1980년대 유럽탁구연맹은 귀화 선수의 경우 6년이 지나야 해당 국가의 선수로 뛸 수 있는 초강경 규제를 펴기도 했다.
급격히 늘어나는 혼혈아들, 10년 뒤엔?
두 번째는 외국 국적 한국계 혼혈 선수의 귀화와 순수 국내 혼혈 선수의 활약이다. 이동준도 엄밀히 말하면 외국인이라기보다는 한국계 혼혈 선수가 귀화한 예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아르헨티나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농구대표팀의 또 다른 귀화 선수 김민수는 이동준과 같은 사례다. 농구의 김동광과 축구의 장대일은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던 국내 혼혈 선수다. 지난해 농·어업 종사자 4명 가운데 1명은 외국인 여성을 부인으로 맞았다고 한다.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나라 출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코시안’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러시아 등 백인 어머니가 낳은 어린이들도 많다. 또 외국인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까지, 부모 가운데 어느 한쪽이 외국인일 경우 해당되는 인종 특유의 우수한 운동 자질을 지녔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급격하게 늘고 있는 혼혈아들의 나이가 이미 초등학교 연령대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2010년대 후반에는 국내에서 출생한 혼혈 선수들이 종목별 국가대표 선수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국내 스포츠에서도 오랜 기간 혈통 문제와 관련해 편견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활짝 꽃을 피우지 못한 혼혈 선수도 있다. 이제는 이런 편협한 시각을 버려야 할 때이다. 2018년 월드컵축구대회에 출전하는 한국대표팀에 하얀 얼굴, 까만 얼굴이 있다고 해서 누가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 그들은 모두 한국인인 것을.

한국인 어머니와 이탈리아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동준(대니엘 로버트 산드린) 선수는 지난해 귀화해 농구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됐다. (사진/ 연합 박지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