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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리브 같기도 대본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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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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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리브라더스’ ‘바라바라’ 등 애드리브를 전면에 내세운 개그 코너들

▣ 안인용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nico@hani.co.kr

대본에 없는 즉흥적인 대사, 애드리브는 21세기 예능인의 필수 조건이다. 버라이어티쇼 등 온갖 예능 프로그램의 뼈대는 대본을 기초로 한 진행자의 진행이지만, 시청률을 올려주는 것은 출연자들의 애드리브다. 짧은 순간 재치와 유머를 발휘해 예상치 못한 웃음을 던져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방송사에서 박수치며 ‘좋아라’ 하는 예능인의 올바른 태도다. 방송 3사 및 케이블 TV에 비싼 몸값으로 ‘모셔지는’ 예능인은 대부분 애드리브의 달인이다. 문화방송 <무한도전>이나 한국방송 <상상플러스>, SBS <야심만만> 등 각 방송사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애드리브의 폭발력에 대해 실감하게 된다.

최근 신설된 <개그콘서트>의 ‘애드리브라더스’(맨 위)와 <개그야>의 ‘바라바라’. 두 코너 모두 최근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하고 있는 애드리브를 간판에 걸고 있다.


반면, 개그 프로그램은 그렇지 않다. 촘촘히 짜인 스웨터처럼, 동선부터 짧은 대사 하나까지 수차례 연습과 수정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다. 공개 개그 프로그램 무대에 선 개그맨은 연습한 대사를 완벽하게 연기하고 소화해내려고 노력한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말이 아닌,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나온 아이디어에 충실한 대사가 개그의 생명이다. 그러나 TV 모니터의 벽은 점점 더 얇아지고 시청자는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주는 즐거움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거기에 발이라도 맞추듯 개그 역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물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애드리브가 있다.

‘컬투’는 <웃찾사> ‘그때그때 달라요’에서 이제까지 봐왔던 개그와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여줬다. 해바라기를 머리에 꽂은 미친소 정찬우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엉터리 영어 해석으로 사람들의 배꼽을 빼놓다가 갑자기 ‘내가 하고는 있지만 참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부터 정찬우의 웃음과 이어지는 김태균의 즉흥 대사는 이 코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됐다. <개그콘서트>의 ‘마빡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100% 실제 상황, 50% 애드리브 정도로 꾸며진 이 코너는 개그 역사에 길이 남을 코너가 됐다. 이렇게 애드리브가 가미된 코너가 여러 개 성공하면서 애드리브는 대중화가 됐다.

대본+애드리브+시청자 참여=웃음

최근 이 애드리브를 전면에 내세운 코너가 눈길을 끌고 있다. 대표적인 코너로 이제 막 시작한 <개콘> 리얼 쌍방향 개그 프로젝트 ‘애드리브라더스’와 <개그야> ‘바라바라’가 있다. 제목에서부터 애드리브가 느껴지는 ‘애드리브라더스’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코너다. 방청객이 아무 말이나 써서 무대로 던진 종이를 바탕으로 개그를 이어나간다. 이런 식이다. “저는 화가 날 때마다 들르는 곳이 있어요. 포장마차 이름이 뭐냐구요? (무대 위의 종이를 펴보면서) ‘군인은 아이비를 좋아해’예요.”(김현기) “저희 가게에서는요, 건배를 할 때 ‘섬바디 두 잇’ 이렇게 건배를 하곤 하죠.”(박성호) 종이에 어떤 말이 쓰여 있는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 이미 짜여 있는 대본 외에는 모두 애드리브로 진행하는 이 코너에서 이들은 ‘대본+애드리브+시청자 참여’라는 세 요소를 적절히 버무렸다.

‘바라바라’는 선생님이 학생 3명을 한명 한명 불러세워 성적이 나쁘다고 잔소리하는 내용이다. 애드리브가 들어가는 부분은 바로 잔소리다. “참, 연기 어색하네. 연기에 발전이 없어. 개그한 지 몇 년 됐어?”(허동환) “7년 됐습니다.”(김한배) “슬프다 이 자슥아. 웃음을 줘야 하는데, 감동을 주네.”(허동환) 허동환은 이 코너 내내 대사를 하다 말고 계속 웃음을 터뜨리는 개그맨 차민준을 타박한다. “관객도 안 웃는데 뭐하는 짓이야. 개그맨이야, 관객이야? 슬픈 생각을 해라. 가장 어려울 때를 생각해. 방청석으로 들어가!” 연기를 해야 하는 개그맨이 웃어버리면서 코너가 무너진다는 돌발 상황을 전제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때그때 달라요’에서 정찬우가 웃어버렸던 그 부분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미리 짠 대사같은 애드리브는 불안해

이 코너들은 애드리브라는 요소를 더해 코너에 긴장감과 즉흥성을 준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과하다 싶고, 코너 속 애드리브가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한다. ‘애드리브라더스’에서는 어떤 말이 쓰여 있는지 모른다는 상황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도 하지만 종이를 펴고 읽는 상황이 반복되고, 생각보다 재미가 없는 말이 쓰여 있으면 분위기가 확 다운된다. ‘바라바라’에서는 애드리브를 만들어내기 위한 상황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미친 듯이 웃는 개그맨이 정말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다소 애매한 상황은 불안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허동환의 대사 역시 애드리브라기보다는 애드리브를 위해 짠 대사라는 인상이 강하다.

애드리브의 즉흥성도 좋지만, 개그의 진짜 맛은 여러 날 고민해서 나온 아이디어에서 나온다.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애드리브, 이쯤에서 살짝 브레이크 밟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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