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빛을 보는 우리 가요사의 숨은 걸작들… 레코드사들 ‘백카탈로그’에 주목하기 시작하다
지난달, 서울시내 대형 레코드가게 진열대에 소리소문없이 가요 음반 하나가 새로 꽂혔다. 아무런 광고 스티커도 붙지 않은, 재킷에는 흘러간 70년대 머리스타일의 가수 얼굴이 큼직하게 인쇄된 다소 촌스러운 음반이었다. 음반사에서 그 흔한 홍보 포스터조차 따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레코드점 직원들도 그저 새로운 판 하나가 또 들어왔나 하고 넘겼을 법한 음반이었다.
한때 200만원까지 치솟았던 LP음반
한달쯤 뒤, 레코드를 낸 음반사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그 음반 기획담당자에게 전화를 건 중년의 남성은 다짜고짜 “고맙다”는 말부터 건넸다. “제가 그 가수의 음반을 7년 동안 수소문했는데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재발매됐더군요. 이 음반을 다시 내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열성팬이 감사의 전화까지 했던 그 음반은 바로 70년대 활동했던 가수 김정미씨의 편집음반이었다. 사실 그 중년 팬의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할 법도 했다. 김정미씨의 음반은 그동안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었다. 중고 LP음반점에 찾아가 음반이 입수되면 연락달라고 부탁하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상태가 깨끗하게 보관된 LP음반이면 100만원 이상을 내고 사겠다는 사람이 줄 서 있을 정도다. 가수 김정미씨. 지구레코드가 재발매한 이 김정미씨의 음반은 거의 아무런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순식간에 음악광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졌다. 음반사쪽에서도 상업적인 기대는 접었던 음반이었지만 마니아들 덕분에 반응은 좋은 편이다. 60∼70년대 한국 대중음악 최고의 스타 신중현씨가 발굴한 가수들, 이른바 ‘신중현 사단’ 가운데서도 김정미씨의 이름은 사실 그닥 유명하지 않았다. 신중현씨와 최고의 콤비를 이뤘던 김추자씨가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데 비해, 김정미씨는 잊혀진 가수로 사라졌다. 김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수로 입문해 1972년 데뷔음반 <김정미 최신가요집>을 냈다. 이 음반에서 김씨는 자신의 최대 히트곡 <간다고 하지 마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77년 열세 번째 음반을 낸 뒤 가요계를 떠났다. 모두 12장의 음반이 신중현씨의 작품이었고, 다른 작곡가의 작품으로 1장의 음반을 냈다. 김씨는 74년까지 신중현씨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제2의 김추자’로 불렸다. 신중현씨의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창법은 비슷하지만, 스타일은 다르다. 김추자씨가 시원시원하게 뽑아내는 가창력을 자랑한다면 김정미씨는 사이키델릭음악에 적합한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창법을 고수했다. 그래서 신중현씨는 자신의 작품을 가장 잘 소화해낸 가수로 펄시스터즈와 김정미씨를 꼽았을 정도였다. 현재 김씨는 가요계를 떠난 뒤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려져 있어 가요계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존재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30년이 지난 지금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던 이 가수의 음반이 다시 나오게 된 것일까. 대중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김정미씨의 이름이 음악팬들 사이에서 다시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지난 9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신중현씨의 위상이 다시 부각되면서 신중현 사단의 일원이었던 김정미씨도 함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로선 너무나 전위적이어서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던 음악”이란 평을 받으며 김씨 음악은 비로소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물론 음악팬들 사이에서 “김정미 노래 들어봤냐”는 식의 파급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소문이 번지면서 중고음반가게에서 김정미씨 음반을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고, 여기에 한국음악을 수집하는 일본마니아들이 신중현씨 음반과 함께 김정미씨 음반을 구하기 시작하면서 김씨의 음반은 한때 2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값이 오르기도 했다. 이런 흐름에 맞춰 90년대부터 절판된 우리 가요의 명작들을 재발매해온 지구레코드가 지난해 연말 마침내 김정미씨의 음반을 다시 내기로 결정했다. 창고에 묻혀 있던 김정미씨의 마스터테이프를 다시 찾아내 리마스터링했고, 그 결과가 바로 새로 나온 음반 <김정미>다. 이 음반은 김씨가 지구레코드에서 70년대에 냈던 음반 세장에서 노래를 발췌해 모은 편집음반이다. 김씨의 음반이 재발매된 과정에는 레코드회사를 자주 드나들었던 한 가요연구가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이 연구가는 신중현씨를 비롯한 당시 주요 가수들의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오던 이로, 음반사에 누누이 김씨의 숨은 가치를 역설했다. 마침 흘러간 가요들을 다시 발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지구레코드 기획팀이 이 연구가의 주장에 호응했고, 창고 속에서 수십년째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김씨의 노래들은 다시 빛을 보게 됐다. 그래서 새로 나온 김씨의 음반 속지에는 발매 후기를 실어 이 연구가에 대한 감사의 글이 쓰여져 있다. 지구레코드의 야심
새로 선보인 김씨의 음반에 대해 일단 평론가들과 팬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라며 놀라움과 반가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다른 흘러간 걸작 음반들에 비해 김씨의 음반은 재발매될 가능성이 훨씬 낮았기 때문이다. 우선 김씨 자체가 활동 당시에도 아주 유명한 가수가 아니라 소수의 극성스런 팬을 거느렸던 가수였기 때문이다. 김씨의 음반이 다시 나온 것은 숨어 있던 한 가수의 가치가 재평가됐다는 의미와 함께 그동안 방치되고 있던 우리 가요사의 숨은 걸작들에 대한 재평가와 발굴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 가요계는 워낙 주먹구구식으로 음원을 관리하고 지나간 레퍼토리를 경시해오는 바람에 많은 음원과 자료들이 사라진 상태다. 불과 20년 전 음반도 구할 길이 막막할 정도다. 때문에 지구레코드사의 옛 노래 복원작업은 이런 풍토에 대한 반성과 지나간 노래 발굴의 희망을 읽을 수 있는 청신호다. 또한 뒤늦게 우리나라 레코드업체들이 조금씩 ‘백카탈로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징표로 받아들여진다.
백카탈로그는 쉽게 말해 음반사가 보유하고 있는 고유의 과거 레퍼토리로, 음반사의 저력은 어떤 백카탈로그를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자원’이지만 그동안 국내 가요음반사들은 백카탈로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왔다. 그나마 지구레코드가 90년대 들어 간간이 신중현과 뮤직파워, 산울림, 송골매, 이용복, 따로 또 같이 등의 음반을 복원해 출시하면서 백카탈로그가 조금씩 활용되기 시작했을 뿐이다. 지구레코드쪽은 앞으로 윤형주씨의 트윈폴리오 이후 솔로 음반과 그룹 라나에로스포 등의 가수들과 함께 이미자씨의 노래를 모두 20장의 음반으로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작업중이다.
지구레코드 가요기획팀 송권철 팀장은 “마스터테이프들이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디지털화할 필요는 늘 생각해왔지만 현재 시장상황으로는 극소수만이 재발매될 수밖에 없다”며 “기본적으로 상업성보다는 다시 이런 음반들을 팬들에게 내놓는다는 데 큰 의미가 있으므로 지속적으로 숨은 작품들을 발굴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시 눈여겨봐야 할 우리 가요의 명가수와 명반들이 어디 김정미씨 하나뿐일까.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재발매된 김정미씨의 음반. 은퇴한 지 24년이 지난 뒤에 다시 재발매됐다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사진/70년대 발매된 김정미씨의 음반 재킷들. 이제는 구하기 어려운 명품 대접을 받고 있다.
열성팬이 감사의 전화까지 했던 그 음반은 바로 70년대 활동했던 가수 김정미씨의 편집음반이었다. 사실 그 중년 팬의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할 법도 했다. 김정미씨의 음반은 그동안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었다. 중고 LP음반점에 찾아가 음반이 입수되면 연락달라고 부탁하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상태가 깨끗하게 보관된 LP음반이면 100만원 이상을 내고 사겠다는 사람이 줄 서 있을 정도다. 가수 김정미씨. 지구레코드가 재발매한 이 김정미씨의 음반은 거의 아무런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순식간에 음악광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졌다. 음반사쪽에서도 상업적인 기대는 접었던 음반이었지만 마니아들 덕분에 반응은 좋은 편이다. 60∼70년대 한국 대중음악 최고의 스타 신중현씨가 발굴한 가수들, 이른바 ‘신중현 사단’ 가운데서도 김정미씨의 이름은 사실 그닥 유명하지 않았다. 신중현씨와 최고의 콤비를 이뤘던 김추자씨가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데 비해, 김정미씨는 잊혀진 가수로 사라졌다. 김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수로 입문해 1972년 데뷔음반 <김정미 최신가요집>을 냈다. 이 음반에서 김씨는 자신의 최대 히트곡 <간다고 하지 마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77년 열세 번째 음반을 낸 뒤 가요계를 떠났다. 모두 12장의 음반이 신중현씨의 작품이었고, 다른 작곡가의 작품으로 1장의 음반을 냈다. 김씨는 74년까지 신중현씨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제2의 김추자’로 불렸다. 신중현씨의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창법은 비슷하지만, 스타일은 다르다. 김추자씨가 시원시원하게 뽑아내는 가창력을 자랑한다면 김정미씨는 사이키델릭음악에 적합한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창법을 고수했다. 그래서 신중현씨는 자신의 작품을 가장 잘 소화해낸 가수로 펄시스터즈와 김정미씨를 꼽았을 정도였다. 현재 김씨는 가요계를 떠난 뒤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려져 있어 가요계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존재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30년이 지난 지금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던 이 가수의 음반이 다시 나오게 된 것일까. 대중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김정미씨의 이름이 음악팬들 사이에서 다시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지난 9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신중현씨의 위상이 다시 부각되면서 신중현 사단의 일원이었던 김정미씨도 함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로선 너무나 전위적이어서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던 음악”이란 평을 받으며 김씨 음악은 비로소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물론 음악팬들 사이에서 “김정미 노래 들어봤냐”는 식의 파급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소문이 번지면서 중고음반가게에서 김정미씨 음반을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고, 여기에 한국음악을 수집하는 일본마니아들이 신중현씨 음반과 함께 김정미씨 음반을 구하기 시작하면서 김씨의 음반은 한때 2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값이 오르기도 했다. 이런 흐름에 맞춰 90년대부터 절판된 우리 가요의 명작들을 재발매해온 지구레코드가 지난해 연말 마침내 김정미씨의 음반을 다시 내기로 결정했다. 창고에 묻혀 있던 김정미씨의 마스터테이프를 다시 찾아내 리마스터링했고, 그 결과가 바로 새로 나온 음반 <김정미>다. 이 음반은 김씨가 지구레코드에서 70년대에 냈던 음반 세장에서 노래를 발췌해 모은 편집음반이다. 김씨의 음반이 재발매된 과정에는 레코드회사를 자주 드나들었던 한 가요연구가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이 연구가는 신중현씨를 비롯한 당시 주요 가수들의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오던 이로, 음반사에 누누이 김씨의 숨은 가치를 역설했다. 마침 흘러간 가요들을 다시 발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지구레코드 기획팀이 이 연구가의 주장에 호응했고, 창고 속에서 수십년째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김씨의 노래들은 다시 빛을 보게 됐다. 그래서 새로 나온 김씨의 음반 속지에는 발매 후기를 실어 이 연구가에 대한 감사의 글이 쓰여져 있다. 지구레코드의 야심

사진/최근 다시 발매된 한국 대중음악의 주요작들. 지난 93년 산울림 음반이 리마스터링돼 나온 이후로 드물지만 꾸준히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