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편의 영화로 만들어지는 맷집 있는 이야기, 그 근간은 ‘다중성’
▣ 태풍클럽 출판 편집자
팝송이나 가요는 원곡을 뛰어넘는 커버 버전이 정말로 흔치 않지만, 클래식 음악의 경우는 좀 다르다. 어떤 연주가 더 뛰어난가 하는 평가는 있겠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해석’의 차이를 즐기는 묘미가 있는 것이다.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이라면 리히터의 것이 정통이다, 아니면 의외로 조르디 사발의 것이 신선하다 하고 옥신각신하듯, 원작소설과 영화를 두고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
자주 영화화됐던 찰스 디킨스나 제인 오스틴의 작품도 그렇고, 유독 타 장르로 외도가 잦았던 소설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탄탄한 서사, 또는 어떻게 배경을 바꿔놔도 변함없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이야기의 ‘맷집’일 터이다. 그 맷집의 근간도 종류가 다양해서, 때로는 누구나 사랑하는 권선징악 테마나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원형성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 다르고 ‘어’ 다르게 해석할 때, 커다란 차이가 발생하는 다중성이기도 하다. 쇼더 로 드 라클로가 쓴 18세기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는 후자에 해당된다. 드 라클로는 군대에 몸담은 시절에 심심해서 이 소설을 썼고, 책은 나오자마자 한 달 만에 2천 부가 팔렸다. 문맹률이 엄청난 시절임을 감안하면 초슈퍼 베스트셀러다. 그리고 작가는 바로 문제작가로 낙인찍혔다. 기혼자에게 애인이 없으면 창피하다고 여겨지던 문란한 로코코 시절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난의 감춰진 이유는 남녀 간의 애정을 그리면서 어떤 감상(感傷)도 허용치 않은 냉철함이었다. 귀족들을 위한 예쁜 오페라나 목가적 소설과 달리, 이 작품은 사랑의 숭고함 따윈 믿지도 않는다. 그 냉정함에 비하면 사람을 곤죽이 되도록 고문하는 사드의 소설 쪽이 더 정념으로 넘쳐난다. 이성을 유혹해 잔인하게 버리는 것을 낙으로 삼은 두 남녀, 발몽 자작과 메르테유 후작부인은 ‘바람둥이가 사랑에 빠지다’라는 테마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불세출의 전략가인 메르테유 부인 쪽이 좀더 고수로 보이기는 하지만, 하여튼 ‘진심을 보이면 그 순간 게임 끝이다’라는 게 두 사람이 공유하는 철학이다. 전 세기의 <돈 후안>이 유령에게 천벌을 받아 지옥으로 끌려갔다면, 이 두 인물은 그리하여 스스로 만들어낸 생지옥에서 허우적대다 추락한다. 각기 유혹할 대상을 정해주고 그것을 성사시키면 서로에게 은밀한 포상을 베풀기로 했던 오늘의 동지는, 사랑의 작대기가 어긋나는 순간부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이 된다. 발몽, 메르테유 후작부인, 투르벨 부인, 세실 볼랑주, 당스니 기사, 이 다섯 인물이 벌이는 연애심리는 ‘서간문’이라는 형식적 특성 덕분에 더욱 복잡미묘해졌다. 카운터펀치처럼 오가는 편지를 통해 인물들은 서로에게 가장 우아하고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원래 연애는 고급스러울수록 더 치사한 법이다), 독자가 등장인물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쥐게 되면서 스릴은 높아진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행간에 숨겨진 해석의 무한한 자율성에 펌프질당해 영화화에 도전한 명감독들의 10여 가지 버전 중에서 내가 본 것은 몇 편 안 되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역시 스티븐 프리어스가 연출하고 존 말코비치와 글렌 클로즈가 주연한 1988년 버전이다. 원작의 무시무시함을 잔인할 정도로 되살렸음은 물론, 인간사의 허망함까지도 담아낸 걸작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그 밖에도 구해볼 수 있는 최근작만 해도 세 편이나 된다. 밀로시 포르만의 천진한 <발몽>, 할리우드 10대 버전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그리고 ‘그래도 사실은 사랑했어’로 끝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까지. 이만하면 소설을 영화의 관점에서 해석, 또는 각색한다는 게 무언지 탐구하거나, 좀 오버하면 내가 찍는다면 어떻게 찍을까까지도 상상 가능하다. 얼마나 좋은가. 충무로에서 날 불러주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영화감독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권남희)
자주 영화화됐던 찰스 디킨스나 제인 오스틴의 작품도 그렇고, 유독 타 장르로 외도가 잦았던 소설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탄탄한 서사, 또는 어떻게 배경을 바꿔놔도 변함없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이야기의 ‘맷집’일 터이다. 그 맷집의 근간도 종류가 다양해서, 때로는 누구나 사랑하는 권선징악 테마나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원형성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 다르고 ‘어’ 다르게 해석할 때, 커다란 차이가 발생하는 다중성이기도 하다. 쇼더 로 드 라클로가 쓴 18세기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는 후자에 해당된다. 드 라클로는 군대에 몸담은 시절에 심심해서 이 소설을 썼고, 책은 나오자마자 한 달 만에 2천 부가 팔렸다. 문맹률이 엄청난 시절임을 감안하면 초슈퍼 베스트셀러다. 그리고 작가는 바로 문제작가로 낙인찍혔다. 기혼자에게 애인이 없으면 창피하다고 여겨지던 문란한 로코코 시절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난의 감춰진 이유는 남녀 간의 애정을 그리면서 어떤 감상(感傷)도 허용치 않은 냉철함이었다. 귀족들을 위한 예쁜 오페라나 목가적 소설과 달리, 이 작품은 사랑의 숭고함 따윈 믿지도 않는다. 그 냉정함에 비하면 사람을 곤죽이 되도록 고문하는 사드의 소설 쪽이 더 정념으로 넘쳐난다. 이성을 유혹해 잔인하게 버리는 것을 낙으로 삼은 두 남녀, 발몽 자작과 메르테유 후작부인은 ‘바람둥이가 사랑에 빠지다’라는 테마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불세출의 전략가인 메르테유 부인 쪽이 좀더 고수로 보이기는 하지만, 하여튼 ‘진심을 보이면 그 순간 게임 끝이다’라는 게 두 사람이 공유하는 철학이다. 전 세기의 <돈 후안>이 유령에게 천벌을 받아 지옥으로 끌려갔다면, 이 두 인물은 그리하여 스스로 만들어낸 생지옥에서 허우적대다 추락한다. 각기 유혹할 대상을 정해주고 그것을 성사시키면 서로에게 은밀한 포상을 베풀기로 했던 오늘의 동지는, 사랑의 작대기가 어긋나는 순간부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이 된다. 발몽, 메르테유 후작부인, 투르벨 부인, 세실 볼랑주, 당스니 기사, 이 다섯 인물이 벌이는 연애심리는 ‘서간문’이라는 형식적 특성 덕분에 더욱 복잡미묘해졌다. 카운터펀치처럼 오가는 편지를 통해 인물들은 서로에게 가장 우아하고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원래 연애는 고급스러울수록 더 치사한 법이다), 독자가 등장인물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쥐게 되면서 스릴은 높아진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행간에 숨겨진 해석의 무한한 자율성에 펌프질당해 영화화에 도전한 명감독들의 10여 가지 버전 중에서 내가 본 것은 몇 편 안 되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역시 스티븐 프리어스가 연출하고 존 말코비치와 글렌 클로즈가 주연한 1988년 버전이다. 원작의 무시무시함을 잔인할 정도로 되살렸음은 물론, 인간사의 허망함까지도 담아낸 걸작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그 밖에도 구해볼 수 있는 최근작만 해도 세 편이나 된다. 밀로시 포르만의 천진한 <발몽>, 할리우드 10대 버전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그리고 ‘그래도 사실은 사랑했어’로 끝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까지. 이만하면 소설을 영화의 관점에서 해석, 또는 각색한다는 게 무언지 탐구하거나, 좀 오버하면 내가 찍는다면 어떻게 찍을까까지도 상상 가능하다. 얼마나 좋은가. 충무로에서 날 불러주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영화감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