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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지금 잘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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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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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편집장 별명 붙이고 내 몸무게까지 팔았건만, 들통이 안 날 수 없다. 돌아오는 일부 반응, 싸늘하다. 독자 김선영씨 왈 “톤이 많이 낮아졌다. 부드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보수적으로 된 것 같다”. 여보세요 선영 언니! -..-;; 흠, 쩝, 사랑해.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섹스 칼럼 쓰면서 섹스 얘기 안 하는 주제에. 나의 섹스 라이프가 척박한 관계로 ‘쫌만 더 기둘리’시라거나 그냥 포기하시라는 말씀밖에는…. 억울한 마음이 없지는 않다. 자체 해결이 안 되면 주변에라도 기대야 하는데, 어찌된 게 제대로 된 섹스 라이프 영위하는 인간을 눈 씻고 봐도 찾기 힘드니 말이다.

단골 등장인물이었던 ‘원룸 식탁 사건’의 ㄱ은 이 여름도 고독에 몸부림치다 해외로 봉사를 빙자한 ‘원정 미팅’에 나가버렸다(얼마 전 ‘고독사’에 대비해 강아지 몇 마리 분양받겠다는 걸 겨우 뜯어말렸다). 내 영감의 원천인 ㄷ은 일찍이 IMF 환란과 함께 성생활도 종료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으며, 우리 사무실의 기대주인 신혼의 ㅇ은 밤이면 밤마다 남편과 할 일은 안 하고 노래방 순례만 한다. 또 다른 만만한 인물 ㅌ은 남편과 잠자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데, 본업에 충실해서가 아니라 덥고 힘드니 제발 니가 위에서 하라고 체위 다툼을 벌인다는 거다. 맞다. 계절 변수도 있다. 이 찜통 더위에는 기찻길 옆집에 사는 이들이라도 애 만들기는 애저녁에 틀렸다.


옆자리 ㅂ은 칼럼 소재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나를 보다 못해 “차라리 나를 벗기라”고 나섰다(마음은 고마워. 하지만 넌, 그저 야한 생각 많이 해서 머리카락 잘 자란다는 거 외에 실증적 도움이 하나도 안 되잖아.) ㅂ은 원나이트스탠드를 못해본 게 철천지 한인데, 오죽 트라우마가 컸으면, 최근 출장 전 항공권 예매와 관련해 누군가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봐”라고 한 말을 “원나이트 사이트? 그런 데가 있어?”라고 반문한, 없는 성생활이라도 그나마 한줌 떼주고 싶은 인간이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을 통해서 영감을 얻어야지. <디 워>의 이무기들이 엉키는 모습을 보며 에로틱 코드를 읽어내고자 했건만, 하품만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떤 점에서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해줬다. SF에 포르노적 기법을 접목할 수 있다는 거. 반복, 과장, 확대와 전후 맥락 생략! 그야말로 실험적이다. 내친김에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라는 실존적인 제목의 영화 사이트에도 들어가봤다. 그 이름도 반가운 ‘베드신 미리보기’가 있었다(청소년들아, 19세 이하 금지다. 너희는 교장 선생님 말씀대로 스포츠로 풀어야 한다. 어서 나가서 농구를 하렴). 클릭해봤다. 이런 띠리리 같으니라구. 베드신에 베드가 안 나오잖아!(주로 벽이랑 소파 같은 데서 헉헉대며 달려들다 만다. 본편에서는 끝까지 보여주는 거죠?)

머리 쥐어뜯다 회사 옥상에 나갔다. 노조 위원장이 철야할 일이 있는지 야근복 차림에 씻고 나오는 걸 보게 됐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씩씩하게 걷는 모습을 보니 삘이 확 왔다. 그래, 나에게 필요한 건 벗은 쌔끈남이었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서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다시보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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