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기획팀서 세계무대 겨냥해 제작비 15억 투입… 장수캐릭터의 위상을 굳혀라
캐릭터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성공한 캐릭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순식간에 시장을 휩쓰는 유행캐릭터와, 몇해씩 지속되는 장수캐릭터다. 그토록 요란하게 전세계를 휩쓸었던 드래곤볼의 열풍은 벌써 시들하다. 하지만 아기곰 푸의 경우 수십년 동안 조용히 전세계 어린이들의 친구로 세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쉽게 나온다. 물론 후자가 더 뛰어난 캐릭터다. 수십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는 캐릭터는 단순히 캐릭터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결국 캐릭터의 힘은 그 생명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단발공연 아닌 장기프로젝트로 기획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캐릭터는 아직까지 단연 ‘둘리’다. 태어난 지 스무해를 바라보는 둘리는 이제 2세대 팬을 노리고 있다. 둘리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 부모세대가 돼가는 지금, 둘리는 이제 세대를 뛰어넘는 진정한 장수캐릭터의 위상을 굳히려는 재도약의 단계에 들어섰다. 96년 극장용 애니메이션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 이후 5년 동안 잠잠하던 둘리가 올해 다시 선보이는 것이다.
새로 찾아오는 둘리는 놀랍게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아예 장르를 뛰어넘어 뮤지컬로 태어나 올 여름방학 어린이팬들을 불러모을 예정이다. 중요한 점은 이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는 기획팀의 면면이다. 한국 뮤지컬의 대명사로 떠오른 <명성황후>의 기획팀인 에이콤이 현재 둘리의 뮤지컬 작업을 벌이고 있다. <명성황후>의 연출자인 윤호진(53·단국대 연극영화과 교수) 대표가 연출을, <명성황후>의 음악을 맡았던 오은희씨가 작곡을 하는 등 에이콤의 뮤지컬 베테랑들이 작업을 맡았다. 현재 시나리오 초안이 완성돼 가사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며, 4월 안으로 모든 음악작업을 끝마친 뒤 5월부터 공연 연습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7월 말, 여름방학을 맞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리게 된다.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이 공연은 에이콤과 예술의전당이 공동으로 제작한다. 눈길을 끄는 점은 뮤지컬 둘리가 단순히 만화가 김수정씨로부터 라이선스를 따내는 단발식 공연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최고의 뮤지컬 연출자와 국내 최고의 만화가가 만난 만큼 한번의 공연이 아니라 매년 고정레퍼토리로 무대에 올릴 장기프로젝트로 기획되고 있다. 그래서 원작자인 만화가 김수정(51)씨가 미술감독으로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김씨는 현재 둘리의 주인공인 둘리와 조연들인 도우너, 또치, 마이콜 등의 캐릭터 디자인에 몰두하고 있다. 김씨는 “다른 공연과는 달리 탈을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라 분장으로 캐릭터를 꾸미기 때문에 공룡인 둘리와 타조인 또치 등을 누가 봐도 만화의 그 주인공들임을 알 수 있도록 디자인하기가 쉽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며 조만간 캐릭터가 완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 둘리의 뮤지컬 작업은 오래 전에 시작됐다. 윤호진씨가 둘리를 뮤지컬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9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윤씨의 두 자녀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던 둘리 애니메이션에서 둘리가 엄마 공룡과 다시 만나는 장면을 보더니 저절로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본 순간 윤씨는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헤어진 엄마와 자식이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 이거야말로 한번 해볼 만한 주제라는 연출가의 직감이 발동한 것이다. “둘리를 보고 자란 어른세대를 믿는다”
그뒤 늘 머릿속에서 작품을 구상해오던 윤씨는 4년 전 마침 <명성황후>를 보러 온 원작자 김수정씨에게 즉석에서 뮤지컬 둘리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다. 제안을 받은 김씨도 “한번 해보자”고 반응했고, 2년 전부터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준비해왔다. 뮤지컬의 중심지 런던에서 뮤지컬을 같이 보면서 의견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취합하면서 둘리 뮤지컬은 조금씩 구체화됐다.
연출자 윤호진씨는 “공룡은 전세계 아이들이 모두 좋아한다. 하지만 둘리처럼 귀엽고 인간과 친화적인 공룡캐릭터는 없다. 충분히 세계를 노릴 만한 아이템이라고 확신한다”며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 둘리는 15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 <명성황후>가 처음 만들어질 때 제작비가 12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가히 블록버스터급 예산이다. 제작진은 첫 공연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해마다 이 뮤지컬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세계시장으로 진출한다는 장기계획도 따로 세우고 있다. 아이들이 엄마를 그리워하는 보편적 주제와 둘리의 가장 큰 재미인 기성세대 골탕먹이기는 국적을 초월해 어린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라는 생각에서다. 게다가 지난 98년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미국 뮤지컬 <라이온 킹>의 대성공도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제작진이 이처럼 창작뮤지컬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한국 유일의 장수캐릭터인 둘리의 힘이 뒷받침되리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둘리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 이제 자녀를 둔 부모세대가 됐고, 이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둘리를 찾아올 시점이 이제부터 시작됐다는 판단이다. 둘리가 만화연재를 시작한 것은 지난 83년 봄. 그뒤 둘리는 장장 12년 동안 연재되다가 94년에야 출판만화로 끝을 맺었다. 연재 도중인 86년과 87년 텔레비전에서 둘리 애니메이션이 두 차례 방영되면서 둘리의 팬층은 당시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폭넓게 존재했다. 그 세대들의 자식세대들로 둘리는 새로운 기반을 다지려는 첫 번째 시도가 바로 뮤지컬이다.
실제 지난 96년 극장에 걸렸던 애니메이션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은 새로운 세대로 팬층이 넓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당시 이 영화는 서울 관객 30만명을 동원했는데 애초 제작사인 둘리나라에서는 어른이 30%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른 관객이 40%로 더 높게 나타나 둘리에 친숙한 부모들이 자기가 좋아한 캐릭터인 둘리를 보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둘리 콘텐츠’ 더욱 다양해진다
이런 상황을 근거로 ‘둘리의 아버지’ 김수정씨는 뮤지컬을 필두로 일련의 다양한 둘리 콘텐츠를 선보이며 둘리를 확고부동한 장수캐릭터로 자리굳히겠다는 장기적 계획을 진행중이다. 한동안 새로운 버전이 없이 기존 이미지만 활용한 캐릭터상품으로만 명맥을 유지하던 행보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둘리 붐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우선 뮤지컬에 앞서 4월중으로 모두 10권이던 둘리 출판만화가 재미있는 부분만 추린 5권으로 재출간된다. 특히 이 만화에서는 둘리가 고길동 집으로 되돌아오면서 끝맺었던 결말을 삭제하고 앞으로도 내용이 더 이어지는 진행형으로 고쳐 새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여지를 뒀다. 그리고 다시 둘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현재 독일의 한 기획사와 제작비를 협의하고 있는 단계다. 해외수출을 전제로 텔레비전판과 극장판 두 가지를 한꺼번에 낸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국내용으로도 애니메이션 제작을 다른 업체와 협상중인데, 협상이 빨리 체결되면 당장 올해부터 새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계획대로라면 뮤지컬을 시작으로 줄줄이 새로운 둘리 이야기들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둘리매니지먼트사인 둘리나라는 비교적 꾸준하게 새로운 콘텐츠를 이어가며 둘리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끊기지 않도록 해왔다. 93년에는 영어교육용 비디오를 출시했고, 95년부터 97년까지 둘리의 아들 돌리가 등장하는 새 출판만화를 연재했다. 96년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 이후 이런 뒷받침이 중단돼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둘리 캐릭터상품은 계속 선보여 현재 700여종의 둘리 상품들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새로운 장르와 새로운 버전의 둘리 문화상품들이 선보이면 둘리는 장수캐릭터로 확실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는 판단이다. 뮤지컬 둘리는 그 시금석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김수정씨가 둘리의 벤치마킹 모델로 삼고 있는 캐릭터는 일본의 도라에몽과 미국의 푸다.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어린이들이 성장과정의 동반자로 여기도록 늘 곁에 있는 캐릭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폭발성은 없어도 꾸준히 사랑받는 전략이다. 또한 둘리는 푸처럼 주인공 외에도 개성적인 조연 캐릭터들이 풍부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애니메이션 잡지 <뉴타입>의 안영식 편집장은 “장수캐릭터의 조건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전 연령대에서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요소를 지녀야 하고, 다양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뒷받침해주는 것이 필수”라며 “둘리는 기본적으로 이런 기본요건을 갖춘 국내 유일의 캐릭터로 제대로 관리만 된다면 앞으로도 장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과연 둘리가 진정한 ‘국민 캐릭터’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이 될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할 여지가 많다. 하지만 인기면에서, 그리고 입증된 경쟁력면에서 둘리를 능가하는 국산 캐릭터는 전무하다. 둘리가 8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지금의 20∼30대만의 친구로 그칠지, 아니면 90년대 태어난 지금의 어린이들마저 사로잡고 세계로 뻗어나갈지는 앞으로 아기공룡이 펼칠 다양한 재롱과 감동에 달려 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둘리의 주요 등장인물들. 왼쪽부터 희동이, 둘리, 도우너, 또치.
새로 찾아오는 둘리는 놀랍게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아예 장르를 뛰어넘어 뮤지컬로 태어나 올 여름방학 어린이팬들을 불러모을 예정이다. 중요한 점은 이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는 기획팀의 면면이다. 한국 뮤지컬의 대명사로 떠오른 <명성황후>의 기획팀인 에이콤이 현재 둘리의 뮤지컬 작업을 벌이고 있다. <명성황후>의 연출자인 윤호진(53·단국대 연극영화과 교수) 대표가 연출을, <명성황후>의 음악을 맡았던 오은희씨가 작곡을 하는 등 에이콤의 뮤지컬 베테랑들이 작업을 맡았다. 현재 시나리오 초안이 완성돼 가사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며, 4월 안으로 모든 음악작업을 끝마친 뒤 5월부터 공연 연습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7월 말, 여름방학을 맞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리게 된다.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이 공연은 에이콤과 예술의전당이 공동으로 제작한다. 눈길을 끄는 점은 뮤지컬 둘리가 단순히 만화가 김수정씨로부터 라이선스를 따내는 단발식 공연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최고의 뮤지컬 연출자와 국내 최고의 만화가가 만난 만큼 한번의 공연이 아니라 매년 고정레퍼토리로 무대에 올릴 장기프로젝트로 기획되고 있다. 그래서 원작자인 만화가 김수정(51)씨가 미술감독으로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김씨는 현재 둘리의 주인공인 둘리와 조연들인 도우너, 또치, 마이콜 등의 캐릭터 디자인에 몰두하고 있다. 김씨는 “다른 공연과는 달리 탈을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라 분장으로 캐릭터를 꾸미기 때문에 공룡인 둘리와 타조인 또치 등을 누가 봐도 만화의 그 주인공들임을 알 수 있도록 디자인하기가 쉽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며 조만간 캐릭터가 완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 둘리의 뮤지컬 작업은 오래 전에 시작됐다. 윤호진씨가 둘리를 뮤지컬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9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윤씨의 두 자녀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던 둘리 애니메이션에서 둘리가 엄마 공룡과 다시 만나는 장면을 보더니 저절로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본 순간 윤씨는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헤어진 엄마와 자식이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 이거야말로 한번 해볼 만한 주제라는 연출가의 직감이 발동한 것이다. “둘리를 보고 자란 어른세대를 믿는다”

사진/둘리 원작자인 김수정씨(왼쪽)와 뮤지컬 둘리의 연출자 윤호진씨(오른쪽). “한번 하고 마는 뮤지컬이 아니라 최소 몇년은 계속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세계를 상대로 한 가족뮤지컬로 승부를 걸겠다.”(이정용 기자)

사진/현재 700여종의 둘리 상품들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