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장르를 따지지 말라!

321
등록 : 2000-08-09 00:00 수정 :

크게 작게

크로스오버 전성시대, 평론가들이 추천하는 음반으로 즐거운 여름을

바야흐로 세계 음악계는 크로스오버의 시대다. 두 가지 이상의 음악 장르가 만나 화학적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선보이는 이런 크로스오버는 이른바 퓨전 바람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요즘 경향과 맞물려 최근 음악계를 대표하는 경향으로 각광받고 있다.

요즘 국내에도 다양한 크로스오버 음악이 쏟아지듯 들어오고 있다. 다양한 음악장르들이 만나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해주게 하는 이런 크로스오버 음악은 유행을 타지 않아 한번 사면 오래 들을 수 있는 편한 음악들이 많다는 것이 특징. 그러나 음악에 대해 웬만한 관심이 없으면 쉽사리 음반을 살 엄두를 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또 어쩌다 음반을 사려는 이들로선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 음반을 고르기도 쉽지 않다.

이런 이들을 위해 <한겨레21> 문화팀과 음악평론가인 송기철, 김경진씨가 함께 올 여름과 가을까지 부담없이 들을 만한 크로스오버 음반을 골랐다. 최근 몇년 사이 선보인 크로스오버 음반들 가운데 ‘검증된’ 음반을 대상으로 했고, 음악의 다양함과 재미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으면서 오래오래 언제라도 들을 수 있도록 음반 전체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크로스오버는 원래 특정 장르로 구분짓기 어려운 애매한 음악을 이르는 말로, 한 음반이 여러 장르의 순위차트에 동시에 오르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장르 뛰어넘기’ 또는 ‘장르 무너뜨리기’의 의미로 굳어졌다. 특정 장르에 전문적인 아티스트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음악의 신선함과 재미가 특히 강하다. 마니아가 아니라도 모처럼 귀를 즐겁게 해주려는 이들을 위한 열다섯장의 크로스오버 명반을 골라 소개한다.


●요요마와 바비 맥퍼린의 <허시>

크로스오버의 모범 답안 같은 음반으로 손꼽힌다. 설명이 필요없는 세계적 첼리스트 요요마와 재즈 보컬부터 클래식 지휘까지 만능 재주꾼 바비 맥퍼린이 가장 뛰어난 호흡을 보여준다. 클래식에 전혀 취미가 없는 이들도 한두번은 들어봤을 친숙한 클래식 곡들을 재미있게 재해석해 깊이와 재미가 공존한다. 나이와 음악적 취향을 막론하고 누구나 한번쯤 부담없이 들을 만한 음반이다.

●리 리트나워와 데이브 그루신의 <투 월즈>

퓨전 재즈의 두 슈퍼스타가 만나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는 크로스오버 음반.

조지 거슈인이 <랩소디 인 블루>를 재즈와 접목시킨 것을 비롯해 재즈와 클래식의 만남을 시도하는 크로스오버적 시도들은 가장 흔하고 가장 인기좋은 크로스오버 경향이다. 이 음반 역시 클래식과 재즈를 깔끔하게 접목시키는 시도를 담았다. 현존하는 최고의 재즈 아티스트들인 데이브 그루신과 리 리트나워는 25년째 함께 작업하며 크로스오버를 시도해온 호흡맞는 단짝들로 이 음반에서도 오랜 연륜과 원숙미가 묻어나는 재즈-클래식 크로스오버를 들려준다. 클래식 원곡을 무리하게 재해석하지 않고 원곡 느낌을 그대로 존중하면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부담없는 두 장르의 화학적 결합을 보여준다.

●<파이프스 앤 폰스>

독일 출신의 프로젝트 그룹 살타 첼로의 색소폰과 파이프오르간 연주자가 만나 취입한 음반.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부터 우리 민요 <진도 아리랑>, 이탈리아 민요까지 다양한 나라의 대중적 음악들을 재해석했다. 크로스오버가 왠지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도 아주 쉽게 크로스오버의 재미를 느끼기에 좋은 쉬운 음반으로 꼽힌다. 좀처럼 듣기 힘든 파이프오르간이란 악기의 매력을 잘 담고 있다는 점도 감상 포인트.

●케이옵스의 <발칸스>

벨기에의 작곡가 에릴 로리가 이끄는 콘서트 그룹의 두 번째 음반. 이 그룹은 음악적 목표 자체가 서로 다른 문화배경을 지닌 세계 여러 나라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음악적 교류를 통한 ‘월드 뮤직’을 표방한다. 그래서 음반 역시 다양한 나라들의 음악적 특성이 혼합돼 영미권 음악과는 다른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수록곡 4곡이 현재 텔레비전 광고 삽입곡으로 쓰이고 있어 친숙하게 다가온다. 신비로운 합창부터 읊조리는 서정적 노래까지 다양하게 수록돼 있다.

●엘보스코의 <앙헬리스>

프로젝트 그룹 엘보스코의 이색 음반. 라틴어로 부르는 종교적 노래들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다. 스페인의 성 에스코리알 사원에서 수도승들과 어린이 합창단, 관능적이 여성보컬까지 곁들여 그레고리안 성가와 테크노의 세련된 조합을 꾀했다. 첫곡 <니르바나>는 이미 광고에 쓰여 친숙한 곡으로 신비함과 관능미, 어린이 합창단의 해맑은 목소리까지 다양한 합창의 묘미를 잔뜩 담았다.

추 천 음 반

요요마 & 바비 맥퍼린 <허시>

레이지 & 프라하 필하모닉 <링구아 모르티스>

엘보스코 <앙헬리스>

김덕수 사물놀이패 <난장 뉴 호라이즌>

데이브 그루신 & 리 리트나워 <투 월즈>

<세이크리드 스피리트>

빌 더글러스 <캄틸레나>

<엔야 & 탈리신 오케스트라>

<켈틱 트와일라이트 1집>

얀 가바렉 & 힐라드앙상블 <오피시움>

케이옵스 <발칸스>

<모차르트 인 이집트>

<바흐 인 브라질>

다로 하카세 <듀엣>

<파이프스 앤 폰스>

민속음악이 크로스오버로 살아난다

크로스오버에서 특히 인기가 좋은 장르는 바로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전통음악을 일컫는 켈틱음악이다. 켈틱음악은 신비롭고 웅장하면서도 슬픈 정서를 담아 이국적인 느낌이 강해 크로스오버의 소재로 사랑받아온 장르다. 특히 한이 서린 듯한 분위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아일랜드쪽 음악들은 예전부터 상당한 인기를 누려왔다.

이번에 선정된 크로스오버 음반들 가운데에서도 켈틱음악을 차용한 음반들이 여럿 포함됐다.

우선 <켈틱 트와일라이트>는 켈틱음악의 민요 등 다양한 노래들을 모은 음반. 완전히 토속적 색채가 강하지 않고 서정적인 아일랜드음악의 면모를 잘 살려서 연주하고 노래했다. 빌 더글러스의 <캄틸레나>도 아일랜드 민속음악에 바탕을 둬서 서정적이고 듣기 편한 음반이다. 수록곡 가운데sms 특히 <엘레지>란 곡이 특히 국내에서 사랑받고 있고, 다른 곡들도 여러 방송프로그램의 시그널 뮤직이나 배경음악으로 많이 쓰여 친숙한 것들이 많다. <엔야 & 탈리신 오케스트라>는 아일랜드 팝계의 슈퍼스타 엔야의 음악을 크로스오버 전문 오케스트라 탈리신 오케스트라가 재해석한 음반으로 역시 아일랜드음악 특유의 한이 서린 정서가 담긴 아름다운 발라드풍의 음반으로 꼽힌다. 이 밖에 선정된 다른 크로스오버 음반으로는 헤비메탈과 클래식음악을 결합시킨 <링구아 모르티스>가 있다. 독일의 스래시메탈 그룹 레이지와 프라하심포니가 협연한 음반으로 레이지의 원곡이 완전히 클래식적으로 융화된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클래식적 완성도도 높고 메탈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할 만한 음반이라는 추천을 받았다.

반면 북미 인디언의 합창곡을 차용하면서 블루스와 클래식을 섞은 <세이크리드 스피리트>도 독특한 크로스오버의 맛을 느끼게 해줄 음반으로 선정됐고,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 재즈 색소포니스트 얀 가바렉과 힐라드 앙상블의 협연 음반 <오피시움>도 재즈와 중세 무반주 다성음악(아카펠라)이 만나는 크로스오버 음반이란 점에서 손꼽혔다. 힐라드 앙상블은 테너, 카운터 테너 등으로 성악가들로 구성된 앙상블. 음반 전체가 소프라노 색소폰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맑은 음색이 힐라드 앙상블의 깔끔하고 신비스런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의 크로스오버 음악으로는 김덕수패 사물놀이의 스테디셀러 <난장 뉴 호라이즌>이 단연 꼽힌다. 이 음반은 사물놀이의 신나는 장단에 인기듀오 ‘클론’ 구준엽씨의 랩이 곁들여져 새로운 소리를 들려준다. 발표된 지 오래돼 음반을 구하기 힘들지만 음악팬들 사이에선 명반으로 손꼽히는 국산 크로스오버 음반이다.

이 밖에 클래식을 새롭게 연주하는 <모차르트 인 이집트>와 <바흐 인 브라질>, 다로 하카세의 <듀엣> 등이 최근 몇년새 소개된 뛰어난 크로스오버 작품들로 평가된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