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객석이 무한한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취해버린 꿈의 3일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취재수첩을 펼쳐봤다. 뭐라고 쓰여 있는지 모를, 악필이 10여 페이지에 걸쳐 한가득 적혀 있었다. 디카를 PC에 연결해봤다. 뭘 찍었는지 모를, 흔들린 사진이 수백 장 가까이 찍혀 있었다. 지난 7월27일부터 29일까지의 기록은 그랬다. 객관을 상실한, 흥분의 연속이었다. 올해로 두 번째 행사를 치른 펜타포트의 열기가 글과 사진에 온통 살아 있었다. 지난번보다 라인업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불만도 있었다. 데미언 라이스를 비롯, 런던 일렉트릭시티나 헬로 굿바이 등 해외 뮤지션들의 공연이 막판에 잇달아 취소된 것도 충분히 감점 포인트였다. 그러나 결과는 지난해에 비할 수 없는 악필과 흔들린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그럴 만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선, 하늘이 도왔다. 3일 내내 적당한 햇볕과 바람이 있었다. 덥지도 습하지도 않았다. 비 따위 오지도 않았다. 고작해야 둘쨋날 밤, 딱 가습기에서 뿜어져나오는 물방울만큼의 안개비가 내렸을 뿐이다. 야외에서 하루 종일 음악에 취할 만한 최적의 날씨였다.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렸다. 마지막 날에는 약 5만 명의 군중이 송도의 광야에 운집했다. 이미 수차례의 공연을 통해 검증된, 한국 관객들의 열기가 뮤지션들을 북돋았다.
2002년 월드컵을 상상해보라 음반에 담긴 음악 그대로를 재생하기로 정평이 난 일본의 뮤지션들조차 정교함 따위는 둘째치고, 어쩌면 그들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관객의 호응에 취해 자그마한 실수들을 연발할 지경이었다. ‘재생’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관객과 마치 탁구의 무한 랠리와 같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즐기고 또 즐겼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불가능했다. 3일 내내 그랬다. 그 자리에 없었다면, 이런 풍경을 가정하면 좋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3일 연속으로 한국팀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과 싸워 이기는 모습. 그것도 단 90분이 아니라 하루 종일 승전의 탑이 쌓아 올려지는 흥분된 모습. 이번 펜타포트가 꼭 그랬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입국해, 서울 시내를 지하철로 누비며 자신들의 밴드명이 한국말로 ‘좋아, 가는 거야!’라는 걸 전해들은 오케이 고(OK GO)는 공연 전 관계자들에게 노홍철을 무대에 세울 수 없냐고 물어봤다. 비록 그들의 꿈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공연 내내 또렷한 한국말로 ‘좋아, 가는 거야!’를 연발하며 객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앙코르 무대에서는 그들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어 밀리언 웨이스>(A Million Ways)의 춤을 그대로 선보이며 비명과 환호성을 절정에 올렸다. 케미컬 브러더스는 영상과 조명, 음악의 삼위일체로 수만의 관객에게 환각을 선사했다. 라르크앙시엘의 하이도는 끊임없이 허리를 돌리며 수많은 여성팬들을 몸속까지 젖게 했다. 그리고 뮤즈,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뭘 듣고 있는지 뭘 보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날 모든 관객의 주먹을 불끈 쥐게 했던 공연의 주인공, 럭스의 원종희는 “마치 영화 <향수>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며 이 집단최면의 순간을 회고한다. 돋보였던 건 해외 팀들뿐만이 아니다. 할로우잰, 럭스, 바셀린 등 펑크와 하드코어 밴드들은 왜 한국의 인디신이 그들로부터 발아했고, 그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지를 큰 무대에서 큼지막하게 증명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대형 록페스티벌에서 만난 레이니썬은 관객의 눈물과 환호를 동시에 자아냈다. 밴드의 보컬 정차식은 경상도 사투리로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객석이 보이지는 않았는데 소리만 들어도 짠하데”라며 그날의 열기를 말한다. 공연 마지막 날, 땅거미가 질 무렵을 장식했던 크라잉넛이 첫 곡으로 <말 달리자>로 진검승부를 걸었을 때 행사장의 구석구석에 있던 관객들이 빅탑 스테이지로 질주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지난해 첫날의 폭우로 엉망이 됐던 진행 시스템도 올해는 정상적으로 가동됐다. 세면장에서는 시종일관 콸콸 물이 쏟아져나왔다. 화장실도 계속 깨끗한 상태를 유지했다. 마지막 날의 헤드라이너였던 뮤즈의 공연을 제외하고는 모든 프로그램이 예정된 시간에 맞춰 칼같이 돌아갔다. 아티스트들 또한 원활한 공연 진행과 스태프들의 성의에 만족을 표시하며 자신들의 공연을 하고 다른 이들의 공연을 즐겼다. 그들 또한 펜타포트가 끝난 지금도 계속 그날의 흥분을 되새기며 술잔을 비우고 있다. 자유와 질서의 공존을 만든 관객들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건, 역시 관객들의 모습이었다. 수만 명이 운집했지만 사소한 안전사고도 눈에 띄지 않았다. 피곤한 사람은 누워서, 열의를 바치고 싶은 이들은 일찌감치 앞자리를 차지하며 축제를 즐겼다. 자유와 질서가 공존했다. 무대에 선 이들에게 100%의 흥분을 이끌어내는 호응으로 최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도 관객이었다. 스태프와 취재진, 아티스트와 관객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꿈의 3일이었다. 축제가 끝나고 일상이 시작됐다. 그 짧은 낙원의 나날이 끝나고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는 서울의 표정을 보면서 정말이지 한바탕 좋은 꿈을 꾼 기분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두가 벌써부터 내년 펜타포트를 기다리리라. 100점 만점에 아무리 짜게 줘도 90점은 주고 남을, 그 아름다운 흥분의 시공간을.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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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에서 3일 연속으로 한국팀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과 싸워 이기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올해 펜타포트의 열기는 그만큼 뜨거웠다.(사진/ 김작가)
2002년 월드컵을 상상해보라 음반에 담긴 음악 그대로를 재생하기로 정평이 난 일본의 뮤지션들조차 정교함 따위는 둘째치고, 어쩌면 그들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관객의 호응에 취해 자그마한 실수들을 연발할 지경이었다. ‘재생’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관객과 마치 탁구의 무한 랠리와 같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즐기고 또 즐겼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불가능했다. 3일 내내 그랬다. 그 자리에 없었다면, 이런 풍경을 가정하면 좋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3일 연속으로 한국팀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과 싸워 이기는 모습. 그것도 단 90분이 아니라 하루 종일 승전의 탑이 쌓아 올려지는 흥분된 모습. 이번 펜타포트가 꼭 그랬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입국해, 서울 시내를 지하철로 누비며 자신들의 밴드명이 한국말로 ‘좋아, 가는 거야!’라는 걸 전해들은 오케이 고(OK GO)는 공연 전 관계자들에게 노홍철을 무대에 세울 수 없냐고 물어봤다. 비록 그들의 꿈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공연 내내 또렷한 한국말로 ‘좋아, 가는 거야!’를 연발하며 객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앙코르 무대에서는 그들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어 밀리언 웨이스>(A Million Ways)의 춤을 그대로 선보이며 비명과 환호성을 절정에 올렸다. 케미컬 브러더스는 영상과 조명, 음악의 삼위일체로 수만의 관객에게 환각을 선사했다. 라르크앙시엘의 하이도는 끊임없이 허리를 돌리며 수많은 여성팬들을 몸속까지 젖게 했다. 그리고 뮤즈,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뭘 듣고 있는지 뭘 보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날 모든 관객의 주먹을 불끈 쥐게 했던 공연의 주인공, 럭스의 원종희는 “마치 영화 <향수>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며 이 집단최면의 순간을 회고한다. 돋보였던 건 해외 팀들뿐만이 아니다. 할로우잰, 럭스, 바셀린 등 펑크와 하드코어 밴드들은 왜 한국의 인디신이 그들로부터 발아했고, 그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지를 큰 무대에서 큼지막하게 증명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대형 록페스티벌에서 만난 레이니썬은 관객의 눈물과 환호를 동시에 자아냈다. 밴드의 보컬 정차식은 경상도 사투리로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객석이 보이지는 않았는데 소리만 들어도 짠하데”라며 그날의 열기를 말한다. 공연 마지막 날, 땅거미가 질 무렵을 장식했던 크라잉넛이 첫 곡으로 <말 달리자>로 진검승부를 걸었을 때 행사장의 구석구석에 있던 관객들이 빅탑 스테이지로 질주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지난해 첫날의 폭우로 엉망이 됐던 진행 시스템도 올해는 정상적으로 가동됐다. 세면장에서는 시종일관 콸콸 물이 쏟아져나왔다. 화장실도 계속 깨끗한 상태를 유지했다. 마지막 날의 헤드라이너였던 뮤즈의 공연을 제외하고는 모든 프로그램이 예정된 시간에 맞춰 칼같이 돌아갔다. 아티스트들 또한 원활한 공연 진행과 스태프들의 성의에 만족을 표시하며 자신들의 공연을 하고 다른 이들의 공연을 즐겼다. 그들 또한 펜타포트가 끝난 지금도 계속 그날의 흥분을 되새기며 술잔을 비우고 있다. 자유와 질서의 공존을 만든 관객들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건, 역시 관객들의 모습이었다. 수만 명이 운집했지만 사소한 안전사고도 눈에 띄지 않았다. 피곤한 사람은 누워서, 열의를 바치고 싶은 이들은 일찌감치 앞자리를 차지하며 축제를 즐겼다. 자유와 질서가 공존했다. 무대에 선 이들에게 100%의 흥분을 이끌어내는 호응으로 최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도 관객이었다. 스태프와 취재진, 아티스트와 관객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꿈의 3일이었다. 축제가 끝나고 일상이 시작됐다. 그 짧은 낙원의 나날이 끝나고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는 서울의 표정을 보면서 정말이지 한바탕 좋은 꿈을 꾼 기분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두가 벌써부터 내년 펜타포트를 기다리리라. 100점 만점에 아무리 짜게 줘도 90점은 주고 남을, 그 아름다운 흥분의 시공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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