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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천한 것과 돼먹잖은 놈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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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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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주의와 좌파의 결합,
피터 싱어의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 로쟈 인터넷 리뷰어·http://blog.aladdin.co.kr/mramor

다윈주의 좌파? 그렇다, 우파가 아니라 좌파다. 세계적인 윤리학자이자 동물해방론자인 피터 싱어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원제는 <다윈주의 좌파>)에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다윈주의 좌파’의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은 두 가지 남용과 오류에 대한 교정에서 성립한다. 남용은 ‘사회적 다윈주의’란 이름으로 불린 다윈주의 우파의 것이고 오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전통적인 좌파’의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각기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다윈주의 우파와 전통적인 좌파는 다윈주의에 대한 이미지를 공유한다. ‘경쟁에 기초한 적자생존’이라는 이미지다. 인간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란 관점이 공통적인 전제이다. 다만 다윈주의 우파가 보기에 그 이기성은 변하지 않는 본성으로서 구제불능이며, 전통적인 좌파가 보기에 그 이기성은 본성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다(이 경우 그 사회적 관계들을 변혁한다면 본성이란 것은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며 심지어 개조해낼 수 있다). 즉 인간 본성은 변화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믿음을 기준으로 좌·우의 스펙트럼은 나뉘어왔다.

그러한 분류에서 고려되지 않은 것은 진화생물학이 발전해감에 따라 확인된 새로운 ‘사실들’이다. 다윈주의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이 이타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자연의 도태 압력 속에서 살아남은 우리의 본성에는 경쟁 성향뿐만 아니라 협동하려는 성향 또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개정판) 등에서도 자세히 설명된 것이지만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식의 극단적인 이기주의 전략은 “너도 살고 나도 살자”라는 협력적 전략에 비해 덜 효과적이다(“나 죽고 너 살자”라는 이타주의는 진화되기 어려운 성향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가 아니라면 생존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협동의 진화론’을 주장한 로버트 액설로드 등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보여준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게 가장 효과적인 생존전략이라는 사실이다.

가령 휴가철을 맞이해서 피서지 바가지요금을 생각해보자. 피서지별로 ‘바가지요금 근절’을 내세우지만 피서객들을 ‘등쳐먹는’ 바가지 상술이 올해도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숙박업소 상인들은 ‘한철 장사’라는 생각에 화장실도 없는 방을 15만원이라고 내놓고 숙소를 구하지 못한 일부 피서객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런 바가지요금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피서객은 봉인가? 적어도 한 해만을 놓고 보자면 그렇다. 하지만 장사 한두 해 하는 것 아니다. 그리고 휴가철은 해마다 찾아온다(우리의 진화적 본성은 장구한 시간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차비나 숙박비 생각하면 차라리 비슷한 금액이니까 동남아시아나 해외로 가죠”란 관광객들의 푸념을 볼멘소리로만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윈주의 좌파는 인간 본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그래서 다윈주의다). 그렇지만 그러한 바탕에서도 상호 협력을 촉진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고 경쟁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향해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약자, 빈자,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설 수 있다고 믿는다(그래서 좌파다).

흔히 말하기에, 우파는 교양을 따지고 좌파는 품성을 논한다. 우파는 좌파가 무식하다고 욕하고(“천한 것들!”), 좌파는 우파가 돼먹지 않았다고 비난한다(“돼먹잖은 놈들!”). 하지만 그 둘 사이에 적대적인 관계만 설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유식하고 돼먹은 인간’으로 진화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파적 교양을 기본으로 갖추고 거기서 좀더 나가서 골고루 먹고사는 문제, 그러니까 평등의 문제를 고민하면 좌파인 거다”(강유원)란 정의를 이어받자면 “다윈주의라는 교양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거기서 좀더 나가서 상호 협력의 문제를 고민하면 다윈주의 좌파가 된다”.

*이번호부터 시작되는 로쟈의 책 리뷰는 3주마다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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