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 못한다는 캐릭터 앞세워 자학하는 개그맨을 보며 웃다
▣ 안인용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nico@hani.co.kr
“웃기는 거 빼곤 다 자신 있습니다. 참가번호 2번 정형돈이에요!”
문화방송 <무한도전> ‘강변(북로)가요제’에서 정형돈이 로큰롤 ‘이러고 있다’를 불렀다. 곡의 주제는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의 신세한탄’이다. 가사를 잠시 음미해보자. “타 방송을 나가서도 잘 웃겨 라디오를 나가서도 잘 웃겨 게스트를 나가서도 잘 웃겨. 왜 무한도전만 안 웃겨. 서커스 프리킥 난 뭐든지 잘할 수 있어. 개그맨이지만 웃기는 거 빼곤 다 잘해!” 정형돈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어느 순간부터 국민MC 유재석의 ‘잘 짜인 개그’보다 어색한 정형돈의 ‘웃기지 못하는 개그’에 더 열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형돈도 정형돈이지만 열광을 넘어 중독 수준에 이른 것은 정형돈을 질책하는 자막이다. “타 방송을 나가서도 잘 웃겨” 부분을 부를 때 뜬 자막은 다음과 같다. ‘뻥치시네….’
웃기지 못하는 순간, 냉혹하게 웃긴 자막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의 캐릭터는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으로 간략하게 정리된다.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이라. 세상에 꼭 직업을 잘해내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축구를 못하는 축구선수나 요리를 못하는 요리사, 노래를 못하는 성악가처럼 아무리 자기 직업이라고 해도 못할 수 있다. 다른 직업은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더 좋지만, 독특하게도 개그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정형돈은 웃기지 못한다는 그의 캐릭터 때문에 웃긴다. <무한도전>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어딘가 주눅들어 있는 모습(비록 하하는 설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이나 대화에 잘 끼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 얘기하려는데 잘리는 모습, 늘 ‘못 웃겨 편집된다’며 한탄하는 모습은 한회 한회 지날수록 더 웃긴다. ‘나는 웃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번번이 웃기는 데 실패하는 주변인들을 보는 기분이랄까. 정형돈의 ‘웃기지 못하는 개그’가 살아나는 데는 자막이 큰 역할을 한다. 정형돈이 차마 더 세게 자학하지 못하는 부분을 대신해주는 연출자 시점의 냉혹한(!) 자막은 정형돈의 개그를 한층 더 재미없는 것으로 만들면서 한 번 더 웃긴다. 다른 데서는 잘 웃긴다는 정형돈이 내 눈에는 <무한도전>에서만 웃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런 식의 자학 개그를 아예 간판에 걸고 나온 코너가 SBS <웃찾사>의 ‘고.고.고’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김형인, 이종규, 권성호, 최영수가 들고 나온 코너는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제갈공명이라는 설정이지만, 삼국지든 사국지든 오국지든 이 코너에서 중요한 것은 설정이 아니다. 이들이 코너 내내 ‘웃기지 못하는 개그’를 보여주면서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개그를 던진 다음 이들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한다. “웃기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정신없이 미는 유행어를 반복하고 나서 이렇게 자학한다. “따라하지도 않고, 유행어도 안 되고.” 나름대로 비장의 개그를 선보인 다음에도 반응이 없을 때는 이렇게 내뱉는다. “웃기지도 않고, 나이만 처먹고.” 한때 <웃찾사>를 주름잡았지만 최근 활동이 뜸했던 개그맨들이 이런 자학적 대사를 하면서 웃음을 이끌어내서 그런지 입에서가 아니라 속에서 웃음이 우러나온다. “그래, 나 도저히 못 웃기겠어” 지금까지 시청자에게 ‘웃기지 않아도 웃어라!’고 협박했던 개그맨들은 많았다. 제발 한 번만 웃어달라고 부탁하던 개그맨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보다 이들이 한 수 위인 이유는 자학에 앞뒤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웃기려고 노력했지만 쉽게 웃기지 못했던 그들의 과거를 알고 있다. 또 정형돈이나 <무한도전> 연출자, ‘고.고.고’의 개그맨들 모두 직설화법으로 자학 개그를 사용한다. 에둘러 ‘웃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대놓고 ‘그래, 나도 정말 웃기고 싶은데 도저히 못 웃기겠어’라고 자조하며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그 자체를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낸다. 여기서 알게 된 개그의 속성 한 가지. (<무한도전>과 같은 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인 K본부의 <스펀지>를 잠깐 빌리자면) ‘웃기지 못하는 개그도 □하면 웃긴다.’ 네모에 들어갈 정답은? ‘자학.’이번호 주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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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무한도전>에서 어색하고 웃기지 못하는 ‘진상’ 캐릭터로 열연하고 있는 정형돈(왼쪽)과 자학 개그로 무장하고 나온 SBS <웃찾사>의 새 코너 ‘고.고.고’.
웃기지 못하는 순간, 냉혹하게 웃긴 자막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의 캐릭터는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으로 간략하게 정리된다.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이라. 세상에 꼭 직업을 잘해내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축구를 못하는 축구선수나 요리를 못하는 요리사, 노래를 못하는 성악가처럼 아무리 자기 직업이라고 해도 못할 수 있다. 다른 직업은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더 좋지만, 독특하게도 개그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정형돈은 웃기지 못한다는 그의 캐릭터 때문에 웃긴다. <무한도전>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어딘가 주눅들어 있는 모습(비록 하하는 설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이나 대화에 잘 끼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 얘기하려는데 잘리는 모습, 늘 ‘못 웃겨 편집된다’며 한탄하는 모습은 한회 한회 지날수록 더 웃긴다. ‘나는 웃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번번이 웃기는 데 실패하는 주변인들을 보는 기분이랄까. 정형돈의 ‘웃기지 못하는 개그’가 살아나는 데는 자막이 큰 역할을 한다. 정형돈이 차마 더 세게 자학하지 못하는 부분을 대신해주는 연출자 시점의 냉혹한(!) 자막은 정형돈의 개그를 한층 더 재미없는 것으로 만들면서 한 번 더 웃긴다. 다른 데서는 잘 웃긴다는 정형돈이 내 눈에는 <무한도전>에서만 웃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런 식의 자학 개그를 아예 간판에 걸고 나온 코너가 SBS <웃찾사>의 ‘고.고.고’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김형인, 이종규, 권성호, 최영수가 들고 나온 코너는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제갈공명이라는 설정이지만, 삼국지든 사국지든 오국지든 이 코너에서 중요한 것은 설정이 아니다. 이들이 코너 내내 ‘웃기지 못하는 개그’를 보여주면서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개그를 던진 다음 이들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한다. “웃기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정신없이 미는 유행어를 반복하고 나서 이렇게 자학한다. “따라하지도 않고, 유행어도 안 되고.” 나름대로 비장의 개그를 선보인 다음에도 반응이 없을 때는 이렇게 내뱉는다. “웃기지도 않고, 나이만 처먹고.” 한때 <웃찾사>를 주름잡았지만 최근 활동이 뜸했던 개그맨들이 이런 자학적 대사를 하면서 웃음을 이끌어내서 그런지 입에서가 아니라 속에서 웃음이 우러나온다. “그래, 나 도저히 못 웃기겠어” 지금까지 시청자에게 ‘웃기지 않아도 웃어라!’고 협박했던 개그맨들은 많았다. 제발 한 번만 웃어달라고 부탁하던 개그맨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보다 이들이 한 수 위인 이유는 자학에 앞뒤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웃기려고 노력했지만 쉽게 웃기지 못했던 그들의 과거를 알고 있다. 또 정형돈이나 <무한도전> 연출자, ‘고.고.고’의 개그맨들 모두 직설화법으로 자학 개그를 사용한다. 에둘러 ‘웃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대놓고 ‘그래, 나도 정말 웃기고 싶은데 도저히 못 웃기겠어’라고 자조하며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그 자체를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낸다. 여기서 알게 된 개그의 속성 한 가지. (<무한도전>과 같은 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인 K본부의 <스펀지>를 잠깐 빌리자면) ‘웃기지 못하는 개그도 □하면 웃긴다.’ 네모에 들어갈 정답은? ‘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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