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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들이여 가지말라, 새만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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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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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의 무사를 기원한다는 ‘새만금 록페스티벌’은 치욕스런 행사로 기록될 것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지난 7월7일 미국, 영국,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8개국 9개 도시에서 <라이브 어스>(Live Earth)라는 대규모 자선 공연이 열렸다. 메탈리카, 레드 핫 칠리페퍼스, 본 조비, 린킨 파크, 브루스 스프링스틴, 보노, 마돈나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의 재앙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고자 공연에 참가했다. 2050년까지 온실 가스 배출을 반으로 줄이는 새로운 국제협약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은 <라이브 어스>는 음악이 자연과 생태의 친근한 벗임을 외치는 자리였다.

물막이 공사가 끝난 황량한 새만금에 모래바람이 불고 있다. 생명이 파괴된 자리에서 벌어지는 록 페스트벌은 록의 정신에 맞는 것일까.(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그런데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지구의 생태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 일이 벌어졌다. ‘청소년 경제교육재단 새만금 樂조직위원회’라는 단체는 21세기 가장 끔찍한 생태 파괴 사건으로 기록될 새만금 방조제에서 록페스티벌을 연다고 공표했다. 이들은 “새만금을 알리고 새만금 주변 서해안의 주요 관광지를 새롭게 알리는 행사로 새만금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새 생명의 무사를 기원하는 공익행사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이 행사를 개최한다고 말한다.

‘펄’과 ‘시멘트’도 구별 못하는 현실

출연진 면면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윤도현밴드, 마야, 강산에, 김C, 여행스케치, JK 김동욱, 윤미래, 다이나믹 듀오, 현진영, 김장훈, DJ DOC 등 국내 라이브 무대에서 잘나가는 뮤지션들은 다 모였다(7월12일 현재 새만금 록페스티벌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출연진 명단).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천혜의 자연습지와 생태갯벌이 살아 숨쉬었던 새만금을 불도저와 포클레인으로 갈아엎고 그곳에 33km의 방조제를 쌓아올린 끔찍한 자리에 이를 기념하는 록페스티벌이라니. 2007명의 풍물인들이 33km 세계 최장의 방조제에서 3만3천 명의 관객들과 길놀이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도전하는 행사가 도대체 새만금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는 것과 무슨 상관일까? 록페스티벌이 ‘비나리’ ‘해신제’도 아닐 텐데 새 생명의 무사를 기원하다니?

슬픈 일이지만, 이것이 현재 우리의 현실이다. 사망선고를 받은 새만금을 향해 슬픔의 진혼곡을 불러도 모자랄 판에 개발주의자들의 손에 놀아나 ‘펄’인지 ‘시멘트’인지도 구별 못하는 것이 우리 음악판의 현실이다. 문화를 지역개발의 제물로 기꺼이 바치면서 창의적 문화도시를 외치는 것이 우리 지역문화 정책의 현실이다. 단언컨대 새만금 록페스티벌 프로젝트는 문화축제를 가장한 개발업자들의 전형적인 쇼케이스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록’ 혹은 ‘축제’라는 이름으로 지역개발에 기꺼이 봉사하는 이벤트를 수없이 보아왔다. 그리고 그 굿판에 록이라는 특권을 들이대고, 젯밥에 눈이 먼 뮤지션들도 수없이 보아왔다. 개발주의자들의 거대 반짝 이벤트는 결코 두 번 이상 지속되지 않지만, 다른 개발 아이템이 생기기에 변신을 거듭한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만일 ‘경부대운하’가 건설된다면 이들은 540km의 운하에서 540 만명이 펼치는 물놀이 ‘선상 쇼’를 준비할 거다. 하다못해 동네 경로잔치나 노래자랑 대회도 기본 윤리와 도덕이 있는데, 수많은 생물들이 거의 몰살당한 장소에서 새만금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겠다는 록페스티벌의 정신은 아마도 심각한 ‘가학적 우울 증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이 공포스런 행사를 기획한 단체도 단체지만, 행사에 참여하는 뮤지션들이 과연 어떤 생각으로 출전을 결행했는지 궁금하다. 그들이 과연 세계 최고의 철새 도래지이고 백합조개와 소라, 갯지렁이가 꿈틀대던 새만금을 아는지, 그들이 무대로 삼을 방조제가 생태 학살의 현장을 덮어버린 ‘아우슈비츠의 관’이라는 것을 아는지 묻고 싶다.

한때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반전과 평화를 노래했던 윤도현밴드에게 새만금은 아마도 이 땅이 아니었나 보다. 윤도현밴드와 같은 소속사인 강산에의 최장 제목 노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은 아마도 갯벌 생물들에는 적용이 안 되는 모양이다.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는 새만금에서 자연의 죽음을 예고한 개발 유토피아를 위한 장송곡이었을까? <진달래 꽃>을 열창하는 마야에게 새만금은 갯지렁이를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는 길의 입구일까? 그렇다면 어차피 죽어 없어질 곳인데 이판사판 DJ와 함께 새만금 방조제에서 춤을?

새만금 록 페스티벌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공연의 중단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 문화연대 제공)

록음악과 록페스티벌의 정신은 어디로

아무리 여름의 각종 축제들이 뮤지션들에게는 한철 장사라 하지만, 이건 좀 너무 심했다. 지독한 돈의 노예가 아니라면 새만금 방조제의 생태 파괴에 대해 한 번쯤은 심사숙고하는 ‘생활의 지혜’가 가동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행사의 취지나 정체성과 상관없이 개런티 많이 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뮤지션들의 습성은 마치 주인이 종을 치면 입가에 침이 고이는 ‘파블로프의 개’를 연상케 한다. 물론 록음악 혹은 로커, 록페스티벌만이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부침 속에서도 록음악과 록페스티벌의 유산들은 우리에게 어떤 최소한의 윤리와 감성의 공감대를 전해준다. 그것은 바로 인간을 사랑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정신이다. ‘우드스톡’이 그랬고 ‘글래스톤베리’가 그랬고, ‘라이브 어스’도 그랬다.

모르긴 몰라도 ‘새만금 록페스티벌’은 지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록페스티벌이 될 것이다. 수많은 환경 생태운동가들이 새만금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던 생생한 기록들이 록페스티벌이라는 개발 부흥회로 인해 순식간에 공기 속으로 산화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로써 모든 것은 다 치유됐다고. 배가 갈라진 채 뒤집혀 죽어 있는 백합조개와 바짝 말라 비틀어진 채 부식된 갯지렁이를 제물로 삼아 펼쳐지는 새만금 록페스티벌은 인간이 자연에 자행한 가장 끔찍한 레퀴엠일 것이다. 그 죽음의 굿판을 자처한 사람들은 록의 치욕, 페스티벌의 굴욕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새만금 록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뮤지션들은 제발 참가를 중단하기 바란다. 만일 내용을 잘 모르고 계약한 것이라면, 차라리 위약금을 물더라도 이쯤에서 그만두었으면 한다. 위약금이 정 아깝다면 우리가 모금해서 보상해주겠다. 이것이 당신들을 살리는 길이고 죽어가는 새만금을 그나마 조금씩 회생시키는 일이다.

생태적 가치를 성찰할 새만금으로 가자

우리는 새만금 록페스티벌을 기획한 사람들, 또 그 페스티벌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이름을 똑똑하게 기억해야 한다. 겉과 속이 다르고, 명분을 목적과 사욕에 악용하는 사람들이 평생 동안 어떤 윤리와 감성으로 사는지를. 그리고 새만금 록페스티벌이 열리는 행사 기간에 모두 새만금으로 달려가자. 죽음의 굿판이 아닌 생명과 생태를 이야기하는 다른 장소를 행해. 그곳에는 잘나가는 윤도현밴드나 강산에, DJ DOC는 없지만, 새만금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마을 주민들과 조금씩 꿈틀거리는 또 다른 생명체들이 있다. 차라리 새만금 록페스티벌을 새만금의 생태적 가치를 다시 성찰하게 하는 ‘햄릿의 유령’으로 생각해보자. 그래서 새만금 방조제가 아닌 새만금 갯벌과 소금기 조금 풀어 헤쳐진 자그마한 마을 어귀에서 새만금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체험해보자. 새만금을 ‘두 번’ 죽이는 치욕스런 록페스티벌이 아니라 새만금을 조금씩 살리는 우리만의 생태문화 코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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