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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가자, 인천으로, 펜타포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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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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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들이 낮을 태우고 DJ들이 밤을 적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지난해 7월30일, 며칠 만에 태양은 작열했다. 덥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환호성이 터졌다. “드디어 록의 신이 저주를 거두었구나!” 이렇게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틀 전 아침 미친 듯이 쏟아지던 비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99년 여름 폭우로 인해 취소되고야 만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의 악몽을 떠올린다면, 이날의 태양은 신의 축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이었다. 몇 번이나 시도됐다가 좌절된, 이 땅의 록 페스티벌이 드디어 성황리에 무사히 끝나는 첫날이기도 했다.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러나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감격의 후기를 남기고 기사를 검색하며 흥분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년 여름을 기약했다. 그 ‘내년 여름’이 드디어 이번 주말이 됐다. 7월27일부터 29일까지, 우리는 송도로 간다. 또 비가 오고 또 진흙밭이 생겨서 장화를 신고 다닐지라도, 장화가 귀찮아 좀비처럼 걸어야 할지라도 간다. 두 번째 펜타포트로. 지난해 스트록스와 플라시보, 블랙 아이드 피스와 프란츠 퍼디낸드를 만났던 2만여 명의 하나라면 모두 그렇게 다짐할 것이다.

지난해 열린 첫 번째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둘쨋 날, 드래건애시의 공연을 보며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사진/ 씨네21 서지형)


데미언 라이스 위한 손수건은 필수

올해도 세계 각국에서 유수의 아티스트들이 인천공항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와 무대에 선다. 케미컬 브러더스와 뮤즈, 라르크앙시엘, 데미언 라이스, 애시, 테스타먼트, 크래시, 크라잉넛, 할로잰, 더 멜로디…. 아마 그 이름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이번주 칼럼은 족히 채우고도 남을 수많은 팀들이 2박3일을 달군다. 잊지 못할 주말을 선사할 것이다. 오래도록 기억될 여름을 심장에 새겨줄 것이다. 케미컬 브러더스 공연을 보면서 그저 음악만 트는 DJ쇼가 아니라 적잖은 부분을 실제 악기로 연주하는 그들의 무대에 혀를 내두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몸은 쉬지 않고 막춤을 출 각오도 다졌다. 뮤즈의 보컬이자 기타, 매튜 벨라미의 훈훈한 외모에 침을 흘리면서 그가 리드하는 액션에 맞춰 〈Starlight〉의 1-2-1-3 박수를 칠 연습도 끝났다. 지난 3월의 내한공연은 예행연습에 불과했던 것이다. 영화 <클로저>에서 중요한 장면마다 흘러나왔던 〈Blower’s Daughter〉를 직접 부르는 데미언 라이스의 목소리에 떨어뜨릴 눈물도 비축해놨다. 게다가 다른 백밴드 없이 어쿠스틱 기타 한 대 달랑 들고 무대에 선다니 손수건은 필수이리라. 라르크앙시엘, 음… 이 팀은 솔직히 말하건대 한국의 비주얼 록 팬들이 보여줄 놀라운 충성심에 역시 놀랄 마음가짐이 필요하겠군.

아무튼, 지난해의 펜타포트를 겪기 전에는 온통 판타지투성이였다. 후지, 서머소닉, 글래스톤베리, 레딩 등 세계 유수의 페스티벌 화보와 동영상을 보며 가졌던 막연한 이상만 있을 뿐이었다. 설령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 직접 외국의 페스티벌에 갔다 한들, 사방에서 온통 영어와 일본어만 들리는 환경에 120% 몰입하기란 힘들었다. 판타지도, 이상도 현실은 아니다. 현실이 아니기에 온통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는 한 번이나마 겪어봤다. 이 땅에서, 온통 한국어만 들리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그건 현실이다. 현실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래서 알고 있다. 만만찮은 고생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준비가 소홀하다면 모기떼에 시달려야 하고, 잠자리를 찾아 헤매야 하며, 갈아입을 옷이 없어 괴로워해야 한다. 완벽한 준비를 해도 낙원은 아니다. 화장실 앞에는 기나긴 줄이 서 있을 것이다. 비가 오면 진흙에, 너무 화창하면 흙먼지를 피할 수 없다. 공연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스테이지에 갔다올 에너지가 없다면 마냥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대 옆 스크린에 흐르는 협찬사들의 CF를 무한반복 시청하면서 그 제품과 영화에 세뇌되고야 말리라. 그러나 이런 불편은 세계 어디의 페스티벌을 가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황량한 벌판에서 열리는 짧은 축제다. 아무리 이명박이 오더라도 불과 2박3일의 행사를 위해 벌판에 도시를 건설할 수는 없을 테니.

27일, 음악의 신이 손을 치켜든다

그럼에도 어느 페스티벌의 관객이든 한결같이 들뜨고 웃는 얼굴만 보이는 이유가 있다. 이제는 우리 역시 알고 있다. 뮤지션들이 낮을 태우고 DJ들이 밤을 적신다. 언제 어딜 가나 음악이 있다. 이를 좇아 몰려든 수만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싹틀 인연의 꽃밭이 있다. 이곳저곳의 음악 커뮤니티에서 머리를 모아 선보일 매칭룩은 송도를 오프라인 UCC의 경연대회로 만들 것이다. 그들과 함께 꿈에서나 그리던 뮤지션의 무대를 보면서 젖을 감동이 있다. 생전 처음 보는 뮤지션의 공연에 흠뻑 반할 열린 마음이 생긴다면 어떤 고생도 그 행복을 방해하지 못한다. 왜 1969년 우드스톡에 모인 히피들이 사랑과 평화를 외쳤는지 몸과 마음은 순식간에 깨닫는다. 폭우가 쏟아져도, 태양이 작열해도 사필귀정이다. 록 페스티벌은 그런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가 아닌, 음악이 있기에 가능한 축제다.

누구나 CD를 사진 않지만, 누구나 음악은 듣는다. 귀만 있으면 된다. 귀와 연결된 뇌와, 뇌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지는 신경이 멀쩡하다면 금상첨화다. 모든 준비는 끝난 것이다. 이제 주말만 기다리면 된다. 27일 아침, 음악의 신이 손을 치켜든다. 하나, 둘 그리고 신호탄을 쏜다. 달려가자, 송도로. 무서울 만큼 벅찰, 인생의 한순간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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