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이라는 은유적 기념비로 읽은 중국사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달에 가면 만리장성이 보인다.’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이 말이 유효기간이 다 되어 ‘거짓’ 판결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의미심장하다. 1893년에 처음 제기된 말을 1932년 만화가 로버트 리플리가 퍼트린다(그러고 보니 ‘미스터 리플리’다). 물론 달에 인간이 가기 전이니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마음 내키는 대로 믿거나 믿지 않거나 하면 되는 이야기다. 의외로 믿는 사람이 많았는지 달에 갔다 온 닐 암스트롱에게 진짜 보이더냐고 물었나 보다. 닐 암스트롱은 “그렇다”고 답했다. 나중에 <지리학 잡지>에 그냥 구름 덩어리였을 뿐이라고 밝혔지만 많은 이들은 ‘보인다’ 쪽에 마음이 쏠렸다. 2003년 드디어 중국도 우주에 인간을 보냈다. 우주비행사 양리웨이는 “안 보이던데요”라고 말했다.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중요한 임무처럼 샅샅이 훑었나 보다. 그는 “성벽 중 어느 한 구역도 볼 수 없었다”고 ‘절대 부정’을 했다. 이후 중국 교과서에서는 만리장성이 달에서 보이는 인공 구조물 두 가지 가운데 하나(다른 하나는 네덜란드의 해수제방)라는 내용이 빠졌다.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김병화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의 줄리아 로벨은 장성에 대한 거짓이 이뿐이 아니라고 말한다. 소소하게 들자면 장성은 ‘Great’(만리장성의 영어명은 ‘Great Wall’)하지 않다. “관광객들이 출입할 수 있는 몇 군데를 찾아가봤자 맥 빠질 정도로 비역사적인 경험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만리장성 안내원에게 언제, 어떻게 건설됐느냐고 물으면 안내원은 그런 시시한 질문을 왜 하냐는 투로 시황제가 2000년 전에 건설했다라고 말할 텐데,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만리장성은 3000년 전부터 시작해 명나라 때까지 조금씩 지어진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만리장성은 만리를 이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위대한 성벽이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성벽이 있다.” 이런 만리장성에 대한 ‘진실게임’ 같은 시시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줄리아 로벨은 근본적인 성찰로 나아간다. 이 만리장성이라는 중국 성벽(‘만리장성’이 아니니 책에서 호칭은 단지 ‘성벽’이다. 번역판 제목도 그래서 ‘장성’이다)은, 그리고 그를 둘러싼 신화는 중국과 그 역사를 읽어나가는 데 기념비적인 은유다. 줄리아 로벨은 3000년 중국 역사를 장성 건설에 초점을 맞춰 재구성한다. 역사는 장성의 목적이 방어라기보다는 공격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원전 1000년 몽골 초원에 세워진 사막 깊숙이 들어간 장벽은 영토 포획용이었다. “생활 방식이 다른 사람을 감시하고 두둑한 수익을 안겨주는 교역로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부침을 거듭한 왕조와 그 권력은 장벽으로 우월주의를 싸안고 외부인을 배격했다. 이민족이 장벽 속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에도 ‘중화주의’에 대한 열망은 지속됐다. 이 장벽은 현대의 인터넷 장벽, 방화벽으로 화한다. 민감한 외국 사이트를 막고 공식적으로 문제가 되는 단어를 탐지기로 거른다. 2002년에는 구글을 전부 차단하기도 했다. 중국 역사 속에서 장성은 ‘미스터 리플리’가 “오직 하나뿐인 존재! 만리장성의 건설자!”라고 칭송한 진시황제와 가장 잔혹한 군주로 기록되는 진시황제의 간격처럼 모순된다. 위대한 황제는 무자비하게 정복 전쟁을 벌였고 장성을 세워 이민족을 경계했다. 그리고 장성은 남았다. 칭송의 한가운데 놓인 것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다. 장성은 “중국의 자기 인식을 들여다보는 내향적인 창문이요, 외부 세계로 향하는 창문이기도 하다”. 그 창을 들여다본 이민족이자 외부자인 영국인 줄리아 로렐에게 장벽은 “외국인 혐오증과 문화적 우월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군주로 군림한 역사가 ‘우월주의’로 정리되고 보니 바이킹의 역사와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그가 깔끔하게 정리하는 중국사는 자꾸 우스꽝스러워진다. 저자는 “성벽의 힘은 그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는 칭기즈칸의 경구를 여러 번 되새기지만 책의 마지막 장까지 중국에 일말의 희망도 걸지 않는다.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김병화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의 줄리아 로벨은 장성에 대한 거짓이 이뿐이 아니라고 말한다. 소소하게 들자면 장성은 ‘Great’(만리장성의 영어명은 ‘Great Wall’)하지 않다. “관광객들이 출입할 수 있는 몇 군데를 찾아가봤자 맥 빠질 정도로 비역사적인 경험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만리장성 안내원에게 언제, 어떻게 건설됐느냐고 물으면 안내원은 그런 시시한 질문을 왜 하냐는 투로 시황제가 2000년 전에 건설했다라고 말할 텐데,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만리장성은 3000년 전부터 시작해 명나라 때까지 조금씩 지어진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만리장성은 만리를 이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위대한 성벽이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성벽이 있다.” 이런 만리장성에 대한 ‘진실게임’ 같은 시시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줄리아 로벨은 근본적인 성찰로 나아간다. 이 만리장성이라는 중국 성벽(‘만리장성’이 아니니 책에서 호칭은 단지 ‘성벽’이다. 번역판 제목도 그래서 ‘장성’이다)은, 그리고 그를 둘러싼 신화는 중국과 그 역사를 읽어나가는 데 기념비적인 은유다. 줄리아 로벨은 3000년 중국 역사를 장성 건설에 초점을 맞춰 재구성한다. 역사는 장성의 목적이 방어라기보다는 공격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원전 1000년 몽골 초원에 세워진 사막 깊숙이 들어간 장벽은 영토 포획용이었다. “생활 방식이 다른 사람을 감시하고 두둑한 수익을 안겨주는 교역로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부침을 거듭한 왕조와 그 권력은 장벽으로 우월주의를 싸안고 외부인을 배격했다. 이민족이 장벽 속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에도 ‘중화주의’에 대한 열망은 지속됐다. 이 장벽은 현대의 인터넷 장벽, 방화벽으로 화한다. 민감한 외국 사이트를 막고 공식적으로 문제가 되는 단어를 탐지기로 거른다. 2002년에는 구글을 전부 차단하기도 했다. 중국 역사 속에서 장성은 ‘미스터 리플리’가 “오직 하나뿐인 존재! 만리장성의 건설자!”라고 칭송한 진시황제와 가장 잔혹한 군주로 기록되는 진시황제의 간격처럼 모순된다. 위대한 황제는 무자비하게 정복 전쟁을 벌였고 장성을 세워 이민족을 경계했다. 그리고 장성은 남았다. 칭송의 한가운데 놓인 것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다. 장성은 “중국의 자기 인식을 들여다보는 내향적인 창문이요, 외부 세계로 향하는 창문이기도 하다”. 그 창을 들여다본 이민족이자 외부자인 영국인 줄리아 로렐에게 장벽은 “외국인 혐오증과 문화적 우월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군주로 군림한 역사가 ‘우월주의’로 정리되고 보니 바이킹의 역사와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그가 깔끔하게 정리하는 중국사는 자꾸 우스꽝스러워진다. 저자는 “성벽의 힘은 그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는 칭기즈칸의 경구를 여러 번 되새기지만 책의 마지막 장까지 중국에 일말의 희망도 걸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