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여고 시절, 희소가치 있는 총각 선생에게는 떼로 여자애들이 몰렸고 무혈(가끔 유혈) 쟁탈전 끝에 그중 제일 성질 나쁜 애가 그를 ‘가졌다’. 괜한 상상은 마시라. 그저 떡볶이집 여론에서 “물리는 누구 거” “세계사는 누구 거”라고 공식화되는 수준이니까. 하지만 어느 반의 어떤 애가 멋모르고 ‘그 물리’와 ‘그 세계사’ 책상에 꽃을 갖다놓기라도 하면 한동안 그 애는 학교 생활 힘들어진다.
그런데 꼭 아무도 관심 없는 남자 선생을 찍어 자기 거라고 선언하는 애들이 있었다. 진짜 취향 독특한 애들인데, 내 친구도 그중 한 명이었다. 짱구머리 지구과학 선생에게 꽂혀 지극정성을 쏟았다. 흑백 사진을 구해와 색깔 넣어 책받침에 새기고 커플 목걸이에 박아넣는 건 기본, 철철이 꽃 사다 바치고 수업 시간에 음료수 갖다놓고, 심지어 다른 과목은 50점 받아도 지구과학만큼은 80점 이상(내 친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성적으로,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였을 것으로 사료됨) 받는 등 학업에도 기염을 토했다. 왜 하필 지구과학이냐고 묻는 우리에게 그의 변은 이랬다. “나 혼자 가질 수 있잖아.”
누가 봐도 이상한데 멀쩡하게 사는 남자들이 있다. 특정 취향을 가진 여자들의 보호·관찰을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조장하고 향유하는 남자들로, 독점욕을 자극하기 때문인지 희소가치 때문인지, 혹은 둘 다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한 남자 ‘아티스트’. 이분은 돈이 없어도 꼭 유기농 밥상을 받으셔야 하고 남해의 외딴 섬에서도 반드시 에스프레소를 마셔줘야 하며 섹스가 끝난 뒤 짧은 수면을 취할 때를 포함해 언제 어디서건 마땅히 혼자 침대를 쓰셔야 한다. 여행 가서 한껏 분위기 내다가도 취침 시간이 되면 불 끄고 누우신다. 말똥말똥하거나 한잔 더 하고 싶은 여자는, ‘들고 나는 문소리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예민한 그분을 위해 방 밖으로도 못 나가고 옆 침대(없으면 방바닥이나 소파)에 누워 숨죽인 채 밤을 보내야 한다. 여자는 그가 각종 공과금 납부며 옷맵시(아티스트 맞아?)까지 스스로는 뭐든 할 수 없다며 다 챙겨준다(그런 분이 이상하게 집 명의는 자기 이름으로 돼 있다). 여자는 그러면서도 늘 그 아티스트를 추종하는 다른 ‘여자애’들을 신경써야 한다.
무심한 듯 덜 떨어진 듯 보이는 남자일수록 그런 ‘엄마’들이 주변에 많다. 물론 이런 남자들이 된통 걸릴 때도 있다. 콘돔 껍데기 하나 지 손으로 까지 않다가 ‘거룩한 임신’을 하거나, 그를 돌보던 ‘사회적 엄마’가 과중한 육아 부담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거나 미쳐버릴 때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그리하여 그가 생활인으로 돌아오면 좋겠지만, 대체로 이런 이들은 전의 여자보다 더한 독점욕과 희생정신을 가진 ‘새 엄마’를 만난다. 게다가 전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그의 처벌을 원치 않아, ‘반의사 불벌죄’의 혜택도 고루 누린다. 한마디로 ‘난놈’이다. 세상의 통념과 데이트 비용, 온갖 ‘업무 외’ 수발과 감정노동까지 스스로 감당하고 돌파하며 일정한 경지에 이른 ‘난년’들(<한겨레21> 577호 이 칼럼 참조)과는 달리, 이 난놈들은 자기 힘 하나 안 들이고 일신상의 안락을 누린다는 점에서 ‘난한’ 인간계의 진정한 난놈이라 할 수 있다.관련기사
▶난년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무심한 듯 덜 떨어진 듯 보이는 남자일수록 그런 ‘엄마’들이 주변에 많다. 물론 이런 남자들이 된통 걸릴 때도 있다. 콘돔 껍데기 하나 지 손으로 까지 않다가 ‘거룩한 임신’을 하거나, 그를 돌보던 ‘사회적 엄마’가 과중한 육아 부담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거나 미쳐버릴 때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그리하여 그가 생활인으로 돌아오면 좋겠지만, 대체로 이런 이들은 전의 여자보다 더한 독점욕과 희생정신을 가진 ‘새 엄마’를 만난다. 게다가 전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그의 처벌을 원치 않아, ‘반의사 불벌죄’의 혜택도 고루 누린다. 한마디로 ‘난놈’이다. 세상의 통념과 데이트 비용, 온갖 ‘업무 외’ 수발과 감정노동까지 스스로 감당하고 돌파하며 일정한 경지에 이른 ‘난년’들(<한겨레21> 577호 이 칼럼 참조)과는 달리, 이 난놈들은 자기 힘 하나 안 들이고 일신상의 안락을 누린다는 점에서 ‘난한’ 인간계의 진정한 난놈이라 할 수 있다.
▶난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