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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국 불법 다운로드계의 황태자, 구사나기 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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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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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글 김대중

안녕, 박?

어제 술자리에서 너의 금(禁)다운로드 선언을 접하며 우리 모두는 적잖이 놀랐더랬다.

그 분야에서만큼은 언제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시대를 앞서가는 다운로드로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주던 너였기에 놀람은 더더욱 컸지.


네 변심을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너는 짧지만 강렬했던 지난 10년간의 다운로드 개인사를 말해주었다.

벤처 열풍과 스타크래프트 광풍 속에서 막 군 제대를 한 네게 인터넷 적응은 곧 사회 적응이었고, 이내 “네트는 광대하다”는 말씀을 따라 그 바다에 풍덩 몸을 던졌다고. 이미지와 음악·동영상에 텍스트, 한드·일드·미드, 나아가 중드·영드까지…. 저 멀리 오래되고 심오한 예술영화의 끝에서 바로 여기 포르노그래피의 최신작까지 경계 없이 넓어져가는 네트의 우주에서 네가 가보지 않은 길이 어디이며, 닿지 못한 땅이 어디인지. 그래, 세계의 끝이라도 다다르려는 네 불굴의 의지와 새로운 발견에 우리 모두는 ‘공유’를 외쳤더랬다.

그러나 아직 그어지지 않은 인터넷 세계의 윤리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자연스러움이고 순리라 생각하며 한참을 왔을 때, 네가 발견한 것은 생명이 흐르는 육체가 아니라, 디지털화된 정신이었으며,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아주 서서히 삶의 매너리즘 속에 빠져 있는 자신이더란 것이다.

자신에 대한 합리화에도 불구하고 먼저 몸이, 그리고 마음이 지쳐 있음을 알게 된 것이지.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고, 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달려야 할 것 같은 충동 속에서 살아왔다고…. 그렇게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긴 ‘한 마리 해파리’가 되어 있더란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제 자연스러움보다 부자연스러움을 선택하고,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됨으로써 살아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졌다고. 그것이 아무리 작은 행동일지라도 의지 이전에 몸이 그것을 원한다고….

자, 이제 불야성 같은 한국 다운로드계를 뒤로하고 현실의 바다로 떠난 너에게 건투를 빈다. 파이팅~!

- 말죽거리 해파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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