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원 인턴기자 한양대 행정학 4
▣ 사진·정수산 기자 jss49@hani.co.kr “74년인가, 그땐 여름이 되면 동네에 한 할아버지가 ‘구루마’에 큰 수동 빙수기를 싣고 다니면서 팥빙수를 만들어줬죠. 얼음은 수북한데 팥은 별로 없고 우유 조금 넣은 다음 무슨 색소 같은 것을 넣어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줬어요. 보기만 해도 달달한 기운에 침이 고였죠.”

“처음 팥빙수를 맛본 건 고등학교 때 제과점에서였어요. 당시에 여름이 되면 제과점에서 팥빙수를 팔았는데 언제부터 팔기 시작하나 하고 기다렸던 기억이 나네요. 팥빙수 판다는 포스터를 1년 내내 붙여놓으니 별수 있나요. 더워졌다 싶으면 주인 아주머니께 만날 물어봤죠, ‘아줌마 팥빙수 해요?’ 하고.” 30, 40대가 추억하는 생애 첫 팥빙수의 경험은 이렇게 애잔하다. 그들이 추억하는 팥빙수의 모양은 툭 치면 넘칠 것같이 이것저것 잔뜩 들어 있는 요즘의 모양새와는 달리 얼음과 팥, 이 두 가지 중심의 나름 ‘순수한’ 구성이다. 더워져야 나타나 달콤하게 입 안에 퍼지면서 나중엔 머리끝까지 시리다 못해 저릿하게 만들었던 그 느낌. 기다림 끝에 맛볼 수 있는 그 맛에는 계절 과일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과 애절함이 서려 있었다. 고체에서 액체가 되는 찰나를 즐겨라 팥빙수. 얼음을 갈아 삶은 팥을 넣어 만든 빙과류. 구분 청량음료, 주재료 얼음·팥, 조리 시간 10분. 네이버 백과사전의 간단명료한 정의다. 하지만 조리 시간이 10분이라 해도 땀 흘려 수동 빙수기 돌릴 때와 자동 빙수기의 버튼 하나 누르는 데 드는 시간차부터 통조림 팥을 쓸 때와 팥을 직접 삶을 때 드는 시간차를 생각하면 조리 시간만도 천차만별이다. 재료도 과일, 젤리, 떡, 시리얼 등이 저마다 자신의 비중을 강조하니 오죽하면 미숫가루조차도 그 없인 팥빙수를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할 정도다. 청량음료라고 구분해놨지만 우리는 그를 음료라기보다는 씹어먹는 무엇으로 인식하니 ‘고체에서 액체가 되는 찰나를 즐기는 음식’이라 함이 가장 정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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