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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영화/ 서부로 간 '성룡표' 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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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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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하이 눈>에서 보여준 성룡의 웃음엔 미국 냄새가 난다

19세기 말. 대청나라의 공주가 미국으로 납치된다. 이에 놀란 정부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 몸값과 함께 근위무사를 파견한다. 만일 이것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라면, 역사는 또 한번의 세계대전을 기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때는 말하자면 서양의 제국주의가 앞다투어 중국을 탐내던 시절, 중화를 세상의 중심으로 확신하던 조선이 쇄국을 외치던 시대 아닌가?

하지만 영화가 시작된 다음에도 관객은 세계사적 사건을 심난해 할 필요가 없다. 성룡 영화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진지함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관객 모두가 편안하게 영화를 즐기도록 온갖 노력을 다한다는 점에서 <샹하이 눈>은 20년 전의 <취권>이나 10년 전의 <미라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룡이 연기하는 근위무사 장웨인은 열차강도와 싸우고 인디언 부족과 우정을 맺으며 공주가 있을 도시로 향한다. 서부의 무법자지만 마음은 여린 로이가 모험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공주를 구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 이 사건과 만남은 성룡의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 재미의 원천들이다. 온갖 사물을 무기로 사용하는 시들지 않는 액션이 지나가면 서부극의 관습을 빌려와 적절히 바꾸어놓은 에피소드들이 진행된다. 여러 서부영화를 패러디한 재미도 적지 않지만 성룡다움을 놓치지 않는 연기와 통일감은 미국에서 촬영한 성룡 영화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 개성없는 조연에 불과했던 <캐논볼>은 물론 <러시아워>에 견주어봐도 <샹하이 눈>이 가장 성룡다운 영화다. 덕분에 똑같은 시대 설정에 이야기마저 비슷한 <황비홍 9- 서역웅사>와 달리 동양 문화의 우월함을 강조하다 영화가 삐걱거리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누가 봐도 즐거워할 수 있을 영화. 이것이 성룡이 꿈꾸는 이상적인 영화다. 그런데 <샹하이 눈>은 조금씩 그의 의도에서 비껴간다.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 자국이 남는다. 성룡 특유의 웃음과 성실한 몸짓은 동양인을 짐승처럼 바라보던 서부시대 미국인들의 시선을 제압하기에, 그래서 할리우드에서 성룡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에 충분하지만, 홍콩에서 만든 이전 작품들과는 어딘가 다르다.

예를 들어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눈덮인 산맥을 넘는 장면에서 힘들어하는 성룡의 얼굴은 어찌보면 미소짓는 것 같기도 하다. 홍콩 시절 그 표정은 고난도의 스턴트를 해치우고 보여주던 성룡만의 얼굴이자, 관객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자부심의 겸손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그의 얼굴이 가진 표현력은 광활한 미국의 산맥에 둘러 쌓여 있다. 이것은 엑스트라를 거부하는 성룡의 노력만큼이나 미국이라는 풍경의 포용력을 강조한다. <샹하이 눈>에서 성룡의 웃음은 더이상 투명하지 않다.

다양한 종류의 웃음이 있지만, 웃자고 보는 영화치고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웃음이라는 문화적 행위는 언제나 비교의 대상이 필요한 법이고 그 대상이란 열에 아홉은 현실의 한귀퉁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비슷해도 상반된 반응이 되돌아온다. <핑크 팬더>의 멍청한 동양인 부하를 비웃을 때와 <사우스 파크>를 보며 희열에 가까운 폭소를 터뜨릴 때, 차이는 웃음의 과정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있었다. <샹하이 눈>에서 성룡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순수한 코미디를 꿈꾼다. 그러나 웃음은 옛날처럼 투명하게 관객에게 향하지 못하고 미국이라는 풍경을 맴돌고 만다.


권용민/ 영화평론가libe1895@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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