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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세상이 흐물흐물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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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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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멜로디와 보컬로 중독자들을 거느린 전자양, 제대하고 2집 <숲>으로 돌아오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2000년대 이후, 장마철이 시작되면 라디오에서 어김없이 흐르는 노래가 있다. 전자양의 <오늘부터 장마>다. 제목의 탓이 크겠지만, 제목 장사만으로 끝나는 곡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뿐만 아니라 화장품 CF에 쓰여 널리 알려진 <아스피린 소년>도 그의 작품이다. 2001년 발매된 그의 데뷔작 〈Dencihinji〉는 루시드 폴의 데뷔 음반과 함께 한국 방구석 뮤지션들의 교과서로 자리잡았다. 몽롱한 기타 멜로디와 더 몽롱한 보컬, 알 듯 말 듯 모호한 가사로 적지 않은 중독자들을 거느리게 된 전자양이 2집 음반을 냈다. 전작의 몽롱함이 빠진 대신, 그럴듯한 유머감각과 이곳저곳을 오가는 다채로운 스타일로 무장한 이 음반의 제목은 <숲>이다. 6년 만의 신작을 들고 온 전자양을 만났다.

여러 음원으로 멜로디의 블록을


몽롱한 기타 멜로디와 더 몽롱한 보컬로 적지 않은 중독자들을 거느리게 된 전자양이 2집 음반을 냈다. 이번에는 유머감각과 다채로운 스타일로 무장했다.

1집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전작의 느낌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Dencihinji〉 이후에 그런 우울한 정서의 음악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그걸 내가 또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나는 계속 바뀌는 뮤지션들을 좋아한다. 오아시스보다는 블러랄까. 6년 동안 감정 상태도 많이 바뀌었다. 1집 때는 왜 나만 우울할까 하는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는데 군대를 가보니까 ‘세상은 여기보단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그 이후 삶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1집이 ‘울’이었다면 2집은 ‘조’다. 기본적인 정서는 염세적이지만.

20대 나이에 6년이라니, 군대를 감안하더라도 너무 긴 공백 아닌가.

=2003년에 제대하고 그동안 계속 일주일에 3~4일씩 곡 작업을 했다. 디지털로 음악 소비 환경이 바뀌면서 음반의 가치가 약해지고 있지 않나. 이런 환경에서 오히려 한 장의 작품이 될 수 있는 양과 질을 만들기 위해 계속 끌었다. 만족할 만한 퀄리티가 나올 때까지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었다.

그렇다면 복잡한 음악을 염두에 둔 건가.

=그렇지 않다. 코드 진행은 굉장히 단순하다. 코드는 두세 개지만 그 안에서 뽑을 수 있는 좋은 멜로디는 다 뽑아내고 그걸 조합하는 방식이다. 음악은 결국 멜로디다. 작업을 할수록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기타면 기타, 신시사이저면 신시사이저 등 음원마다 나올 수 있는 멜로디가 다르다. 여러 음원으로 멜로디의 블록을 만들어 그걸 쌓아가는 방식이었다. 들어도 들어도 새로운 게 들리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숲>도 그런 의미다. 숲은 나무들의 집합이다. 그 안에는 나비도 있고 풀도 있다. 숲만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나무도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숲>을 들으면서 당신은 군대가 아니라 우주에 갔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예전부터 환상이나 초현실이 현실의 일부 같고 아름다웠다. 무의식의 세계가 현실로 들어왔으면 하는 생각이 계속 있었다. 1집 때는 실제로 평생 자면서 꿈만 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내가 나비고 장자의 꿈을 항상 꿨으면 좋겠다는. 정신분석학에서도 무의식이 모든 욕망이 해소되는 공간이라고 하지 않나. 얼마나 아름다운가. 2집 작업하면서 현실로 많이 들어오다 보니 뒤섞이는 게 많이 생겼다. 지금은 현실을 무의식처럼 살고 싶다. 세상의 모든 의식이 흐물흐물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욕망이 가사에도 반영되는 건가. 메시지나 내러티브가 명확하지 않다.

=분명히 애기하고 싶은 현상은 있는데 그게 머릿속에서 언어가 아니라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꿈이 대부분 그렇지 않나. 깨어나서 얘기하려고 하면 기억은 나는데 말로는 전달이 되지 않는 것처럼 내 가사도 그렇다. 다만, 스토리는 확실히 짜여 있다.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얘기를 만들어가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가사를 다들 다르게 생각한다. 가사를 보지 않고 들리는 대로만 듣고 여러 반응이 나온다. 그런 게 재미있다. 내 음악에 맞는 방향인 것 같다. 산문보다는 운문이 좋다.

음악 한 했으면 히키코모리 됐을지도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가 작업에 적잖이 참여했다. 1집에 이어 제작자이기도 한데, 그는 <숲>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나.

=민규 형과는 서로의 음악에 대해 코멘트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이번에 하도 궁금해 믹싱하면서 어떤 것 같냐고 물어봤다. 한참 생각하더니 이러더라. “내가 생각하기엔… 1집이랑 많이 다른 것 같아.” 딱 그것뿐이었다. (웃음)

원래 라이브를 잘 안 하는 편이다. 앞으로 공연 계획은 있나.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공연을 도와줄 세션이 없다. 그동안 같이 하던 친구들이 다들 미래가 불안한 나이다 보니 갈팡질팡하고 있다.

당신에게 음악이란 뭔가.

=음악을 안 했으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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