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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다들’에 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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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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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글 최규석

몇 달 전 작업실 겸 자취방으로 쓰고 있는 오피스텔의 주인이 급히 쓸 돈이 있어 전세금 1천만원을 올려달라고 했다.
처음 들어올 때 시세보다 싸게 들어왔고 그 뒤 시세가 더 올라 1천만원을 올려준다 해도 비싼 건 아니었다.
올려주면 1년 더 사는 것이고, 돈이 없다면 더 싼 곳으로 이사를 하면 된다.

하지만 법이라는 게 있다.
법전을 뒤져 대략 알아내기로는 계약 만료일 이전 6개월에서 1개월 사이에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주인은 2주를 남겨두고 알려왔다. 그러니 전세 계약은 자동으로 1년 연장이 된 상태였다.
그리고 설사 1개월 전에 말을 했다 하더라도 대통령령이 정하는 비율 내에서만 올릴 수 있다고 했으니 주인은 턱없이 많은 액수를 요구한 것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그 말을 했더니 웃으며 “세상을 모르시네요”한다.
부동산 중개인 자격증을 가진 내 가족도 “법대로 해서 감정 상하지 말고 돈 있으면 그냥 올려주라”란다.
법이 있지만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나에겐 돈이 있었고, 이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다지 피해볼 것 없는 그 일이 너무나 하기 싫어서 며칠 동안 고민하고, 집주인과 말다툼을 하다가 결국 돈을 보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돈을 올려달라 말하는 딱히 악한 데 없는 집주인에게 세상 모르는 사람의 상식을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었지만 앞으로 닥칠 귀찮음이 싫어 그만뒀다.

이로써 돈이 없어 난감해할 어느 세입자에게 그들이 들이대는 “다들 그렇게 해요”의 그 ‘다들’에 자진해서 편입됐다.

기분은 더럽지만 몸은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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