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귀로 음악을 붙잡고 춤추는 프로야구 SK의 인기 치어리더 배수현씨
▣ 인천=송호진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dmzsong@hani.co.kr
롯데 투수가 1루로 견제구를 던져 팽팽한 긴장감을 풀어헤친다. SK팬들이 입을 맞춰 쏘아붙인다. “야! 그러면 안 되지~.” 함성은 타석 쪽으로 던져진다. “이·호·준!(넌 4번타자라는 외침이고) 넘겨버려~!(‘이럴 때 한 방 쳐야지’란 믿음이기도 하다)” 딱! 때 맞춰 터진 파열음. 공은 우익수 쪽에 떨어졌다. 3루 주자는 홈으로, 1루 주자는 3루로.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그는 어느새 단상에 올랐다. 펄쩍 또 펄쩍. 굳이 <여행을 떠나요>란 노래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그의 몸짓은 “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 속을” 벗어난 사람처럼 자유로워 보인다. 위로 뻗은 그의 팔이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이면, 관중의 팔도 오른쪽 왼쪽으로 출렁인다. 트위스트를 추면 관중석도 이내 트위스트 물결. “그거 알아요? 춤을 추다 보면 이마에 땀이 맺혀요. 머리카락 흩날릴 때 그 머리에 있던 땀도 허공에 흩날리는 게 보이거든요. 카타르시스 혹은 전율? 그건 정말….”
초등학교때 알게 된 ‘신경성 난청’
경기 시작 3시간 전. 사전 연습을 마치고 화장을 끝낸 배수현(23)씨와 마주 앉았다. 1600여 명의 팬카페 회원을 지닌 그는 프로야구 SK의 인기 치어리더다. “뒤에서 누가 날 부르면 잘 듣지 못할 때가 있죠. 무슨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옆에서 뭐라고 할 때도 그렇고.” 그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앞에 있는 사람의 눈동자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의 오른쪽 귀를 막으면 세상의 소리도 꺼진다. “왼쪽 귀는 ‘쿵쿵’ 하는 저음 같은 것 외에는 거의 들리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는 오른쪽 귀로 소리를 붙잡는다. “한쪽 눈이 나쁘면 다른 눈도 나빠지는 것처럼 오른쪽 귀도 청력이 약간 떨어져 있지만…. 저 괜찮아요. 지금처럼 잘 듣고 이렇게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잖아요?”
처음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는 주저했다. “지금 내가 이렇다고 혹시 사람들이 불쌍하게 볼까봐”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난 잘 살고 있는데, 정말 떳떳한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뿐인데, 동정받으려고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싫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께서 가정통신문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으니 관심 부탁드린다’고 쓰신 거예요. 엄마한테 난 아무렇지 않다고 했어요. 사실 엄마 목소리는 익숙해서인지 이상하게도 잘 들렸거든요.” 그러나 학교 친구들은 불러도 종종 대답 없는 그를 멀리했다. “일부러 자기네 말을 무시한다고 오해를 받은 거죠.”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그게 ‘신경성 난청’ 탓이란 걸 알게 됐다.
“중·고등학교 때 키는 컸는데 잘 안 들리니까 내 발로 교무실로 찾아가 맨 앞에 앉혀달라고 했어요. ‘난 괜찮다. 나만 당당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는 춤에 빠져들었다. 음악은 뒤에서 수군거리지도 않았고, 볼륨은 그가 들을 수 있는 최대치로 높이면 그만이었다. “남한테 밀리고 싶지 않아서 더 춤을 춘 것 같아요. 춤출 때 음악은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어릴 때부터 현진영·김완선 등 춤꾼들을 따라했던 그는 교내 댄싱부와 ‘스트릿(Street) 댄싱팀’에 들어갔다. 힙합을 좋아하는 그는 팝핀, 하우스 등 춤의 기술들을 쉽게 빨아들였다. 그는 “어머니가 집에서 라디오 음악을 자주 틀어놓아 몸에 리듬감이 밴 것 같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3년. 그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치어리더를 보게 됐다. “해맑게 웃는 얼굴과 열정적인 모습에 마음이 이끌렸다”던 그는 무작정 그 치어리더팀을 찾아가 오디션을 봤다. “동작 하나를 가르치면 금방 익혀서 그런지 일주일도 안 돼 장충체육관 여자농구 경기에 투입됐죠.”
한 선배는 “(초창기) 수현이가 음악이 끝나도 춤을 멈추지 않을 때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고 떠올렸는데, 배수현씨는 “하루에 5~6시간 연습하면 좀더 일찍 와서 몸 풀고, 안무 연습 끝나면 한 번 더 해보곤 했다”며 싱긋 웃었다. 어느새 치어팀 안무를 짜는 ‘코치’로 승격한 그는 겨울엔 프로농구 코트를 누빈다. 보아 <마이 네임>, 비욘세 <크레이지 러브>는 그가 수천 명의 농구팬들 앞에서 선보이는 솔로 댄싱곡이다. 그는 잠시 그룹 god 출신 손호영의 백댄서로 활동하기도 했다.
“제가 (SK 연고지인) 인천에서 자랐거든요. 지난해 두산이랑 할 때 SK가 9회말 만루홈런을 터트려 막판 뒤집기를 했는데 그럴 땐 나도 모르게 그물 잡고 흔들고. 정말 뭉클했죠. 몸이 힘들었던 것도 싹 가시고.” 2 대 7까지 지던 SK가 9회말 김재현의 만루포로 9 대 7 역전승을 거둔 경기를 그는 짜릿한 기억으로 담고 있었다.
화려한 듯 보이지만, 그는 종료 직전 3점슛이 터져 농구 코트에서 껑충껑충 뛰다 발목을 다치기도 하고, 갈비뼈에 담이 걸려 열흘간 누워 있기도 하고, 어깨 인대가 늘어나는 고충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선수들이 안타를 못 쳤을 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욕하는 팬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고 했다.
한 달 150만원 안팎을 번다는 그는 휴대전화 요금, 보험료, 용돈 등으로 30여만원을 뗀 나머지를 집에 드린다. 그렇게 치어리더를 하며 모은 돈으로 지난해 인천전문대 무용과를 졸업했다. 그건 꿈을 찾아가는 그의 신나는 여행이기도 하다.
“센터를 차려서 유명한 안무가가 되고 싶어요. 춤이 나에게 희망을 줬고, 경기장에서 내가 춤출 때 사람들이 박수치고 웃는 것을 보면 또 행복하거든요.”
눈 맞추고 말하세요, 누구와라도
자, 앞서 언급했듯, 그와 이야기하고 싶거든 뒤에서 부르거나 수군거리지 말 것. 내가 말할 게 있다고 뭔가 집중하고 있는 그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옆에서 얘기하지 말 것. 대신 그 앞에서 눈을 마주칠 것. 그가 그러하듯이 상대의 눈빛을 따라가며 귀를 기울여 들을 것.
하긴, “동정받는 게 싫다”던 그의 말처럼 이건 한쪽 귀가 불편하다는 그만을 위한 특별 배려라고 할 수 없다. 친구와, 내 사랑하는 사람과 말을 하고 싶을 때 해야 하는 지극히 평범한 대화법일 테니까.

(사진/ SK와이번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