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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섹스 리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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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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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돌아왔다. 1년 전 ‘시즌1’을 끝내면서 좀더 갈고닦아 때 되면 돌아오겠노라 했건만, 갈고닦지 못했다. 애무보다는 마사지가, 섹스보다는 수면이 절실한 ‘육아’의 나날을 보냈다. 이제 딸린 식구도 늘었으니 가급적 정숙하게 지내기로 맘먹었다. 한데 보건복지부 공무원부터 대안학교 선생님들까지 그동안 내가 썼던 나름의 ‘불후의 명작’ 기사들은 하나도 기억 못하고 “그 길게 편집됐던 칼럼, 이제 안 쓰세요?”라는 말로 돌아온 나를 맞았다. 내가 회사와 독자들과, 공동체에 기여할 길은 정녕 ‘오 마이 섹스’밖에 없단 말이냐. 그동안 이 칼럼을 통해 찧고 까불었던 수많은 말들이 나를 짓누른다. 그래, 나 지난 2월 설 연휴 때 한 번 하고 지금까지 못했다. 이러다가 추석 때나 겨우 할 것 같아서 파트너와 2사분기가 지나기 전에 꼭 하자고 손가락 걸었다. 그게 벌써 한달 전이다. 주중엔 언감생심이고, 주말이면 애 먹이고 씻기고 누이고… 기타 등등으로 별을 따기는커녕 하늘도 못 본다.

사정이 이러하니 장난감으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는 젖먹이를 떼어놓고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을 리 있겠는가. 등에 대고 애가 울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던데 왜 나는 지저귀는 새들이 다정하고 푸른 하늘이 아름다울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무실에 나오면 옆자리에는 석 달 전까지 20대였던 ‘쌔끈남’의 양기가 진동한다는 사실이다. 마른 땅에 단비가 스며든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복직 기념으로 회사 후배들과 영화 관람을 했다(업무의 연장이다). 하필 <밀양>이었고, 순진한 건지 순진한 척하는 건지 편집팀 임아무개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을 자기보다 나을 게 없어 보이는 사회팀 길아무개에게 물었다.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처럼 회사 사람들 뒷담화에 이어 세계 평화와 지구 온난화 걱정까지 두루 거친 뒤 정해진 수순대로 섹스 얘기로 넘어갔다. 임아무개를 궁금하게 한 문제의 장면은, 반쯤 정신 나간 여자 주인공이 하느님에 대한 반항심을 교회 장로에게 푸는 것이었는데, 말하자면 그를 꼬여 들판에서 응응하려다 불발로 끝난 장면으로, 장로님 왈 “하느님이 보고 계셔서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할 일을 미처 다 못해 미안하게 된 대목이다. 임아무개 질문 “전혀 마음에 없던 여자가 꼬인다고 그대로 넘어가는 게 가능해?”. 길아무개 응답. “어.”


그냥 여자가 아니라 젊고 이쁜 여자였지. 이때부터 나의 실존적 고민이 다시 시작된다. 왜 제러미 아이언스와 하고 싶은 연하녀는 많아도 메릴 스트립과 하고 싶은 연하남은 많지 않을까. 수천 년 누적된 남녀의 권력관계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이토록 깊은 흔적을 남긴 것이냔 말이다. 내 파트너가 앞으로 누릴 꽃시절이 몹시 샘났다(그래도 뭐 그동안 내가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쩝). 한편, 길아무개 역시 실존적 고민에 빠진다. ‘옆자리에서 양기가 진동한다’고 여자인 나는 쓸 수 있어도 ‘음기가 진동한다’고 남자인 자기가 쓰면 “이 머저리 변태 폭력배야” 돌 맞을 게 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정직한 섹스 칼럼을 쓸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음, 사실이다. 억울하면 너도 다음 생에 여자로 태어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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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오마이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