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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보사노바, 한 줄기 청량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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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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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비트와 멜로디를 친숙하게 승화한 마리사 몬테의 매력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그중에서도 진저리날 만큼 부러운 사람들이 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쓰는 사람들이다. 수십 권의 전문서적을 읽어야 알까 말까 한 내용을 지극히 일상적인 단어만 사용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그들을 보면, 동종 업계 종사자로서 고개가 절로 떨궈진다. 음악도 그와 다르지 않다. 어려운 음악은 많다. 그런 음악들 대부분은 빛나는 미학적 성취를 이룬다. 하나, 그뿐이다.

마리사 몬테에겐 낯선 노래도 친숙하게 들리게 하는 내공이 있다. 그는 명실공히 브라질을 대표하는 디바다.

아무리 훌륭한 논문일지라도 지극히 난해하다면 학자들 사이에서나 낑낑대며 읽힌다. 파격적 실험과 새로운 시도, 음악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음악일지라도 듣기에 썩 어렵다면 전문가와 극렬 마니아들 사이에서나 통용되다가 사라진다. 예를 들자면 라디오헤드의 1997년 음반 〈OK Computer〉가 대표적이다. 이 음반을 어떤 골수 음악 애호가들은 과대평가된 작품으로 일컫곤 한다. 이 음반에 담긴 사운드적 실험이 이미 그전에 영미 언더그라운드에서 다 끝났다며. 그러나 이 음반이 단순히 라디오헤드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9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꼽히는 이유는 단순히 그 실험성에만 있지 않다. 새로운 시도와 팝을 결합한, 역시 새로운 의미의 대중성 때문인 것이다. 아차, 오늘 얘기하려는 건 라디오헤드가 아닌데 삼천포로 빠졌다. 보사노바가 이번주 주제다.


<촌천 가는 기차>와 함께 한국 상륙

한국 대중음악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보사노바는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다. 그러나 그 시절 우리가 아는 보사노바라고는 고작해야 스탄 게츠와 주앙 질베르토의 〈Girl From Ipanema〉가 전부였으니 오늘날의 보사노바 열풍에 김현철이 미친 영향은 그리 없다 하겠다. 미약한 상륙이었으니만큼, 정착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한국에 보사노바가 본격적으로 정착할 수 있던 계기는 우선 90년대 중·후반의 월드뮤직 붐이다. 그리고 2000년대에 압구정과 홍익대 앞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라운지의 바람이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개봉과 함께 자연스럽게 쿠바 음악이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고, 이는 남미 전역의 음악으로 확산됐다. 그중에서도 보사노바는 월드뮤직 붐의 일등 공신이었다. 카에타노 벨로주,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같은 이의 작품은 트렌드를 지향하는 카페에서 노라 존스의 데뷔 음반과 함께 반드시 갖춰놓고 있어야 할 음반이 될 정도였으니. 이에 더해 보사노바 비트와 소릿결을 주로 사용하는 시부야케이 뮤지션들의 음악은 1960년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출발한 이 오래된 음악에 보톡스 주사를 놨다.

사실 보사노바가 듣기에는 편안해도 그리 간단한 음악은 아니다. 보사노바는 삼바와 재즈가 결합한 음악이다. 리듬이 곧 멜로디고, 멜로디가 곧 리듬인 음악이기도 하다. 멜로디와 리듬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연스레 어울렁 더울렁, 부드럽게 녹아든다. 흔히 음악을 들으면 박수를 치든, 헤드뱅을 하든 리듬에 맞춰 몸이 반응하는 법이다. 하지만 아무 보사노바 곡이나 틀어놓고 몸에 맞춰보시라.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따라서 연주하기도, 작곡하기도 어렵다. 전통적인 서양식 박자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더욱 어렵다. 난해한 비트를 가진 인도 음악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 복잡한 리듬에 있다. 그러나 보사노바는 그런 배후의 난해함을 더없이 팝적인 분위기로 승화한다. 어디에서나 무난하고, 어디에서나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까닭의 하나는 보사노바의 이 ‘숨은 낯섦‘일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친숙한 보사노바를 정작 본토의 사운드로 만날 기회는 극히 드문 게 우리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6월1일 LG아트센터에서 열렸던 마리사 몬테의 내한 공연은 귀한 경험이었다. 보사노바 뮤지션이라기보다는 MBP, 즉 브라질리안 팝가수인 그녀는 명실공히 지금의 브라질을 대표하는 디바다. 1989년 발매된 그녀의 데뷔 음반은 라이브 음반이었다. 이미 브라질 클럽가에서 입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벤트다. 1967년생, 우리 나이로 마흔이지만 ‘나이가 무색했다’라는 표현을 쓰면 보통 무대의 열정적인 에너지를 지칭하지만 그녀에겐 달랐다. 20대 후반이라 해도 믿어질 만큼 싱싱한 매력이 넘쳤던 것이다. 왜 파울로 코엘류가 브라질 여성을 주인공으로 <11분>을 썼을까, 왜 삼바 축제엔 매년 그리 사람이 넘칠까, 이런 의문이 단번에 날아갔다.

금요일 저녁의 피로를 날리다

최근작인 〈Infinito Particular〉(무한하고 사적인 것)와 〈Universo Ao Meu Redor〉(내 주위를 둘러싼 세상)의 수록곡을 중심으로 17년의 음악 생활 동안 만든 히트곡들을 두루두루 들려준 그녀의 무대에선, 시종일관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보사노바는 물론이고 삼바, 그리고 MPB 넘버까지, 마리사 몬테와 9인조 밴드는 관객을 간질였다가 때로는 손을 잡았다. 또 함께 박수치고 때로는 삼바 리듬에 맞춰 춤추기를 유도했다. 비록 고급 공연장에서 ‘여흥’을 즐기는 데 익숙지 못한 분위기 탓에, 실제로 그녀의 음악에 맞춰 춤춘 건 일부 외국인 관객들뿐이었지만. 왜 질베르토 질은 물론이고 류이치 사카모토, 필립 글라스 등 장르를 넘나드는 거장들이 그녀와 흔쾌히 함께 작업했는지 깨닫는 데는 공연 시작 뒤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마, 이날 연주한 그녀의 노래를 모두 알고 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낯선 노래들조차 친숙하게 들리게 하는 내공이 그녀에겐 있었다. 마리사 몬테의 음악, 마리사 몬테의 목소리가 이를 가능케 했다. 공연이 끝나고 역삼동 사거리로 나왔다. 이파네마 해변에서 낮잠이라도 한숨 잔 기분이었다. 금요일 저녁의 피로 따위, 생각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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