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혐오, 중혼, 변장, 훔쳐보기… 읽고 또 읽어도 새로운 <제인 에어>의 매력
▣ 태풍클럽 출판 편집자
똑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건 우울증 초기 증상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내게는 음악뿐 아니라 틈이 날 때마다 몇 번씩 읽고 또 읽는 책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읽은 책은 단연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다. 이유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하여튼 페이지마다 어떤 묘사가 나오는지를 외울 정도로 읽었어도 <제인 에어>에는 늘 새로운 구석이 있다.
언젠가 <제인 에어>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제인 에어 콤플렉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일단 외적으로는 잘생긴 남자를 멀리하고 까칠한 외모의 남자만 골라서 점찍는 것이며, 내적으로는 자신이 예쁘거나 화려하지는 않아도 누군가 진정한 내 모습을 알아봐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이다. 이렇게 근검소박한 자세도 환상이라면 환상이지만, 그래도 ‘신데렐라 콤플렉스’ 쪽보다는 훨씬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가. 나는 가끔 지인들에게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중 어느 쪽이 더 좋으냐고 물어보곤 했는데, 대답은 거의 반반이었던 것 같다. 응답자들의 성향은 뭐라 딱히 꼬집어 말할 순 없어도 각자 고른 책과 잘 어울렸다. 대개 겉으로는 현실주의자로 보이지만 자의식이 강하고 남몰래 꼬인 타입들은 <제인 에어>를 선호했고, 와일드하고 불안정해 보여도 알고 보면 중심이 확실히 잡힌 친구들은 <폭풍의 언덕>을 더 좋아했다. <폭풍의 언덕>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천지를 찢는 폭풍보다 강한 열정, 바로 그것이다. 그것 없이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인생. 그런데 <제인 에어>에 그런 열정이 전혀 없느냐? 그렇지는 않다. 로체스터의 제인에 대한 미친 열정, 로체스터의 아내 버사 메이슨의 귀기에 찬 열정, 제인의 친구 헬렌의 조용한 종교적 열정까지.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제정신 아닌 두 일가의 연대기 <폭풍의 언덕> 쪽보다 얌전한 고딕풍 로맨스 <제인 에어> 쪽이 훨씬 은밀하고 ‘변태적’이며 분석적이라는 데 있다. <폭풍의 언덕>의 열정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라면, <제인 에어> 속의 애정은 ‘되새겨보기’나 ‘훔쳐보기’에 가깝다. 그리고 로맨스가 절정에 치닫는 순간에야 두 주인공은 서로 감정을 털어놓고 그간의 상황을 서로의 시선으로 ‘복기’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인은 로체스터를 사모하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아주 못생기고 사실적인 흑백의 자화상을 그린다. 그러고 난 뒤엔 로체스터의 공공연한 결혼 상대로 소문난 미녀 잉그램의 화려한 원색 초상화를 그린다. 두 그림을 나란히 놓고 스스로 ‘정신 차리라’고 말하며 튼튼한 방어벽을 쌓아올리는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소설 속에서 보았던 그 어떤 여주인공보다도 특이했다. 또 로체스터는 어떤가?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끊임없이 훔쳐보고, 시험한다. 심지어 점쟁이 노파로 변장해 -사실 여간 황당한 설정이 아니다- 그녀의 마음속 비밀을 엿보려 하기까지 한다. 미친 아내 버사 메이슨 몰래 중혼하려 했다는 점은 제쳐두고 제인을 향한 관심의 표출 방식만 봐도, 이 남자 확실히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쨌든 <제인 에어>가 이렇게 기이한 인물들의 특이한 로맨스로만 끝나지 않는 것은 생존과 물질적 기반이라는 문제를 결코 잊지 않았던 작가의 현실성이다. 제인 에어와 샬럿 브론테가 살았던 19세기는 여자 혼자 몸으로 독립해 살기에 지금보다 훨씬 더 팍팍했다. 그리고 ‘혼자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작품 여기저기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진하게 배어 있다. 그럼에도 제인 에어는 내가 본 모든 소설 속 여주인공 중에서 가장 강하다. 그리고 그녀의 강함은 자신의 약점과 강점, 한계와 능력을 냉철하고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서 나온다. 인간은 마냥 착하게 살 수도 없고, 사회가 그를 그렇게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제인 에어파’인 우리는 그녀가 마냥 착하고 정직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인의 숙적인 리드 부인의 말대로 그녀가 ‘엉큼하고 반항적’이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정현)
언젠가 <제인 에어>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제인 에어 콤플렉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일단 외적으로는 잘생긴 남자를 멀리하고 까칠한 외모의 남자만 골라서 점찍는 것이며, 내적으로는 자신이 예쁘거나 화려하지는 않아도 누군가 진정한 내 모습을 알아봐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이다. 이렇게 근검소박한 자세도 환상이라면 환상이지만, 그래도 ‘신데렐라 콤플렉스’ 쪽보다는 훨씬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가. 나는 가끔 지인들에게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중 어느 쪽이 더 좋으냐고 물어보곤 했는데, 대답은 거의 반반이었던 것 같다. 응답자들의 성향은 뭐라 딱히 꼬집어 말할 순 없어도 각자 고른 책과 잘 어울렸다. 대개 겉으로는 현실주의자로 보이지만 자의식이 강하고 남몰래 꼬인 타입들은 <제인 에어>를 선호했고, 와일드하고 불안정해 보여도 알고 보면 중심이 확실히 잡힌 친구들은 <폭풍의 언덕>을 더 좋아했다. <폭풍의 언덕>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천지를 찢는 폭풍보다 강한 열정, 바로 그것이다. 그것 없이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인생. 그런데 <제인 에어>에 그런 열정이 전혀 없느냐? 그렇지는 않다. 로체스터의 제인에 대한 미친 열정, 로체스터의 아내 버사 메이슨의 귀기에 찬 열정, 제인의 친구 헬렌의 조용한 종교적 열정까지.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제정신 아닌 두 일가의 연대기 <폭풍의 언덕> 쪽보다 얌전한 고딕풍 로맨스 <제인 에어> 쪽이 훨씬 은밀하고 ‘변태적’이며 분석적이라는 데 있다. <폭풍의 언덕>의 열정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라면, <제인 에어> 속의 애정은 ‘되새겨보기’나 ‘훔쳐보기’에 가깝다. 그리고 로맨스가 절정에 치닫는 순간에야 두 주인공은 서로 감정을 털어놓고 그간의 상황을 서로의 시선으로 ‘복기’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인은 로체스터를 사모하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아주 못생기고 사실적인 흑백의 자화상을 그린다. 그러고 난 뒤엔 로체스터의 공공연한 결혼 상대로 소문난 미녀 잉그램의 화려한 원색 초상화를 그린다. 두 그림을 나란히 놓고 스스로 ‘정신 차리라’고 말하며 튼튼한 방어벽을 쌓아올리는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소설 속에서 보았던 그 어떤 여주인공보다도 특이했다. 또 로체스터는 어떤가?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끊임없이 훔쳐보고, 시험한다. 심지어 점쟁이 노파로 변장해 -사실 여간 황당한 설정이 아니다- 그녀의 마음속 비밀을 엿보려 하기까지 한다. 미친 아내 버사 메이슨 몰래 중혼하려 했다는 점은 제쳐두고 제인을 향한 관심의 표출 방식만 봐도, 이 남자 확실히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쨌든 <제인 에어>가 이렇게 기이한 인물들의 특이한 로맨스로만 끝나지 않는 것은 생존과 물질적 기반이라는 문제를 결코 잊지 않았던 작가의 현실성이다. 제인 에어와 샬럿 브론테가 살았던 19세기는 여자 혼자 몸으로 독립해 살기에 지금보다 훨씬 더 팍팍했다. 그리고 ‘혼자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작품 여기저기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진하게 배어 있다. 그럼에도 제인 에어는 내가 본 모든 소설 속 여주인공 중에서 가장 강하다. 그리고 그녀의 강함은 자신의 약점과 강점, 한계와 능력을 냉철하고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서 나온다. 인간은 마냥 착하게 살 수도 없고, 사회가 그를 그렇게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제인 에어파’인 우리는 그녀가 마냥 착하고 정직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인의 숙적인 리드 부인의 말대로 그녀가 ‘엉큼하고 반항적’이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