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스>에서 탄탄한 시나리오로 그려진 사드의 삶과 글쓰기, 사디즘의 근원
지금은 많이 쇠락했으나, 프랑스 문학사를 두고 만개한 꽃밭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섬세하기로 소문난 작가들의 존재가 마치 정원의 꽃들처럼 펼쳐져 있다는 뜻에서이다. 그런데 그 꽃밭의 한끝에 어둡고 음습한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리고 때로 그 동굴에서 꽃밭을 온통 헤쳐놓는 야수가 튀어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 동굴의 주인이 바로 사드(Sade)이다. 사실 프랑스 예술사에서 그만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가도 없다. 흔히 가학성 음란증의 원조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가 하면, 욕망의 발현을 통해 존재의 극한을 탐구한 용기있는 삶의 표본으로 추켜세워지기도 한다. 물론 실존인물 ‘도나시앵-알퐁스-프랑수아 드 사드’에게는 그 양쪽 요소가 모두 들어 있다.
정신병원에 갇히는 육순의 사드
1740년 파리의 한 대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마르키 드 사드’는 이런 신분을 나타내는 경칭으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사드 후작’이란 뜻이다) 격변의 삶을 살다 갔다. 봉건 왕조의 말기에 태어나 누구보다도 더 신분제사회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느 순간 귀족으로서의 우아하고 안락한 삶을 포기한다. 갑자기 특권계급의 위선적인 삶에 반기를 들고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의 자유주의는 주로 평민 지식인계급에서 배태된 계몽주의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계몽주의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상사회의 건설을 꿈꾸는 사상이었다면, 사드의 자유주의는 도덕과 문화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합리화·정당화하는 모든 권력의 가면을 벗기는 전복적 사유이다. 그래서였을까? 계몽주의가 사상적 도화선이 되어 폭발한 프랑스 대혁명의 성공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요주의 인물이 되어 체제 속에 편입되지 못한다. 오히려 변태적 성과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이유에서 그의 작품들은 새로운 체제 아래에서도 여전히 금기의 대상이자 탄압의 빌미가 된다.
이번에 새로 개봉된 영화 <퀼스>는 바로 그러한 시기의 사드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젊은 날의 사드는 의도적으로 지워져 있다. 이미 몇번의 감옥생활을 거친 육순의 노인 사드는 1801년 새로이 <쥘리에트>의 저작자임이 드러나 풍속을 교란한 죄명으로 샤렝턴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이 소설은 <쥐스틴>의 후속 작품인데, <쥐스틴>은 깊은 신앙심으로 정숙한 삶을 살지만 불행해지는 쥐스틴과 온갖 악덕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 쥘리에트, 이들 두 자매의 일생을 통해 당시의 사회체제와 도덕을 조롱하는 작품이었다. 그에 이어 음탕하기 짝이 없는 수도원장과 매음굴 여주인의 도움으로 악녀가 되어가는 쥘리에트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 <쥘리에트>다. 사드는 이러한 계속된 글쓰기를 통해 구체제하의 특권계급이나 새로운 체제의 권력자들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간의 얼굴 뒤에 도사린 위선을 폭로하고자 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처럼 외설과 폭력으로 가득 찬 글쓰기의 과격함에 불쾌해진 새로운 권력자들은 그를 정신병자로 만들어 사회에서 격리시키고자 한다. 동시에 교화의 예를 보임으로써 대중에게 자신들의 권력의 정당성을 홍보하고자 하였다. 그곳이 바로 샤렝턴 정신병원이었던 것이다. 이 병원을 맡고 있던 쿠르미에 신부는 정신병자들을 위한 심리치료를 도입할 정도로 개방적인 사람이었다. 고전주의와 계몽주의 시기를 거쳐 그 당시까지 정신병자들은 그저 사회를 위협하는 쓰레기에 불과한 존재로 간주되어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왔었다. 정신병원은 단순한 치료기관이 아니라 반사회적 위험인물들을 배제하고 가두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적이며 이해심 많은 원장과 부유한 가족들의 경제적 원조로 사드는 이런 병원 안에서도 여전히 넓은 독방에서 글을 쓰며 상대적인 호사를 누린다. 그것은 글쓰기를 통해서 그 자신의 욕구를 발산시킨다면 사드의 반사회적·반종교적 광기도 어느 정도 치유되리라는 쿠르미에 신부의 믿음 덕분이기도 했다. “성적 욕망이란 생명의 자유”
펜처럼 쓰이는 조류의 깃털, 즉 ‘퀼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위와 같은 사드의 글쓰기를 둘러싸고 진행된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필립 카우프만의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실존인물 사드라기보다는 그의 삶과 글쓰기를 둘러싸고 형성된 사디즘(sadism)이다. 게다가 미리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이 영화의 목표가 사드의 일생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감독은 변명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의 불경을 용서하시라. 나의 목적은 죽은 작가를 찬양하는 게 아니고, 다만 영화를 만드는 것뿐이었으므로….” 그러니 사드의 모습은 사디즘을 더 부각시킬 목적으로 픽션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원작자로서 상까지 수상한 한편의 희곡을 다시 시나리오로 각색한 더그 라이트의 애초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제 영화로 들어가보자.
사드는 세탁부 아가씨 마들렌을 통해 글을 빼돌려 익명으로 작품을 출간하고, 이 작품은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얻는다. 이에 화가 치민 나폴레옹과 측근의 권력자들은 치밀하게 그를 감시하고 억압할 요량으로 의사이자 고문기술자인 루이 콜라를 파견한다. 그는 16살의 나이어린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 성적 착취를 일삼는 자였다. ‘고상함과 결벽증으로 무장한 위선자들’의 한 상징인 그가 사드의 펜의 표적이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취임 축하 성격을 지닌 공연에서 사드의 주도하에 조롱거리가 된 콜라는 화가 치민 나머지 사드에게서 모든 글쓰기의 수단을 빼앗고 괴롭힌다. 하지만 이미 감옥의 창살을 통해 단두대로 사라져가는 무수한 군상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폭력과 광기를 뼈저리게 체험한 사드는 이에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저항한다. 하얀 시트에다 포도주로 글을 적는가 하면, 자신의 손끝을 찔러 그 피를 묻힌 글로 옷을 수놓고, 심지어는 억압의 상징인 감옥의 벽에다 대변으로 자유의 몸부림을 처발라 적기도 한다. 도덕과 종교와 문화로 스스로를 치장한 모든 권력에 맞서 반항아로서의 사드는 하나의 진실을 부르짖는다.
그것은 바로 욕망의 정직함이다. 특히 성적 욕망. 이 어찌할 수 없는 욕망의 얼굴은 사드가 병원 당국 몰래 빼돌리는 원고의 전령사인 하녀 마들렌이 한 병자의 편집증적 광기에 희생되어 죽자 그녀와 몸을 섞는 쿠르미에 신부의 환상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된다. 사실 사드의 성적 욕망이란 심장의 박동처럼 존재의 부인할 수 없는 근원, 곧 생명의 자유인 것이다. 이를 설파하는 사드의 글쓰기는 그래서 가차없다. 욕망의 극한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미성숙이거나 부정직한 삶이기 때문이다. 예술사에서 사디즘이 금기와 위반의 철학이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니체의 전복적 사유, 초현실주의자들의 광란, 존재와 생의 극한에 대한 바타이유의 모험 등등은 모두 이러한 사드적 전통을 갖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자신의 욕망에 대한 ‘부정직함’이란 권력과의 비겁한 타협일 뿐이다. 적어도 사드는 그런 점에서 불결한 영혼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다. 심지어는 현대의 고전이 되어버린 정신분석학에 끼친 영향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성적 합리주의자인 프로이트라면 그 순간에도 조화와 타협의 분별을 권하겠지만.
영화 밑바닥에 깔린 기독교식 이분법
어쨌거나 이 영화는 이러한 사드의 사디즘을 보여주는 데에 상당히 성공하고 있다. 우선 시나리오가 감탄할 정도로 탄탄하다. 조연을 포함해서 모든 인물들이 암시적 장치를 통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나무랄 데가 없다. 다만 하녀 역할의 케이트 윈슬럿은 잘못된 캐스팅이다. 그리고 욕망의 정직함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강박에 가까운 글쓰기의 자유, 이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조금 과장되었다. 하지만 그 사족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사드의 후손임을 말하려는 데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독교식의 선과 악이라는 서양 특유의 명백한 이분법적 사유가 바탕에 깔려 있는 이 영화를 우리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실 나는 이것이 더 궁금하다.
박철화/ 문학평론가

사진/사드의 글쓰기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퀼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디즘'이다.

이번에 새로 개봉된 영화 <퀼스>는 바로 그러한 시기의 사드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젊은 날의 사드는 의도적으로 지워져 있다. 이미 몇번의 감옥생활을 거친 육순의 노인 사드는 1801년 새로이 <쥘리에트>의 저작자임이 드러나 풍속을 교란한 죄명으로 샤렝턴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이 소설은 <쥐스틴>의 후속 작품인데, <쥐스틴>은 깊은 신앙심으로 정숙한 삶을 살지만 불행해지는 쥐스틴과 온갖 악덕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 쥘리에트, 이들 두 자매의 일생을 통해 당시의 사회체제와 도덕을 조롱하는 작품이었다. 그에 이어 음탕하기 짝이 없는 수도원장과 매음굴 여주인의 도움으로 악녀가 되어가는 쥘리에트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 <쥘리에트>다. 사드는 이러한 계속된 글쓰기를 통해 구체제하의 특권계급이나 새로운 체제의 권력자들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간의 얼굴 뒤에 도사린 위선을 폭로하고자 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처럼 외설과 폭력으로 가득 찬 글쓰기의 과격함에 불쾌해진 새로운 권력자들은 그를 정신병자로 만들어 사회에서 격리시키고자 한다. 동시에 교화의 예를 보임으로써 대중에게 자신들의 권력의 정당성을 홍보하고자 하였다. 그곳이 바로 샤렝턴 정신병원이었던 것이다. 이 병원을 맡고 있던 쿠르미에 신부는 정신병자들을 위한 심리치료를 도입할 정도로 개방적인 사람이었다. 고전주의와 계몽주의 시기를 거쳐 그 당시까지 정신병자들은 그저 사회를 위협하는 쓰레기에 불과한 존재로 간주되어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왔었다. 정신병원은 단순한 치료기관이 아니라 반사회적 위험인물들을 배제하고 가두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적이며 이해심 많은 원장과 부유한 가족들의 경제적 원조로 사드는 이런 병원 안에서도 여전히 넓은 독방에서 글을 쓰며 상대적인 호사를 누린다. 그것은 글쓰기를 통해서 그 자신의 욕구를 발산시킨다면 사드의 반사회적·반종교적 광기도 어느 정도 치유되리라는 쿠르미에 신부의 믿음 덕분이기도 했다. “성적 욕망이란 생명의 자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