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부상 후에도 통증 참고 몸 바쳐온 선수들, 쉬어야 산다!
▣ 송호진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dmzsong@hani.co.kr
“발목과 무릎이 참 아팠는데 붕대를 감고 2000년 아시안컵과 시드니올림픽을 나갔잖아요. 그래서 나에게 무엇이 돌아왔습니까?”
영국에서 귀국한 이동국(28·미들즈브러)을 최근 만났다. 그는 어린 나이에 들어간 대표팀에서 진통제까지 맞으며 출전을 강행한 7년 전 일을 잠시 떠올렸다. 그 말에는 ‘아팠을 때 조금만 날 쉬게 해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깔려 있었다. 한번 뒤틀린 무릎은 기어코 지난해 4월 독일월드컵을 갈망하던 그를 그라운드에 쓰러뜨리고 말았다. “오죽하면 신혼여행 가서도 운동을 했겠어요? 오로지 월드컵에만 매달렸는데….” 그는 “물론 대표팀에 가면 최선을 다하겠지만, 어릴 때처럼 붕대를 칭칭 감고 뛰고 싶진 않다”고 했다.
연골판 제거하고도 ‘알아서’ 재활훈련
김두현(25·성남)은 축구대표팀 체력검사에서 1·2위를 다투는 선수다.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슛은 그를 무섭게 만드는 무기다. 그런 그도 2001년 수원 삼성 입단 직후엔 전·후반을 소화하기 힘든 고통에 시달렸다. 전반이 끝나면 오른 다리 경련이 일어나는 현상 탓이었다. 최주영 대표팀 의무팀장은 2002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대표에 뽑힌 김두현의 다리를 보고 적잖이 놀랐던 기억을 되새겼다.
“왼 다리와 오른 다리 근육이 엄청 차이가 났어요. 이런 상태로 어떻게 뛰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였죠. 무릎을 끝까지 펴지 못했어요. 무릎을 뒤로 구부릴 때 내 손가락 하나를 밀어내지 못했죠. 우리끼리 이걸 ‘무릎이 잠겼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전반만 뛰어도 쥐가 났던 거죠.”
왜 그랬을까? 김두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오른 무릎 연골판 제거 수술을 받았다. 연골판이 찢어져 무릎 통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당시 김두현은 고무밴드를 발에 끼고 혼자 재활훈련을 하다 통증이 없어지는 듯하자 곧바로 경기에 나갔다.
최 팀장은 “수술 후 몇 개월 재활훈련을 잘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죠. 그때는 재활이란 인식도 미약했고. 아픈 걸 참고 뛰었겠죠. 두현이의 오른 다리는 그런 학원 축구 상황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김두현은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무릎 근력을 보강하는 훈련을 했고, 지금은 수비수들이 경계하는 중거리포를 오른 다리에 장착하게 됐다.
‘부상 투혼’은 정신력이 강했던 한국 축구를 대변하는 상징과도 같았다. 특히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찬사를 받은 스타들은 이동국처럼 소속 학교는 물론 청소년 대표팀, 성인 대표팀에 불려가 몸을 바쳐 뛰었다. 선수들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통증을 꾹 참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선수들의 몸엔 골병이 스며들었다.
김현철 대표팀 주치의는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한국인 3인방이 모두 수술대에 오른 것이 ‘부상 투혼’의 어두운 단면이라고 말한다. 박지성(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30·토트넘)는 무릎이 고장나 시즌 막판 하차했고, 팀 잔류와 이적 기로에 선 설기현(28·레딩)은 발목 수술을 받았다.
“한 달만 쉬면 1년을 버는 것인데…”
“박지성의 무릎은 어렸을 때부터 누적된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무릎이 삐었다고 하면 관절을 잡아주는 인대가 손상됐다는 것인데, 무릎 통증이 없어지면 다 치료된 줄 알고 경기에 나서죠. 통증이 사라졌다고 관절을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인대 기능이 회복됐다고 할 수 없는데 그걸 무시하고 뛰는 거죠. 문제가 생겼을 때 한 달을 쉬면 나중에 1년을 버는 것인데 말이죠.”
무릎 연골 수술은 보통 수술 3~5년 전 발생한 작은 문제가 커진 경우라고 한다. 김 주치의는 “박지성도 사소한 부상을 제대로 치료했다면 무릎 수술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황선홍의 경우엔 워낙 혹사를 당해 어디 한 군데 때문에 은퇴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깨, 무릎, 허벅지 뒤쪽 등 성한 곳이 없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사소한 부상을 사소하지 않다고 여기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힘줄에 염증이 생겼을 때 좀 운동하면 몸이 따뜻해져 통증이 잠시 사라지거든요. ‘괜찮네’ 하고 이걸 방치하고 뛰다 보면 힘줄이 딱딱해지다 결국 파열되는 일이 생기죠. 단순 타박상인지, 관절이 삔 건지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하죠. 피로를 푸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경기 이상 못하게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고등학교 대회를 보면 4~5일 계속 경기하잖아요. 피로가 누적돼 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뼈가 두꺼워지다 금이 가는데 그게 (수술을 받아야 하는) 피로골절로 연결됩니다.” 최근에도 고등학교 전국대회에서 한 학교가 10일 동안 6~7경기를 치르는 혹독한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김 주치의는 “아픔을 참고 뛰게 해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수부터 챙기는 ‘소년의 집’ 축구부
그런 점에서 지난 4월 중순 다른 선수와 접촉이 없었는데도 왼발 통증을 느껴 한 달 가까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복귀한 박주영도 조급증을 버릴 필요가 있다. 전민규 FC서울 트레이너는 “발등에 지속적인 자극을 받아 피로가 누적돼 뼈가 부으면서 통증이 왔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축구화에 스펀지를 넣어 충격을 완화시키고 있다. 재발하지 않도록 팀 훈련 외에도 꾸준히 관리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축구가 선수 보호 없이 눈앞 성적에만 급급하다면, 대학교가 고교 전국대회 상위 성적으로 체육 특기자를 뽑는 구태를 반복한다면 ‘부상 투혼’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엄마 아빠와 헤어진 아이들이 지내는 서울 ‘소년의 집’ 축구부(알로이시오초등학교) 운영은 이런 한국 축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곳은 기본기를 충실히 가르치고, 몸이 좋지 않거나 성적이 떨어지면 축구를 쉬게 한다. 그런데도 1975년 축구부 창단 이후 전국·서울시 대회에서 60여 차례 우승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 아빠와 같이 사는데도 “이곳이 아니면 안 된다”며 명문 사립학교에서 전학을 온 학생이 있다.
엔진도 무리하게 가동하면 꺼져버린다. ‘신형 엔진’이라 불린 박지성도 잠시 운행을 멈추지 않았는가? 선수의 엔진이 가열됐다면 멈춤 버튼을 눌러야 한다. 사고를 막기 위해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는 예방 구호는 한국 축구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연골판 제거하고도 ‘알아서’ 재활훈련

‘한국 축구여, 아프면 쉬시라!’ 무릎 수술을 받고 일시 귀국한 박지성 선수(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지난 5월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목발을 짚고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