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글 김대중
자이언트 주형아, 휴일인데 잘 쉬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나는 오늘 사무실에 일하러 나왔어.
우리가 재수했던 때가 벌써 15년 가까이 되었으니, 시간이 금방이지? 그해 1993년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섰고, 서태지의 <하여가>가 나왔고, 대학생들은 전두환·노태우 잡으러 간다고 난리였지만, 마지막 학력고사에 낙방한 우리는 새로운 입시제도에 적응하며 지루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지. 그렇게 우리는 졸업장도 없는 종합반 재수학원의 자연계 화학·생물반 동기가 되어, 두 번의 수능과 대학별 본고사를 준비했다. 우리가 다니던 학원에서는 본고사가 살길이라며 수능은 전혀 가르치치 않았는데, 당초의 예상과 달리 본고사를 치르겠다는 대학이 갈수록 줄어들었지. 첫 번째 수능을 엉망으로 치른 후, 입시에 대한 혼란과 두려움은 더욱 커졌고, 어디 발붙일 곳 마음 둘 곳 없던 너와 나는 학원을 떠나 신촌이나 이대 앞 같은 유흥가를 떠돌고 있었다. 참고서와 도시락이 든 가방을 멘 우리가 도시의 밤거리에서 할 만한 게 과연 뭐가 있었을까? 그저 오락실이나 비디오방을 전전하지 않았던가 싶다. 그때 봤던 영화 하나가 <블루 벨벳>이잖아. 난해한 영화임에도 난 그 영화가 담고 있는 것들을 몸으로 느끼지 않았나 싶어. 어쨌든 시간은 가고 같은 대학을 지원한 우리는, 입시 원서를 손에 들고 원서 접수를 하던 체육관에서 막판까지 눈치작전을 벌여가며 학과를 골라 공대에 입학했지.
욕망은 언제나 채우면 사라진다. 당장에야 더 이상의 선택이 없었지만, 입학하고 조금 다니다 보니 희망하던 삶과는 거리가 있음을 눈치챈 거지. 또다시 너와 나는 공대 앞 벤치에 앉아 어떻게 거기를 탈출할지 얘기는 나누면서 시간을 때우게 되었어. 그때 너는 나에게 미술을 권했고, 그걸 자극으로 나는 정말 미술대학에 다시 입학해버렸다. 그게 정말 탈출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우리 만남의 끝이었구나. 어떻게 그렇게 되어버렸네…. 경진이한테 네 얘기 조금 들었다. 변리사 시험 준비하다가, 자동차 회사에 입사했고, 결혼도 해서 아이도 생겼다고…. 이제는 새로운 고민들 속에 살고 있겠구나. 인무형은 미국에 갔고, 경진이는 화학 회사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재현이는 레지던트가 되었고, 땅꼬마는…또 다른 친구들은…. 사람들은 우리를 X세대라고 불렀는데, 희망에 찬 열린 미래의 X가 아니라 불안하고 갈팡질팡한 삶의 X는 아니었는지 싶다. 이제는 누구도 X세대를 말하지 않지만…. 너는 어떠니?

우리가 재수했던 때가 벌써 15년 가까이 되었으니, 시간이 금방이지? 그해 1993년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섰고, 서태지의 <하여가>가 나왔고, 대학생들은 전두환·노태우 잡으러 간다고 난리였지만, 마지막 학력고사에 낙방한 우리는 새로운 입시제도에 적응하며 지루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지. 그렇게 우리는 졸업장도 없는 종합반 재수학원의 자연계 화학·생물반 동기가 되어, 두 번의 수능과 대학별 본고사를 준비했다. 우리가 다니던 학원에서는 본고사가 살길이라며 수능은 전혀 가르치치 않았는데, 당초의 예상과 달리 본고사를 치르겠다는 대학이 갈수록 줄어들었지. 첫 번째 수능을 엉망으로 치른 후, 입시에 대한 혼란과 두려움은 더욱 커졌고, 어디 발붙일 곳 마음 둘 곳 없던 너와 나는 학원을 떠나 신촌이나 이대 앞 같은 유흥가를 떠돌고 있었다. 참고서와 도시락이 든 가방을 멘 우리가 도시의 밤거리에서 할 만한 게 과연 뭐가 있었을까? 그저 오락실이나 비디오방을 전전하지 않았던가 싶다. 그때 봤던 영화 하나가 <블루 벨벳>이잖아. 난해한 영화임에도 난 그 영화가 담고 있는 것들을 몸으로 느끼지 않았나 싶어. 어쨌든 시간은 가고 같은 대학을 지원한 우리는, 입시 원서를 손에 들고 원서 접수를 하던 체육관에서 막판까지 눈치작전을 벌여가며 학과를 골라 공대에 입학했지.
욕망은 언제나 채우면 사라진다. 당장에야 더 이상의 선택이 없었지만, 입학하고 조금 다니다 보니 희망하던 삶과는 거리가 있음을 눈치챈 거지. 또다시 너와 나는 공대 앞 벤치에 앉아 어떻게 거기를 탈출할지 얘기는 나누면서 시간을 때우게 되었어. 그때 너는 나에게 미술을 권했고, 그걸 자극으로 나는 정말 미술대학에 다시 입학해버렸다. 그게 정말 탈출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우리 만남의 끝이었구나. 어떻게 그렇게 되어버렸네…. 경진이한테 네 얘기 조금 들었다. 변리사 시험 준비하다가, 자동차 회사에 입사했고, 결혼도 해서 아이도 생겼다고…. 이제는 새로운 고민들 속에 살고 있겠구나. 인무형은 미국에 갔고, 경진이는 화학 회사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재현이는 레지던트가 되었고, 땅꼬마는…또 다른 친구들은…. 사람들은 우리를 X세대라고 불렀는데, 희망에 찬 열린 미래의 X가 아니라 불안하고 갈팡질팡한 삶의 X는 아니었는지 싶다. 이제는 누구도 X세대를 말하지 않지만…. 너는 어떠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