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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색깔 속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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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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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지은이 baseahn@korea.com

중고차 시장에서 좋은 차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시장 가격에 비해 가치가 낮은 차들만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커서다. 자신의 차가 결점이 없다면, 그래서 시장 시세로 팔기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중고차 시장에 차를 내놓지 않을 터. 이 현상을 경제 이론으로 설명한 학자가 있다. 미국의 조지 애컬로프 교수다. 그는 이와 같은 중고차 시장을 ‘레몬시장’이라고 불렀다. 레몬이란 ‘빛 좋은 개살구’라는 뜻. 이런 레몬시장에서는 부당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는 곧 손해를 보는 사람도 생긴다는 뜻이다. 사회 문제의 원인일 수 있고 엉뚱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그런데 이 레몬시장 이론은 중고차 시장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늘날 식품소비자들이 거의 매일 들르는 일반 식품매장도 전형적인 레몬시장이다. 첨가물 등 각종 유해물질 범벅인 정크푸드들, 그 해로운 식품으로 장식된 진열대. 그곳에 건강을 생각하고 만든 식품이 발 디딜 틈은 없다. 중고차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게 ‘잘못된 선택’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해괴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해괴한 일의 대표적인 사례로 ‘선글라스 다이어트’라는 것이 있다. 한때 일본에서 화제가 된 바 있는 신종 다이어트 기법이다. 관심이 있으시다고? 어렵지 않다. 음식을 먹을 때 항상 선글라스를 착용하시라. 다만, 선글라스가 좀 특이해야 한다. 렌즈가 반드시 파란색으로 물들여진 것일 것. 파란 렌즈를 통해 보이는 음식의 모습은 어떨까. 그렇다. 입 안에 고여 있던 침마저 바싹 마르게 하는, 도저히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이상한 물체의 모습일 것이다. 파란색은 원래 식욕을 감퇴시키는 색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식탐이 강한 사람이라도 몇 입 씹다가 수저를 놓을 게 뻔한 일.


생각해보면 이 선글라스 다이어트 기법은 여러모로 좋은 방법일 듯싶다. 비용이 그다지 들지 않을뿐더러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뭐니뭐니 해도 부작용이 없을 것이란 점이 매력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뜻 선택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뭔가 뒤가 켕기는 느낌이다. 왜일까?

우리가 평소 먹는 가공식품은 여러 방법으로 색깔이 위조되어 있다. 식욕을 억지로 자극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방법이 색소를 넣는 일이다. 타르색소, 캐러멜색소, 코치닐색소, 치자색소, 이산화티타늄, 동클로로필…. 아질산나트륨 같은 발색제도 이 대열에서 빠질 수 없다. 이들 물질의 유해성은 초등학생도 안다. 우리는 해로운 방법으로 눈을 속여 과식을 하는 셈이다. 그것이 문제가 되니 이번엔 이상한 안경의 힘으로 해결하려 한다. 결국 선글라스 다이어트는 우리 몸을 두 번 속이는 일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선글라스 다이어트 같은 볼썽사나운 수단이 우리 식생활을 오염시키지 못하게 하려면 식품시장을 하루빨리 레몬시장의 늪에서 구출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식품 원료 표기를 잘 살피면 된다. 이상한 물질명이 눈에 띄는 제품은 장바구니에 넣지 않는 것이다. “가장 좋은 조리법은 가급적 가공을 적게 하는 것입니다. 맛이 없다고 느끼면 배가 고프지 않다는 뜻이죠. 배가 고프지 않은데 굳이 먹을 필요가 있을까요?” 미국의 자연주의자 헬렌 니어링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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