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행일치’의 시즌2나 스핀오프 판이라 볼만한 SBS <웃찾사> ‘거침없이 킥킥킥’
▣ 안인용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nico@hani.co.kr
지난해 이맘때쯤, 무척이나 열광하던 코너가 있었다. ‘후랴호, 후랴’ ‘요 사사삽, 나나’ ‘자자, 아잉’으로 4차원 개그의 시작을 알린 SBS <웃찾사>의 ‘언행일치’였다. 웃음의 새로운 맥을 잡아주었던 ‘언행일치’의 삼인방 이용진·남명근·이진호가 지난 5월6일 새로운 코너로 돌아왔다. 코너 제목은 ‘거침없이 킥킥킥’. 이 코너 첫 회를 보면서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들이…, 돌아왔구나!”
“ㅠㅠ” “ㅋㅋㅋ” “버럭!” “상쾌”
코너 제목만 보면 요즘 한창 유행인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개그로 풀어낸 코너라고 짐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침없이 킥킥킥’의 방점은 ‘거침없이’가 아니라 ‘킥킥킥’에 찍힌다. 이 코너는 시골을 배경으로 3명의 초등학생 이용진·남명근·이진호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언행일치’도 그랬듯이 배경이나 캐릭터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몸짓과 몇 줄 안 되는 대사다. 이 코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를 종이 위에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ㅠㅠ(유유).” “ㅋㅋㅋ(킥킥킥).” “버럭!” “상쾌.” 이 코너는 채팅을 할 때나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너무 자주 써서 ‘안녕’만큼이나 익숙한 이모티콘식의 문자들을 대사로 쓰고 있다. 대사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팅 언어를 대사로 치면서 웃음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거침없이 킥킥킥’을 보고 있노라면 업그레이드판 ‘언행일치’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먼저 이용진·남명근·이진호의 역할과 구성이 비슷하다. 남명근이 이야기를 끌어가고 이용진과 이진호가 웃음점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과 서 있는 위치까지도 ‘언행일치’와 같다. 대사의 진행과 코너의 흐름도 그렇다. 의미 없는 감탄사형 대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이리 내”라고 하다가 갑자기 “안 먹어”라고 외치는 식의 변심 개그도 꾸준히 등장한다. 코너 중반 이후에 양세찬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추가되는 것 말고는 ‘언행일치’의 맥을 이어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옛날에 써먹은 개그를 또 쓰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꼭 그럴까? ‘거침없이 킥킥킥’을 ‘언행일치’의 시즌2나 스핀오프 판이라고 보면 어떨까?
드라마나 버라이어티쇼에는 이미 내용을 발전시켜가는 시즌제나 원작의 한 요소를 다른 이야기로 발전시키는 스핀오프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지 오래다. 개그에도 이런 개념이 조금씩 적용되고 있다. 최근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많은 사랑받았던 코너가 조금 다른 형태로 돌아오거나 하나의 독특한 캐릭터가 여러 코너에서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웃찾사> ‘퐁퐁퐁’을 보면 ‘놀아줘’가 떠오른다. 하나의 상황이 벌어지고 그 상황에 뜬금없이 똑같은 옷을 입은 여러 명의 캐릭터가 뛰어들어 결국 일을 그르치게 한다는 식의 설정도 그렇고, 캐릭터가 돌아가면서 정신없이 떠든다는 점도 그렇다. ‘놀아줘’와 ‘퐁퐁퐁’의 다리를 잇는 결정적인 캐릭터는 빡빡이 정용국이다. 독특한 말투와 바다에 띄운 배를 산으로 보내는 식의 개그는 ‘놀아줘’에 이어 ‘퐁퐁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코너는 죽어도 캐릭터는 살아있네
한국방송 <개그콘서트> ‘까다로운 변선생’에 변선생으로 등장하는 변기수를 보자. ‘오빠’에서 보여준 따발총 대사와 부산스러운 몸동작은 어느새 ‘원투 차차차’로 옮겨갔다. 그러더니 그 캐릭터 그대로 ‘까다로운 변선생’에 또다시 나타났다. 수다쟁이 변기수가 하나의 고정된 캐릭터로 변신해 그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코너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즌제와 스핀오프 얘기를 꺼낸 김에 굳이 따지고 들자면 극중 하나의 캐릭터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핀오프 형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착한 녀석들’에 등장하는 설인범 유세윤의 고향은 ‘봉숭아 학당’이다. ‘봉숭아 학당’에서 처음 선보였지만 계속된 편집으로 수난을 겪던 설인범 유세윤이 새로운 코너로 독립한 형식이다. 독립한 뒤 바로 편집돼 방송 중 방청객석 시위에 나서는 등 풍파를 겪기도 했지만 캐릭터를 코너로 확장시켰다는 점만큼은 박수쳐줄 만하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코너가 없어진다고 캐릭터까지 함께 없어지라는 법은 없다. 또 많은 사랑을 받은 코너가 시들해졌다고 영영 다시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충분히 다시 사랑받을 수 있는 코너와 캐릭터는 새 단장이나 변형을 통해 새로운 웃음을 줄 수 있다. 소재가 고갈됐다 싶으면 조금 쉬었다가 재충전해서 더 큰 웃음을 줄 수도 있다. 개그계에도 적극적인 방식의 시즌제와 스핀오프제가 도입됐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고고! 예술속으로’ 시즌2, 안 되겠니?
‘언행일치’의 시즌2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언행일치’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새 코너 ‘거침없이 킥킥킥’(위).‘까다로운 변선생’의 변기수도 수다스러운 캐릭터 하나로 여러 개의 코너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경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