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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앞치마 뒷이야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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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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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글 유승하

15년 전쯤일까 아무튼 이십대 시절의 일이다.
오래된 퀴퀴한 식당에서 회식이 있었는데 거기서 홍어회란 걸 첨 맞닥뜨렸다.
내가 아는 홍어회는 발갛게 물들여져서 매콤달콤새콤한 맛에 오돌오돌 씹는 맛이 더욱 즐거운 음식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커다란 접시에 나온 허연 홍어는
재래식 화장실의 순수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사정없이 쑤시는 게 아닌가
척척 입으로 가져가는 사람들. 보는 것조차 괴로운 엽기적인 음식이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입맛도 바뀌고…
어느덧 아가씨 때 즐기지 못했던 추어탕 감자탕 XX탕도 입덧과 임신을 거치며 묘한 입맛으로 돌려놓더니, 산초를 뭉텅뭉텅 퍼넣기도 하고
손바닥만한 돼지뼈를 이리저리 들고 뜯어먹어도…
그래도 그 홍어회의 고약한 냄새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삭히는 과정에서 절로 암모니아가 생긴다는 홍어회
요 며칠 전 꽉 채운 나이 사십에 갑작스레 그 암모니아 냄새가 그리워진다.
혼자 먹기에는 유쾌하지 않아 남편을 앉혀놓고 한두 젓가락 먹으니
쌉싸름한 냄새가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맛나게 먹고 있는데 고개 돌리고 딴청부리더니 이내 자리 뜨는 남편이 하는 말.
“셋째 가졌냐?”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미운 냄새는 다시 그리워진다.
“엄마 뭐 먹어?”
혼자 먹고 있는데 호기심에 달려든 아이들은 왔다가도 그 냄새에 코를 싸쥐고 도망을 간다.
달콤한 걸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인생이란 그저 달콤할 뿐 달고 맵고 쓰고 신맛을 넘어 이제 썩은 맛까지 즐기는 나는 홍어회에서 삭힌 인생의 그윽한 맛을 느낀다.

애들 재우고 탁주 한잔에 썩은 홍어회 먹는 맛이란…
“애들은 자라… 니들은 인생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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