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출판] 다시, 사막에 내려온 왕자

660
등록 : 2007-05-17 00:00 수정 : 2010-02-16 14:17

크게 작게

새로 번역돼 나온 <어린왕자>와 해설서 <어린왕자를 찾아서>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비밀을 가르쳐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누구나 제목과 줄거리 정도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읽지는 않은 책을 대충 ‘고전’이라 부른다. 앙트안 마리 로제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그런 측면에서 ‘고전 아닌 고전’으로 부를 만하다. 얼핏 단순해 보이면서도 세련된 스케치와 동화처럼 읽히는 은 줄거리, 사춘기를 전후로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본 기억이 있기 마련인 탓이다. 만약 아직까지 읽어보지 않았다면? 글쎄…, 기회는 언제고 있는 법이다.


애틋한 상념을 자극하는 유려한 문체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어린왕자>(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가 새로 번역돼 나왔다. 동시에 출간된, 옮긴이가 쓴 <어린왕자를 찾아서>란 해설서는 ‘추억의 세계’로 떠나는 나침반으로 삼을 만하다. 책장을 펼쳐 들면, 한동안 잊고 지내온 ‘촉촉한 감수성’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걸 느낄 수 있다.

“넌 나에게 아직은 수없이 많은 다른 어린아이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널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아. 너 역시 날 필요로 하지 않고. 나도 너에게는 수없이 많은 다른 여우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지.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난 네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고….”

얼핏 어른을 위한 우화쯤으로 읽히는 <어린왕자>는 신화처럼 살다 전설처럼 가버린 생텍쥐페리의 삶만큼 숱한 화제와 기록을 남겼다.영어와 프랑스어로 처음 나온 이 책은 지난 60여 년 세월 동안 무려 160개 나라 말로 옮겨져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최근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로 번역돼 나오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11개 공식언어 가운데 하나인 줄루족 언어로 처음 옮겨져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초판이 발행된 이래 출판된 모든 판본을 다 합치면 약 8천만 부가 팔린 것으로 알려진 이 책에 대해 출판사 쪽은 “저작권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의 번역본과 해적판 등 집계되지 않은 많은 판본들과 판매 기록을 보탠다면 1억 부를 육박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가운데 1946년 이래 프랑스에서 판매된 부수만 1100만 부에 이른다. 단일 책으로는 최고의 기록이라는데, <어린왕자>를 독점 출판하고 있는 갈리마르는 지금도 매년 평균 35만 부를 찍어낸단다.

“밤이 되거든 별들을 쳐다봐봐.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 있는지 가리켜 보일 수가 없어. 하지만 오히려 잘됐어. 아저씨에게 내 별은 많은 별들 중 어느 하나일 테니까. 그럼 아저씨는 어느 별을 바라보든 하나같이 다 즐거울 거야. 그 별들은 모두 다 아저씨에겐 친구일 거야.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내가 그 별들 중 하나에 살고 있을 테니까, 내가 그 별들 중 하나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에겐 모든 별들이 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야. 그러니까 아저씬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갖게 되는 거야!”

옮긴이의 표현대로 ‘프랑스 현대문학사에서 고독한 예외’로 평가받는 이 책을 생텍쥐페리가 착상하고 써낸 곳은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완성된 책 초판이 1943년 3월 출간된 것도 파리가 아니라 뉴욕이었고, 영어판이 먼저 나온 뒤 프랑스어판이 나중에 나왔다는 점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게다. 프랑스에서 <어린왕자>가 출간된 것은 미국 쪽 출판사와의 저작권 시비가 해결된 뒤인 1945년 11월이라는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인쇄용지 품귀 현상으로 실제 독자들의 손에 이 작은 책이 쥐어쥔 것은 1946년 4월에 이르러서였단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떠들썩하게 <어린왕자> 발간 60돌 기념행사를 연 것도 이때를 기점으로 삼았다는 게 옮긴이의 설명이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