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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DJ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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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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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김대중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 양재동에서 만화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DJ입니다.
선생님과의 한 가닥 인연을 핑계 삼아 이렇게 편지 드리게 되어, 영광이자 한편으로 누를 끼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눈치채셨겠지만, 그 인연이란 게 그저 이름이 같다는 것인데, 제가 태어났을 때 선생님께서 한창 어려운 상황이었는지, 이름 지어주신 분이 ‘선생님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라’는 뜻을 담아 그렇게 하였다고 하네요.
이름이란 특이해서 때로 곧 그 대상과 혼동되는 것처럼, 특별한 이름을 얻은 저는 성장기를 묘한 연대감과 동일시 속에서 보내지 않았던가 싶습니다. 거기에 더해, 전라도(본적)·부산(출생)·서울(성장)의 제 이주의 이력이 혹시나 지역 감정 해소와 국민 통합을 향한 한민족 일만 년 역사의 장대한 드라마의 최종회를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판타지에 스스로 빠지곤 하였지요. 게다가 제 이름의 아우라에 보내오는 주변의 반응을 볼라치면 결정론적 세계관의 유혹을 거부하기란 쉽잖은 일이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환상은 대입 시험이나 취직과 같은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다시 소환되어 운명을 거부하고 저 정처 없이 길 잃고 헤매는 양떼의 일원이 되고야 만 제 깜냥에 스스로 탄식하게 하기도 하였고요. 그럴 때면 제 앞길을 평탄케 하신 선생님의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송구스럽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가장 송구스러웠던 일은, 제가 군에 있던 1997년 겨을, 그러니까 97년 대선 당일에 벌어졌지 뭡니까. 우리의 연대감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선생님 이름 밑에 도장 ‘꽝’ 찍었어야 했겠지만, 제 손은 이미 투표 용지 저 끝 흰 여백에 꾸욱 힘을 주고 있더군요.
그날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초겨울의 나른한 햇빛이 스스로를 초월적 존재로서 인식하게 하여 실존적 깨달음에 도달하게 하였다고 하면, 조금은 그날의 송구함이 덜할 수 있을까요. 어쨌든 한순간 인간사가 왠지 하찮게 보였고, 부대로 얼른 복귀하여 아직 얼기 전의 운동장에서 부대원들과 신나게 뽈을 찼던 것 같습니다.

한데 웬걸!!! 선생님께서 제 한 표 따윈 코 푼 휴지, 똥종이도 안 된다는 듯, 쉬이 대통령에 당선되셨고, 이후 남북 정상회담, 노벨평화상 수상의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하셨으니, 88올림픽 금메달 3관왕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요. 처음에는 왠지 ‘줬다 빼앗기냐!’하는 묘한 질투심이 들더니, 이내 자포자기로, 다시 심적 평화로, 마침내는 해방감과 함께 새로운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覺!


……

유럽의 어느 언어학자의 말처럼, 이름과 그 대상은 별 상관이 없는 것이겠죠. 그 깨달음 이후 저는 좋아하는 만화 일을 하며, 한 명의 인간으로서 본분으로 돌아온 충만감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아직도 그 이름에 목숨 건 어리석은 민중들이 있다는 것인데, 선생님과 저의 이 초연함에 대해 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는 건 어떨는지요?

- 말죽거리에서 DJ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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