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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닮았다! ‘그’ 회장님과 ‘이’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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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07 00:00 수정 : 2010-02-0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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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회장은 <웃찾사> ‘회장님의 방침’의 회장님을 완벽 재연한 걸까

▣ 안인용 기자nico@hani.co.kr

과묵하신 줄로만 알았던 ‘그’ 회장님께서 이번에 제대로 웃겨주셨다. ‘그’ 회장님의 방침 하나 때문에 신문과 TV 뉴스가 연일 웃음바다다. 여기서 ‘그’ 회장님의 방침이라 함은 SBS <웃찾사>에서 방송되고 있는 인기 개그 코너 ‘회장님의 방침’이 아니라 그보다 더 재미있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그’ 회장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님의 방침을 말한다. 최근 우리에게 신선한 웃음을 전해주고 있는 ‘그’ 회장님의 방침은 공교롭게도 <웃찾사> ‘회장님의 방침’과 참 많이 닮았다.

“그건 바로 회장님의 방침일세!”

‘그’회장님 사건으로 덩달아 화제가 되고 있는 <웃찾사> ‘회장님의 방침’. 이 코너는 본격 기업 개그를 다루면서 기업 내의 위계질서와 ‘회장님’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권위를 풍자한다.


첫 번째 공통점은 회장님의 독특한 취향과 과격한 취미생활이다. <웃찾사> ‘회장님의 방침’은 거대한 그림자로 상징되는 묵직한 인물이지만 사실 그 회장님, 알고 보면 취향 한번 독특하시다. 회장님은 개그맨 심형래와 관심1촌이시며 집에서 일하는 파출부 아주머니들을 피겨스케이팅 대회에 내보내 금메달을 따오라고 독려하신다. 직원들에게는 휴가를 구내식당으로 가라고 하시며 시체놀이와 숨박꼭질도 즐겨하신다. 회장님은 말장난에도 일가견이 있으셔서 웬만한 단어를 들으면 쉽게 넘기는 법이 없다. 회장님이 사는 동네는 압구정동이 아닌 냄비우동 유머일번지이고 직원들이 출장을 갈 때는 기차를 타기 보다 가르마를 타고 가는 것을 좋아한다. 또 회장님은 먹는 것 중에 욕을 가장 좋아하시며 뭐든지 위험천만한 것을 즐기신다. 회장님은 직원들에게 이런 과격한 방침을 내린다. 중·고딩에게는 “니들이 TV 볼 때냐?”, 재수생에게는 “이번엔 될 것 같냐?”, 전국의 소녀팬들에게는 “나는 동방신기가 싫어요!”를 외치라는 방침이 바로 그것이다. 회장님은 올드 개그와 몸 개그도 아끼신다. 그래서 회장님은 직원들에게 영구 흉내를 내라거나 그 옛날 디스코텍에서 유행했던 동작을 살짝 변형한 춤을 추라는 방침을 내리신다.

‘그’ 회장님도 마찬가지다. 학생 때부터 복싱을 좋아하셨다는 ‘그’ 회장님은 복싱 애호가의 면모를 ‘그런’ 방침을 통해 내보였다. 여기서 ‘그런’이라 함은 아들이 맞고 오면 바로 가서 남자답게 다시 때려주라는 방침을 말한다. 위험천만하고 과격하며 스릴 넘치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점에서 ‘그’ 회장님과 ‘회장님의 방침’의 회장님은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신다. ‘그’ 회장님은 올드 개그를 좋아하는 회장님에게 뒤질세라 역시 복고풍 소품을 즐겨 사용하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가 주장하는 진술에서 나오고 있는 낱말을 살펴보자. 공사현장, 가죽장갑, 쇠파이프, 별이 두개 달린 모자 등 모두 1970~80년대 신파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그 복고의 대명사이자 상징이 아닌가.

두 번째 공통점은 ‘회장님의 방침이 곧 법이다’라는 회사의 사훈이다. 증권회사인 이 회사의 말 부장(김용석)과 김 대리(김용현)는 회장님의 방침에 불만이 많다. “증권회사에서 이런 걸 왜 합니까?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라고 따져보지만 사장님(현병수)이 한마디만 하면 납작 엎드린다. “그건 바로 회장님의 방침일세!” 말 부장과 김 대리, 김 과장(김태환)까지 회장님의 방침에 반항이라도 할라치면 사장님은 또다시 일갈하신다. “잘리면 갈 데가 있습니까, 월세는 어떻게 할 겁니까!” 잘리는 게 호환마마보다 더 두려운 월급쟁이에게 이보다 더 공포스러운 얘기는 없다. ‘그’ 회장님의 회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그’ 회장님의 과격한 방침 때문에 월급쟁이 경호원들은 북창동 술집으로 출동했고 ‘그’ 회장님이 경영하는 회사의 홍보팀 직원들은 ‘그’ 회장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A4지 10장에 담아 보도자료라고 돌리기까지 했다.

‘회장님’이란 이름의 권위가 웃음거리로

‘회장님의 방침’의 주력 웃음 코드는 회장님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권위가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회장님의 방침’의 회장님이 그렇고 회장님의 사모님인 문화방송 <개그야>의 ‘사모님’도 그랬다. 보통 ‘삐리리님’이라고 부르는, 사회적·경제적 위치와 위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 높으신 분들이 자신들의 유치함이나 싼 티를 드러낼 때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고 시원하게 웃게 된다. ‘회장님의 방침’은 그 통쾌한 웃음의 코드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코너다. 무턱대고 충성하는 직원들도 웃음에 한몫한다. 회장님의 방침이 얼마나 어이없는지 매번 몸을 던져 보여주는 사장님 이하 직원들에게서는 풍자 개그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 회장님 사건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0.0001%(0이 몇 개나 필요한지 헤아리기 어렵다)인 줄 알았던 그 높으신 회장님이 보여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막가파 개그는 온 국민에게 “쟤들도 어쩔 수 없구나”라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알고 보면 ‘그’ 회장님, 그 누구보다 더 개그를 사랑하고 <웃찾사> ‘회장님의 방침’의 개그 코드를 완벽하게 분석한 ‘재계의 X맨’이 아닐까? ‘그’ 회장님을 <웃찾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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