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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초등학교 4학년때 같은반, 하굣길도 같았던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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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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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글 김대중

안녕, 친구야. 난 이제 네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는구나. 그래도 내가 너를 기억하는 건, 아마도 그날 일 때문이겠지. 너는 기억 못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인생의 굴욕, 베스트 3종세트’중의 하나 정도 되는 일이라… 전혀 감도 안 온다고?!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 본인께서 현재, 누군가 잡아다가 ‘오대수’마냥 15년 동안 군만두만 넣어주며 <악행의 자서전>이라도 쓰게 할 정도로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있지는 못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게 1984년 어느 날이었지…

그 해 우리 가족은 다소간의 상대적 빈곤함 속에서 생활하던 상황이었어. 부모님은 여름에는 문래동 청과물 시장에 나가 과일을 떼어다 잘 안 될 법한 낙성대 근처 어느 연립 주택 앞에서 돗자리를 펴놓았고, 겨울엔 낮동안 준비한 밀가루 반죽을 실은 리어카를 끌고 나가 역시 잘 안 될 법한 봉천 사거리 어느 모퉁이에서 내가 먹어보아도 썩 안 당기는 호떡을 파셨더랬다. 우리 가족은 어느 단독 주택의 차고를 세 얻어 살았는데, 앵글을 짜 침대를 만들고 화장실이 없어 멀리 공중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던, 그건 초딩 4학년 소년에게는 감추고 싶은 ‘나만의 비밀’이었던 것이지. 그리고 그게 하굣길이 같았던 너와 한 번도 같이 하교하지 않은 이유였다. 수업이 끝나면 나름대로 시추에이션을 만들고, 타이밍을 조절하고, 것도 모자라 다른 우회로를 택해 돌아오곤 했지. 그렇게 그날도 무사 귀환을 자축하며 요강에 편하게 일을 보던 순간,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대중아, 뭐 해?”


순간 나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고, 셔터문 환풍구 구멍 사이로 보이는 너의 눈동자…. 내 머릿속에선 핵폭탄이 폭발하고, 그렇게 너의 호기심은 내 뒤를 밟아 판도라의 상자, ‘이우진의 사진첩’을 열게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 순간의 ‘충격과 공포’때문인지 이후의 일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으니, 과연 내가 어떻게 너의 얼굴을 보며 초딩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걸까….

하지만 이제 돌이켜보니, 그 강력한 굴욕 사건이 이후 인생의 오만 가지 쪽팔림을 견디며 살게 해 준 버팀목이었다면, 좀 웃길런가? 헤헤헤….

여튼 너의 삶도 꿋꿋하길 기원한다.─!

2007년 4월 13일 DJ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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