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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제주도도 두근두근, 북녘의 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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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0 00:00 수정 : 2010-02-0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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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국내에서 전지훈련 계획 밝힌 북한 청소년 축구 대표팀

▣ 신명철 <스포츠 2.0> 편집위원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북-미 관계가 풀리면서 북한 핵실험 이후 꽉 막혔던 남북 교류도 봄기운을 맞고 있다. 스포츠계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대한축구협회는 17살 이하 북한 청소년 축구 대표팀이 3월20일 입국해 한 달 동안 국내에서 전지훈련을 한다고 지난 5일 밝혔다. 17살 이하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는 오는 8월 한국에서 열린다. 1985년 창설돼 2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이번부터 대회 이름이 ‘FIFA(국제축구연맹) U-17 월드컵’으로 바뀐다. 그만큼 대회의 위상이 높아졌다. 출전국이 종전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었고, 2라운드 진출국도 종전 8개국에서 16개국으로 증가했다.

‘코리아’팀의 제2의 중흥기 예고


아시아에서는 개최국인 한국을 비롯해 지난해 16살 이하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북한과 일본, 타지키스탄, 시리아가 출전한다. 나머지 출전국은 대부분 이달 안에 가려지고 5개국이 본선에 오르는 남미 예선전은 4월에 벌어진다. 축구팬들에게는 2003년 핀란드 대회가 기억에 생생할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을 치르고 있는 올림픽 대표팀의 주공격수 양동현(21·울산 현대)이 본선에서 활약했고, 미국의 프레디 아두(18·레알 솔트레이크)가 ‘축구 신동’이라며 떠들썩했던 대회다. 북한은 2005년 페루 대회에서 8강에 올랐다. 한국은 1987년 캐나다 대회에서 8강에 오른 적이 있는데, 노정윤·신태용·이태홍·서정원 등이 활약했다. 서정원(37·SV 리트)은 아직도 현역으로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북녁 신드롬’을 불러온 북한 여성 응원단이 2003년 8월 대구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북쪽 선수단의 경기를 보며 열광적으로 응원을 하고 있다. ‘미녀 응원단’은 남북 체육교류의 또 다른 상징이다.

북한 축구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8강),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8강)을 끝으로 세계 규모 성인 대회에서는 자취를 감췄지만, 1991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20살 이하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에는 남북 단일(유일)팀 ‘코리아’로 출전해 조별 리그에서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잡고 8강에 오르며 나름대로 성적을 남겼다. 그리고 올해 열리는 17살 이하와 20살 이하 FIFA 월드컵(6월30일~7월22일, 캐나다)에 동시에 출전하며 제2의 중흥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번 북한 청소년 축구 대표팀의 국내 전지훈련은 선수단 규모에서는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와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보다는 작지만 국내에 머무는 기간은 두 대회보다 길다.

남북 스포츠 교류 과정에서 이번 북한 선수단의 전지훈련이 갖는 의미는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공식 대회 출전이 아니고 훈련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방식으로 교류하고 협력하다 보면, 남북 스포츠 교류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 경기대회, 올림픽 등 국제 종합경기대회 단일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991년 탁구와 20살 이하 청소년 축구의 단일팀 구성은 전해에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열린 ‘남북 통일축구’의 성공적인 개최에 힘을 받아 이뤄졌다. ‘남북 통일축구’는 1945년 남북 분단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이뤄진 남북 스포츠 교류의 마당이었던 1990년 베이징 아시아 경기대회 직전 전격적으로 발표됐다.

“남조선 기자가 준 선물 받았대요”

1990년 베이징 대회는 북한이 1982년 뉴델리 대회 이후 1986년 서울 대회를 건너뛰고 출전하는 대회이기도 했고, 이웃이자 혈맹인 중국에서 벌어지는 대회여서 대규모 응원단을 보냈다.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왔다는 북한 응원단은 경기장 곳곳에서 한국 응원단과 만났다. 그때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베이징 대회가 막바지에 접어든 어느 날 남북 경기인 사이에 교류가 비교적 활발했던 유도에서 조그만 연회가 마련됐다. 아시아 경기대회 선수촌 근처의 북한이 운영하는 ‘류경식당’에서 열린 모임은 남북 양쪽의 선수, 임원, 기자 그리고 북한 응원단 등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북한 응원단 가운데에는 평양음악무용대학, 청진사범대 등에 다니는 여대생들도 있었다. 평양음악무용대학 학생들은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을 통해 남쪽에도 꽤 알려졌듯이 미모가 뛰어났다. 어찌어찌해서 얼굴이 고운 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 없어 목에 거는 볼펜을 학생에게 줬다. 그런데 잠시 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선물을 받지 못한 학생이 지도교수인 듯한 남성에게 ‘고자질’을 한 것이다.

“저 언니가 남조선 기자가 주는 선물을 받았대요.” 언니의 미모에 밀려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샘이 단단히 난 눈치였다. ‘룡성맥주’도 한두 잔씩 돌고 왁자지껄 떠들썩하며 좋던 주변 분위기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혹시나 선물을 받은 학생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러나 지도교수인 듯한 남성은 “선물 받은 게 뭐이 어드래서”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게 아닌가. 고자질한 학생은 머쓱해졌고 옆에 있던 다른 기자가 그 학생에게 같은 선물을 주면서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다. 그때는 질투도 하고 새침도 떠는 나이였지만, 이제는 능력 있는 무대 예술인이 됐거나 아이를 하나둘 둔 평범한 주부가 됐을 북한 학생들에 대한 기억이 새삼스럽다.

남쪽에서 따뜻한 전지훈련하길

베이징 대회에서는 남북 양쪽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했기 때문에 이런 만남뿐만 아니라 종목별로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뤄졌다. 비록 남북 단일팀은 아니었지만 제3의 나라와 남북이 경기를 치르면, 심정적으로 거의 단일팀이 돼 서로를 격려했다. 체조 이단평행봉의 세계적인 선수 김광숙에 대한 편파 판정 문제를 놓고 북쪽 지도원과 남쪽 기자가 한목소리로 중국 쪽을 성토하기도 했다.

북한 17살 이하 청소년 축구 대표팀은 서귀포를 비롯해 몇 군데에서 적응훈련을 하고, 평가전도 두 차례 열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에 출전하는 북한 청소년 대표선수들은 베이징 아시아 경기대회가 벌어진 1990년 이후에 태어났다. 북한 청소년들이 남녘 동포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전지훈련을 잘 마치고, 8월에 벌어지는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

새롭게 선보이는 ‘스포츠 On’은 화려한 경기장의 뒤안길에 묻힌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스포츠 칼럼입니다. 신명철 <스포츠 2.0> 편집위원과 송호진 <한겨레> 스포츠팀 기자가 번갈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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