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인터넷 도박, 족쇄가 없다

350
등록 : 2001-03-13 00:00 수정 :

크게 작게

데이터 내용 파악 어렵고 게임과의 경계 모호… 국가별 감시 장치 취약해 사기도박도 속수무책

인터넷 도박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그 속성상 확실히 파악되고 있지는 않지만 대략 연 1천억달러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100조원. 이는 라스베이거스의 1년 매출액인 50억달러의 스무배나 되는 천문학적인 돈이다. 지금은 약 1천개 정도의 인터넷 도박 사이트가 존재한다. 미국에는 1961년에 유선법이 제정돼 유선을 이용하는 도박에 관련된 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도박 사이트는 국내법을 피해 규제가 허술한 나라에 개설돼 있는 실정이다. 지난 1995년 설립된 미국 최초의 합법적인 인터넷 도박회사는 지금까지 초고속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후 이에 고무된 많은 합법적인 도박 사이트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항상 불법과 적법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18명의 도박 사이트 운영자가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인터넷 도박도 일종의 전자상거래로 볼 때 이 치열한 경쟁에서 손님을 끌어모으려면 뭔가 자극적인 아이템이 필요한 것이다.

부정한 재산의 돈세탁소로 활용되기도

지금의 폭발적인 인터넷 사이트와 사용자의 증가로 볼 때 한정된 인력으로 이 모든 것을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도박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사업이 될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도박과 달리 인터넷 도박의 문제는 여러 면에서 그 차원을 달리한다. 불법적인 인터넷 도박을 추적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그 안에서 오가는 데이터의 내용을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는 기술적인 한계에 있다. 통신선로를 막고서 그 위를 오가는 모든 패킷을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인터넷 도박과 인터넷 게임을 구별할 수 있는 기존이 아주 모호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교양강좌를 인터넷 도박과 물리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구별할 방법은 없다. 단순한 0과 1의 아날로그 신호만 통신선로를 부지런히 오갈 뿐이다. 인터넷 도박에 쓰이는 베팅용 칩이나 사이버 교양강좌에서 올리는 질문이나 모두 다 0과 1, 이 두 종류의 비트로만 이루어져 있다. 또한 도박 참여자에게 주는 배당금이 온라인 은행계좌로 바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 해당은행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 돈이 도박 배당금인지 아닌지를 알 길이 없다.

인터넷 도박은 범죄조직이나 부정한 재산의 돈세탁에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터넷 도박을 통하면 1분 내에 수십만달러의 돈을 거의 완벽하게 세탁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도박에는 그것이 정당한 절차와 배당의 도박인지 아니면 사기 도박인지의 여부도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화면에 보여주는 내 카드의 패는 사실상 카지노판에 놓여진 종이카드와는 전혀 다르다. 만일 운영자가 작심을 한다면 아주 쉽게 카드 바꿔치기가 가능하다. 다르게 말하면 특정한 사람에게 계속해서 에이스 포커를 선사할 수 있으며 그것을 다른 참여자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때로는 정해진 상금을 주지 않고 돈만 챙겨서 도망가버리기도 매우 쉽다. 흔히 보는 인터넷 쇼핑몰 사기와 같다고 보면 된다. 도박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나 액수에 제한이 없으므로 훨씬 판이 커질 수 있다. 또 개장시간과 폐장시간이 따로 없이 연중 무휴로 열린다. 예를 들면 인터넷 도박에는 뉴스에 보도된 대로 내국인 전용 카지노에 자리를 차지하려고 아침부터 긴 줄을 이루거나, 테이블에서 억지로 버틸 필요가 없다. 연구에 의하면 인터넷 도박은 전통적인 도박에 비해서 훨씬 더 중독성이 강하다. 초단타 사이버 주식거래가 가지는 중독성은 약한 정도의 인터넷 도박중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현재 인터넷 범죄를 찾아내는 일은 감시인력을 통한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그 전형적인 절차는 어떤 불법적인 거래를 하는, 예를 들어 국제적인 마약거래를 한다고 의심되는 사람의 전자우편을 집중적으로 추적하는 일로부터 수사가 진행된다. 즉 인터넷 수사도 통신망 감시로부터가 아니라 전통적인 탐문수사나 제보로 시작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반인들에게까지 공개된 상당한 수준의 암호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전자우편 가로채기와 같은 방법의 비밀수사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PGP와 같은 암호화 도구를 사용하여 자료를 주고받거나 메일을 교환한다면 제3자가 그것을 깨서 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몇년 전 미 법무부에서 PGP 암호기술을 인터넷에 공개한 사람을 처벌하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개인적인 암호화 기법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암호화 도구는 정부당국만이 깰 수 있는 특정한 암호기법으로 제한하자는 시도도 있었지만 대중의 거센 저항을 받고 흐지부지되었다. 여하간 인터넷 도박을 자동적으로 탐색추적하는 기술적인 방법은 없다. 이는 인터넷으로 컴퓨터 바이러스가 옮겨다니지 못하도록 네트워크에 방충망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시도에 비유할 수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그 코드 자체만으로는 그것이 해악을 끼치는 것인지 판별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방충망 프로그램은 별 기대되지 않는다. 다른 한 가지 대안은 법안을 통하여 공인된 몇 가지 방법만 사용되도록 강제하는 것인데 이것도 그렇게 가능성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철저한 도메인 관리… 기술·제도적 대처 절실

사진/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자체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인터넷도박위원회 홈페이지.
인터넷 도박이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국경을 초월하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 규제를 한다고만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법적인 인터넷 도박에 대해서는 범국가적인 협조가 필요하지만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자국의 규제원칙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인터넷 도박은 엄청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손쉬운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기술적인 고려가 따르지 못하는 공허한 법률만을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외국에서는 벌써 인터넷 도박에 따른 다양한 법률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99년에 인터넷 도박 규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였으며 스포츠에 대한 도박규제법이 이미 1992년에 공표 되었다.

불법적인 인터넷 도박에 대하여 미국이 표방하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불법적인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제공한 나라에 대한 경제보복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이트에 대한 IP 주소를 인터넷 도메인 관리회사를 통하여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현재 전체 인터넷 주소는 특정한 몇개의 기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기관을 통해서 불법 사이트를 관련 국가의 인터넷 도메인 관리기관에 알려주고 그들 국가간에 협조가 잘 된다면 영원히 인터넷 공간에서 제거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점점 인터넷의 관리가 공공기관에서 민간 협의체로 이관되는 시점에서 국가주도의 이런 일이 효율적인지는 의문이 남아 있다. 현재는 ICANN이라는 민간협의체가 도메인 이름과 IP지정을 관장하고 있다.

현실적인 방책은 인터넷 도박 운영자, 서비스 업자, 인터넷 도박 광고를 실어주는 사이트, 인터넷 도박의 금융을 관리해주는 은행, 인터넷 도박 참가자 등을 먼저 등록하게 하여 관리하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안전한(?) 도박 사이트를 선별해 주거나 자체 협의체를 만들어 검증하게 할 수도 있다. 현재는 인터넷도박위원회(Internet Gambling Commission, www.internetcommission.com)가 각종 도박 사이트를 자체적으로 감사하고 있다. 최근 이들은 125개의 불법 사이트를 찾아낸 상황이다. 어쨌든 기술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는 자체의 정화력에 믿음을 주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인터넷 도박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기술·제도적인 대처와 보완이 필요한 때이다.

조환규/ 부산대 교수·컴퓨터과학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