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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렉터, 네게 경악을 보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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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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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조차 잔인성 논란 빚은 <한니발> 상륙…돌아온 렉터의 ‘엽기’가 궁금하다

사진/<한니발>은 영상물등 급위의 재심을 통해 가까스로 국내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렉터 박사가 돌아왔다. 하마터면 그는 한국의 극장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뻔했다. 한국의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전작 <양들의 침묵>(1991)에서보다 수백배는 잔인해진 한니발 렉터에게 애초에 ‘입국불가’판정을 내렸었다. 지난달 21일 등급위의 첫 심사에서 등급보류가 아닌 수입추천불가를 받았을 때 <한니발>의 국내개봉은 기약이 없어지는 듯했다.

혹평, 그리고 흥행


외국에서의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배급사 UIP코리아는 재심에서의 수입허가를 낙관했지만 등급위 관계자는 “재심을 통과하더라도 등급 심의에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을 통해 한국까지 넘어온 <한니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감안해서인지 등급위는 지난달 28일 재심에서 최종적으로 수입허가를 냈다. 대신 심사에서 문제가 되는 일부 장면들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선에서 UIP와 타협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예정이었던 3월24일 개봉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관객을 순간 얼어붙게 한 렉터의 눈빛을 조만간 만날 수 있게 된 건 기정사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렉터(앤서니 홉킨스)가 클라리스(조디 포스터)에게 전화를 하고 인파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면서 예고했던 속편이 등장하기까지 걸린 10년은 개봉 당시 열광했던 관객들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뜸들이는 시간이 길었던 건 토마스 해리스의 원작이 99년에야 출간된 탓이었지만 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각색상까지 아카데미의 알토란만 거머 쥔 전작의 속편을 애타게 기다려 온 건 비평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작 뚜껑이 열렸을 때 <한니발>은 미국에서도 상영을 둘러싼 찬반론에 휘말렸다. 웬만한 영화의 엽기적 표현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대의명분 아래 ‘쿨’하게 반응하던 비평가들조차 이 영화의 잔인성에 경악을 했을 정도다. “원작소설을 보면서 과연 이 작품이 영화화될 수 있을까” 의심했다는 로저 에버트는 “<한니발>은 자기 얼굴을 도려내 개에게 먹이는 장면에도 불구하고 NC-17등급을 받지 않았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새롭게 보여준 것이라고는 이제 어떤 영화도 이 등급을 받을 수 없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R등급보다 한 단계 위면서 미국 영화등급에서 가장 높은 NC-17 등급은 영화의 매장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17세 미만 절대불가를 의미하는 NC-17등급을 받을 경우(R등급의 경우 17세 이하도 보호자 동반에 한해 입장을 허락한다), TV스폿 광고, 포스터 부착 등 상업영화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마케팅이 철저히 제한됨으로써 결국 승산없는 게임이 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15세 이상 등급을 받았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학부모들과 정치인, 그리고 영화평론가까지 합세한 반발을 받아들여 개봉 뒤에 18세 이상 등급으로 조정하는 희귀한 사례도 남겼다.

로저 에버트의 말에서 풍기는 뉘앙스처럼 이 영화는 전작과 달리 비평면에서도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빌리지 보이스의 짐 호버만은 <한니발>을 “한심한 속편의 대표격인” <대부3>과 비교하면서 “해리스의 소설에 등장한 우리 시대 최고의 허구적 괴물을 스크린에서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애시당초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대중성있는 평론가로 알려진 에버트조차 “그 폭력성 때문이 아니라 <양들의 침묵> 때의 매혹이 거세된 스토리 때문에 이 영화를 인정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평론가들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면 더 궁금해지는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인지 <한니발>은 2월 초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라 3주 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올들어 1억달러 고지를 처음 점령한 영화로 기록됐다. 뿐만 아니라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개봉하는 나라마다 단숨에 흥행 선두주자로 나섰다.

영화보다 폭행하고, 기절하고…

사진/선혈이 낭자한 살육 장면들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니발>은 개봉국마다 흥행정상을 달려왔지만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람들이 <한니발>을 보러 극장에 달려가는 이유 가운데는 전작을 잇는 기대도 한몫하겠지만 오히려 언론을 통해 부각된 잔인성을 확인하러 가는 측면도 강하다. 원작소설을 읽은 이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장면들이 영화에서 어떻게 구체화됐는가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대단한 재주로 원작의 설정과 장면들을 대부분 스크린에 옮겼다고 한다. 단 두 가지 설정만 각색에서 빠졌는데, 렉터 못지 않은 악한 메이슨 버거(게리 올드먼)로부터 어린 시절 강간당하다 전기 뱀장어를 버거의 목구멍에 넣어 죽이는 레즈비언 여동생의 존재와 한니발과 클라리스가 연인이 되어 함께 사는 결말부분. 특히 ‘권선징악’에 길들여진 할리우드 관객의 정서에 맞지 않는 결말 부분을 바꾸는 것은 중요했는데 결말이 달라지는 것을 거부했던 원작자를 설득하느라 스콧 감독이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전작의 히로인인 조디포스터가 출연을 거부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작품의 폭력성 때문. 결국 클라리스 역은 <주라기 공원2:잃어버린 세계> <매그놀리아> 등에 출연했던 줄리언 무어에게 돌아갔다.

전작에서 탈옥하는 데 성공한 렉터 박사는 7년 뒤 신분을 숨긴 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왕성하게 활동한다. 큐레이터가 되는 것은 렉터에게 손쉬운 문제다. 과거에 미술사에 정통한 정신과 의사였으므로 원래 있던 큐레이터만 죽이면 그만인 것. 어쨌거나 그 사이 노련한 수사관이 된 클라리스는 여전히 렉터가 드리운 악몽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 새로 등장하는 인물은 메이슨 버거라는 미국인. 백만장자로 젊은 시절 렉터로부터 정신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마약을 주사맞고 렉터의 교사로 자신을 얼굴을 도려내 개에게 줬었다. 그 사건으로 흉악한 몰골이 된 버거는 렉터를 향한 복수의 계획을 세우고 그를 추적하기 위해 클라리스를 미끼로 끌어들인다. 서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싸이코 악한 둘이 식인돼지에게 산 사람을 뜯어 먹이고, 경찰의 내장을 끄집어내면서 벌이는 광란의 살육게임은 점입가경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충격적이고 국내 영상물 등급위가 문제를 제기했던 부분은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먹는 장면. 클라리스와 자신을 쫓던 이탈리아 형사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렉터는 형사의 뇌 일부를 잘라 튀겨서 클라리스에게 ‘우아한’ 디저트를 대접한다.

이 때문에 <한니발>은 한동안 잠잠하던 미국영화의 폭력수위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특히 최근 상영관에서 일어난 사건들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3월1일 미국 코네티컷주 스탠퍼드에서 20대 남자가 영화가 시작된 직후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며 주위에 있던 관객 세명을 두들겨 팼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스크린 앞에서 분노에 떨며 서있던 그를 체포했는데 그 과정에서도 거칠게 반항해, 폭행,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7천5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램체스터의 한 극장에서 또다른 젊은 남자관객은 잔혹하면서 세부적으로 묘사되는 살인장면을 보다가 기절하기도 했다.

차제에 고삐 조일 준비하는 보수

앞으로 얼마나 더 심각하게 벌어질지 모르는 이런 돌발 사고들은 영화의 폭력수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보수주의자들이 고삐를 바짝 조일 호기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나 전통적으로 헐리우드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공화당의 부시 정권이 영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몇년 전 미국의 한 살인범의 진술에서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킬러>의 열광적인 팬임이 확인된 뒤 피해자 가족이 스톤 감독을 살인교사죄로 고소했던 것처럼 스콧 감독도 법정에 올라가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까지 입과 글, 그리고 사진으로만 <한니발>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야 하는 한국의 관객으로서는 “I’m Back”을 나즈막히 속삭이며 우리의 오금을 저리게 할 렉터박사의 귀환이 다만 기다려질 뿐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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