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화가 9인의 연작전시 <미술의 시작Ⅱ>… 작품의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친절한 안내서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작가의 의도에 구속되지 말고 자유롭게 느끼라”는 평론가들의 조언은 도리어 까다로운 주문이다. 저명한 미술비평가인 톰 울프마저 “수십년 동안 미술작품을 보면서 그림으로부터 무엇인가 나의 눈앞에 직접적으로 발산되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헛수고였다”고 냉소했으니 일반인이야 말해 무엇하랴. 아무리 관람자 자신의 눈이 중요하다고 해도 현대미술을 즐기는 데 약간의 정보와 지식은 큰힘이 된다. 잭슨 폴록의 성격과 심리적 불안정을 잘 모르면 20세기 미술을 대표한다는 그의 액션 페인팅도 유치원 아이들의 물감장난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의 시작Ⅱ, 현대미술 이렇게 본다’(8월20일까지, 02-737-7650)는 난해한 현대미술에 숨어 있는 내적 질서와 의미체계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전시다. 지난 여름 미술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한 ‘미술의 시작Ⅰ, 현대미술 이렇게 만들어진다’에 이은 연작전시인 셈이다. 정통적인 한국화를 현대적 미감으로 변형한 이왈종과 정명희, 추상표현주의 화가 박승규, 초현실주의와 극사실주의 화풍의 이석주, 산수미학에 천착해온 한진만, 조각가 이수홍과 김일룡 등 9명의 중견화가를 화풍별로 골고루 배치해서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작품들 옆에는 큼지막한 녹색보드가 있어 해당 작가의 주제와 소재, 작품읽기가 분필로 촘촘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제작에 사용된 기법이나 그림과 연관된 유파 등이 사진과 함께 간략히 보충설명돼 있다. 예를 들면 물감을 무질서하게 뿌리고 흘려 놓은 듯한 박승규의 <확산이미지>의 옆에는 작가가 처음 영감을 얻은 나무들의 풍경사진과 네개의 나무기둥에서 거친 선들이 마구 뻗어나가는 작품의 제작과정을 소개한다. 아래에는 작가가 시도하고 있는 액션 페인팅의 역사와 그 의미를 소개한다. 관람객들은 그림과 글로 부지런히 시선을 교차하며 ‘화면과 싸움하듯이 지랄발광을 한’ 작가의 행위를 그려보게 되는 것이다.
시계 위의 기차와 달리는 말 등 어울리지 않는 세개의 소재를 엮어 그린 이석주의 <일상>은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와 비교하면서 작품 이해의 열쇠말인 ‘데페이즈망’을 소개한다. ‘전치, 전위법’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데페이즈망은 어떤 물체를 본래 놓여 있던 일상적인 질서에서 떼내어 낯선 장소에 배치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주는 기법이다. 이를 통해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막연한 불편함과 어색함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관객은 짐작해볼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전시작가들이 차례로 나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직접 설명을 한다. 7월15일 처음 초대된 정명희씨는 미대에 다니던 젊은 시절에서부터 금강을 소재로 새로운 스타일의 동양화 작업을 하기까지와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옛날이야기하듯 구수하게 풀었다. 작가의 창작의지를 연애하는 심정에 빗대어 설명하는 작가의 말솜씨에 30여명의 관객은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두 시간 동안 귀를 기울였다. “그림을 볼 때 작가가 뭘 생각하면서 그렸을까 고민하는데 알 길은 없고 한없이 답답하기만 하지요. 그러나 작가의 의도보다 중요한 것은 ‘보는 나’입니다. 자신의 연상을 따라가면서 그림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 그러면 작가의 의도와도 만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미술작품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도 중요하지만 이 역시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정씨의 설명은 이 전시의 의미와 그 취지를 짧게 요약한 것이기도 했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위). 위 그림을 위한 기초 구성스케치(아래))

위), 네개의 수직선(아래)에서 분출되듯 거친 선들이 화면 위쪽을 향해 마구 뻗어나간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