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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서 선생 밑으로 거침없이 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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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6 00:00 수정 : 2010-02-0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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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개그우먼보다 더 웃기는 서 선생… 넘어지기·소심함 등 기존 개그 섞어 업그레이드한 캐릭터의 힘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오늘도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 불철주야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밤샘 연습을 하는 개그맨·개그우먼 여러분께는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요즘 사람들을 가장 밀도 있게 웃기는 이는 개그맨·개그우먼이 아니라 탤런트다. 탤런트가 어떻게 개그맨·개그우먼보다 웃길 수 있느냐고는 묻지 마시라. 그는 그냥 탤런트가 아니라 특별한 탤런트 서민정이니까. 문화방송의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은 캐릭터의 종합선물세트다. 야동순재, 호박고구마문희, 해몽장군, 괴물준하, 키높이민호, 로미오윤호, 하숙범에 멍청유미까지 최고의 캐릭터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장기로 브라운관을 수놓는다.

평소에는 해맑은 표정의 여성 탤런트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개그우먼 뺨치는 개그 실력을 보여주는 서민정. 서 선생 없는 <거침없이 하이킥>은 개그 프로그램 없는 TV편성표다.

이들 중 군계일학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서 선생 서민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지함과 심각함이 6:4 황금비율을 맞춘 SBS <사랑과 야망>에서 과외 선생님 태준(조민기)을 짝사랑하는 세미 역으로 눈물깨나 흘렸던 그이지만 지금 그에게서는 웃음의 향기가 난다. 이제부터 서 선생, 그의 개그 세계를 들여다보자.


누가 이만큼 ‘지대로’ 넘어질까

서 선생 최고의 개인기이자 유행어, 아니 유행 몸짓은 ‘넘어지기’다. 개그맨·개그우먼들도 넘어지는 연기만큼은 수준급이지만 지금까지 서 선생만큼 자연스럽게 넘어지는 연기는 그 누구도 해낸 적이 없다. 서 선생은 항상 천진난만하게 뛰어나가다 오른쪽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무릎이 꺾어진다. 동시에 양손을 하늘로 뻗으면서 왼쪽 다리까지 함께 넘어지고 곧장 온몸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업그레이드 버전으로는 택시에 타려다가 문에 부딪혀 튕겨나가는 동작과 소파에 부딪혀 쓰러지는 동작 등이 있다. 서 선생이 선보인 수많은 넘어지기 개인기 중 대상에 준하는 동작이 있으니, ‘토끼민정’이다. 거대한 회색 토끼 분장을 하게 된 서 선생은 어두운 복도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육중한 토끼 옷을 입고 넘어진다. <월레스와 그로밋, 거대 토끼의 저주> 속편 격인 <서 선생과 이 선생, 거대 토끼의 저주> 정도? 이 장면은 ‘몸개그 작렬 움짤’(대단한 몸개그를 포착한, 움직이는 짤림 방지용 이미지)로 인터넷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개그계의 이소룡인 영구와 맹구, 오서방의 그림자를 본다. 땡칠이와 함께 단 한 번도 제 몸을 아끼지 않으며 흙바닥에 몸을 던졌던 영구와 딱딱한 책걸상 모서리에 몸을 맡겼던 맹구, 깜찍하게 걸어가다가 건물이 무너지듯 넘어졌던 오서방은 몸개그 하나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서 선생은 이들에게 넘어지기 비밀과외라도 받은 것처럼 ‘지대로’ 넘어진다.

서 선생이 몸으로만 개그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서 선생은 이민용 선생(최민용)에게 이런 대사를 날리곤 한다. “이 선생님 브래드 피트랑 닮았어요!” “이 선생님 유재석보다 훨씬 웃겨요!” “이 선생님 피부가 권상우 같아요!” 떠오른다… 떠오른다… 뭔가가 떠오른다. <개그콘서트>에 길이 남을 코너, 박성호·박휘순·김대범의 ‘제3세계’가 떠오른다. 이 제3세계 트리오가 구사하는 개그는 이런 식이다. “제가 성대모사에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번 보여주게.” “(전도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최불암이에요~!” “(이승만 목소리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나는 이 나라의 이다도시다!” “똑같애!!” 부적절한 반어법과 맥락 없는 비유, 수준 높은 안목이 핵심인 제3세계 개그 코드를 구사하는 이들은 서 선생식 개그의 교과서다. 서 선생이 ‘제3세계’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구+제3세계+BOA+누구야 < 서 선생

여기서 끝일까? 아니다. 서 선생에게는 A형의 피가 흐른다. 이 선생과의 모든 일을 수첩에 적어놓고 이 선생이 내민 캐러멜 마키아토 한 잔에 쓰나미급 감동을 받는다. 또 ‘여자는 튕겨야 한다’는 충고를 듣고 이 선생의 데이트 신청을 냉정하게 거절한 서 선생, 당연히 속은 이미 ‘튕겨도 되나’는 걱정 때문에 시커멓게 타고 있다. 그 순간부터 후회는 시작된다. “괜히 튕겼나봐”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할까” “어떡해!”를 연발하던 서 선생은 결국 이 선생의 휴대전화에 부재 중 전화와 문자메시지 10여 개를 남기고 만다. 문자메시지 내용은 전부 ‘다시는 튕기지 않겠다’는 다짐과 약속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몇 개의 캐릭터를 떠올리게 된다. <개그콘서트> ‘BOA’에서 수첩을 들고 다니며 아주 작은 것까지 기록하고 걱정하는 소심남 유세윤과 <웃찾사> ‘누구야’에서 누나에 관한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기억하는 연하남 김범용이다. 서 선생에게 연기와 캐릭터에 대한 영감을 준 것이 틀림없는 이들은 서 선생 안에서 온전히 하나가 된다.

서 선생에게 이 선생은 ‘유재석(유머)+브래드 피트(외모)+세븐(춤)+조용필(노래)+권상우(피부)’의 합체인 것처럼, 서 선생은 ‘영구·맹구·오재미(몸)+박성호·박휘순·김대범(코드)+유세윤·김범용(캐릭터)’의 합체다. 거기에 서 선생의 천사표 눈웃음과 목소리, 연기력까지 더해져 서 선생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굉장한 개그와 연기를 완성해내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개그를 보여줄까?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서 선생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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